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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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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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라고 하면 그가 염세철학의 원조라는 사실 정도는 누구나 알고있을 것이다. 그의 일생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다.그는 염세철학자 였으면서도 침실에는 항상 무기를 비치하여 놓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였으며 혹시 이발사가 면도칼로 식도를 절단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평생 이발소를 멀리했고 귀중품은 가장 은밀한 구석에다 숨겨 놓았다.1831년 베를린에 콜레라가 돌자 그는 재빨리 그곳을 떠나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적수였던 철학자 헤겔은 그대로 있다가 불과 석달 후 전염병에 희생되고 말았다.그는 한때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였던 어머니 요한나와 불화하였고 마침내 절교하였다. 그의 극심한 여성 경멸은 아마 여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그는 수다장이 재봉사를 자기 집에서 밀어내다가 너무 격렬하였던 나머지 그녀에게 부상을 입혀 일생 동안 연금을 지급하라는 선고를 받아 그녀의 사망증명서를 손에 넣었을 때까지 그야말로 이를 갈았다.그는 누구보다도 철학교수들을 증오했다. 그러나 그의 재산을 예금하여 두었던 은행이 파산하고 장래가 불확실해지자 지식을 파는 것은 철학자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대학강사가 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그의 철학 강의를 듣기를 갈망하는 많은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당시 베를린 대학에서는 헤겔이 철학교수로 활약하고있었다.그는 평소 증오하던 헤겔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와같은 시간에 바로 옆강의실에 강좌를 개설하고 기다렸건만 아무도 그의 강의실을 찾아 주지 않았다. 그의 강의는 4학기동안 시간표상에만 존재하다가 폐강되었다.그는 실패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그를 증오하고 시기하는 다른 철학교수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다른 동료들은 그를 증오하거나 시기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실망한 나머지 다른 철학교수들에게 비방과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변호사의 자문을 받는 조심성을 보였다.그는 누구보다도 헤겔을 증오하였고 그의 철학을 절대 넌센스의 철학 허풍 구멍의 지혜 미치광이의 잡담이라고 비방하였다.독일 관념론을 마무리한 그의 철학은 당대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가 후대에 바그너 니체 프로이드 등의 철학과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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