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본문
삼국지에 있어 조조의 술수는 유명하다. 그 술수가 바로 그가 주석을 붙이기까지 한 손자병법에서 유래되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나폴레옹이 그 병서를 베개 삼을 만큼 곁에 두고 살았고, 모택동은 [중국 인민을 해방시킨 것은 손자다] 했을 만큼 동서고금에 살아 숨쉬고 있는 병서다.[漢書] 예문지에 孫子兵法이 82편으로 돼있다 했는데 그 후대의 [隨書] 경적전에는 13편(6000자) 으로 그 사이에 69편이 망실되어 없어진 것이다. 한데 24년 전인 1972년 산동성 은작산 언덕에서 한나라 때의 고분을 발굴하는데, 이전 13편을 포함 총 30편(11000자)의 손자병법이 대나무에 새긴 죽간으로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었다. 그 망실 부분에 담긴 지혜에 대한 갈망이 동서할 것 없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나머지 52편이 西安의 장경헌이라는 사람의 집안에 대대로 전승된 고문서 틈에서 죽간에서 옮겨 써놓은 것으로 보이는 손자병법 82편 모두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20세기 굴지의 대발견이 아닐 수 없다.손자의 본명은 손무이다. 오나라 임금 합려가 손무를 국빈으로 초대하여 [그대의 병법 13편을 모두 읽었는데 그 병법의 시범을 보여달라] 했다. 이에 손무는 궁녀 1백80명을 좌우 2개대로 나누고 임금이 가장 사랑하는 두 총희로 하여금 대장을 삼았다. 그러고서 오른쪽 북을 치면 대원들에게 오른손을 보고, 왼쪽 북을 치면 왼손을 보도록 거듭 하달시키고 북을 쳤더니 궁녀들은 쑥스러운 듯이 웃기만 할뿐 하달된 명령이 이행되지 않았다. 손무는 좌-우 대장을 불러놓고 명령이 지켜지지 않음은 장수의 죄라 하며 칼로 베어 죽이려 들었다.임금이 기겁을 하고 이 총희가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용서하라 하자 전쟁중에는 임금 말에 따라야 할 한계가 있는 법이라면서 미인대장을 베어 죽였다. 그리고 이제 임금의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군대가 되었습니다고 엎드려 말했다. 합려가 강국인 초나라를 격파하고 齊와 秦나라에 군림하게 된 것이 모두 그가 중용한 손무의 병법 때문이었다.이 손무가 죽은지 1백여년 후에 그의 후손으로 역시 병가로 두각을 나타낸 손빈이 등장하는데 손자병법은 가공 인물인 손무를 내세우고 손빈이 지은 것이라는 설, 손무의 저술을 손빈이 보충했다는 합작설이 나돌고 있다. 아무튼 수천년 세상을 움직여 왔고 근년에는 기업경영에 까지 활용되고 있는 살아있는 지혜가 종전의 13편에서 82편으로 늘었으니 기대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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