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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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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 만리장성북경에서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만리장성은 실제 길이 1만리보다 훨씬 넘는 1만 2천 700리에 이르는 거대한 성이다. 흔히 달에서도 보이는유일한 인조물이라고 일컬어진다. 기원전 5세기 때부터 여러 왕조들이외적을 막기 위해 축조한 이 성은 몽골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명나라가 증·개축에 힘썼는데 지금의 성은 대부분 명나라 때 완성된 것이다.현재 팔달령과 모전욕, 사마대의 장성이 개방되어있다. 일반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팔달령에 위치하고 있는 만리장성으로 북경에서 가장 교통이 편하고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장성의 보전 상태도 가장양호한 편이다. 높이 8m, 폭 6m의 튼튼한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성벽에 뚫린 구멍은 사격구이며, 수백 m거리마다 봉황대를 만들고 수비병이 머무르는 곳과 화약 총포저장용의 높은 망루가 배치되어 있다. 올라가는 입구로부터 망루까지 견학코스로 돼 있다.영국 / 솔즈버리 스톤헨지영국 런던 서남쪽으로 120㎞, 솔즈버리 북쪽으로 16㎞ 떨어진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거석(巨石) 유적지다. 스톤헨지는 멀리서 보면 조그만 회색 돌들이 둥그랗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얀 백악질 토양의 풀밭이 눈이 미치는 곳까지 멀리 뻗쳐있는 쓸쓸한 지평선을배경으로 시야를 가리는 것이라곤 이 스톤헨지밖에 없다. 그러나 이 석조물에 가까이 다가서면 키가 4m를 넘는 거대한 돌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모습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사암의 약한 부분이 수세기동안 비바람에 씻겨 기묘한 모양으로 깎이고 금이 갔으나 아직도 여러 개의 돌들이 4천년 전에 연장으로 깍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원래의 모습대로 서있다. 때문에 스톤헨지 주변은 신비감마저 감돈다.과학자, 심령학자, 예언자 등이 수차례에 걸쳐 거석들의 용도에 관한신비를 벗기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으나 아직도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채 추측만 난무하다.이탈리아 / 피사의 사탑이탈리아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 서면 "기적의 광장"이라는 이름이얼마나 실감나는 표현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피사의 사탑은 건설중 지반이 약해 한쪽으로 기울어지자 이를 무리하게 강행하여 완성된것이다. 지금도 조금씩 기울어지는 것이 측정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수 백년 동안 붕괴되지 않고 있는 것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피사의사탑은 두오모의 종탑으로 하얀 대리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곳출신 건축가인 피사노의 작품으로 탑의 높이는 북쪽 55,22m, 남족이54,52m로 북쪽이 좀더 높다. 이 사탑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유명한 갈리레이를 떠올리게 한다. 1564년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이는 사탑에서 낙하의 법칙을 실험했다. 피사는 피렌체에서 서쪽으로 약8㎞ 지점에 있으며 중앙역에서 마르노강을 거쳐 언덕의 피사까지 올라가는데는 약 20분이 소요된다.이집트 / 알렉산드리아 등대알렉산드리아 등대는 항구를 둘러싼 반도의 끝에 있다. B.C. 280년프토레미 통치 시대에 세워진 이 성채는 높이가 15m이고, 정사각형의아래층은 300개의 방이 있다. 2개의 나선형 계단을 통해 팔각형의 이층으로 통하게끔 되어 있고, 성채 위쪽 포세이돈 동상이 있는 등화실과도연결되도록 만들어져 설계의 완벽성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의 침입을막기 위해 무엇을 반사시켜 불빛을 보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않지만 기록에 의하면 파라오의 등대지기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신비스러운 거울이나 렌즈를 통해서 접근해 오는 배를 간파했다고 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과학자들이 이 거울을 알아내려고 했으나 등대 위두 층이 붕괴됨으로써 그 비밀은 영원히 묻히고 말았다.터키 이스탄불 / 성소피아 성당세계 건축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성 소피아 성당은 신의 영지를 뜻하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537년 건립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봉헌된 교회로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갖고 있다. 15층 높이에 해당되는 56m의 거대한 중앙 돔과 많은 보조 돔을 갖고 있는 이 성당은 건축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비잔틴 건축물의 표본이며 회교 건축양식은 물론 유럽의 각종 건축양식에 직간접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건물 내에는 초기 기독교 성화와 회교의 종교적인 장식물이 공존하고 있다.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살아있는 역사적 현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당벽에는 모자이크 그림으로 예수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성화들이 있는데, 이것이 후일 기독교 성화 확립에 표본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이탈리아 / 콜롯세움ㅇ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엠마누엘레 2세 기념당을 왼쪽으로 끼고 15분정도 가면 로마의 상징 콜롯세움이 나타난다. 이것을 보고 나서야 드디어 로마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대 로마의 유적 중 가장큰 것으로 "거대하다"라는 뜻의 콜로살레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다.콜롯세움은 서기 72년 플라비우스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짓기 시작해 그의 아들 피투스 황제 때 완성을 보았다. 원래 이 부근에는 네로 황제의 궁정이 있었고 이 장소는 커다란 연못이었다. 네로폭군이 죽은 다음에 지금의 원형(약간 타원형) 건물이 계획되어 서기80년에 완성되었다. 칸칸이 나눠진 맹수 우리 위에 나무로 바닥을 만들어 지상과 지하를 분리시켰다. 그 당시 박해받으며 맹수의 먹이로 쓰러져간 기독교인들의 비명과맹수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이집트 / 피라미드4천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일강 계곡의 스카이라인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웅장한 피라미드로 장식되어 왔다. 신격(神格)을 지닌이집트 왕들의 영원한 기념물로서 또 그 유체들의 불후의 성소로서 건설된 피라미드는 스핑크스와 함께 많은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다. 고대이집트인들은 수레도 없이 어떻게 그처럼 웅장한 왕릉을 쌓아 올릴 수있었을까. 왜 그들은 그렇게 초인간적인 규모의 역사를 하였을까. 20세기의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으면서 아직도 어떤 알지 못할 동기를 간직한 채 사막 속에 묻혀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 중의 하나인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를 수호하는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사자인 길이 57m, 높이 21m의 스핑크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흔히 사진에서는 세 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서 있지만 실제로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통로가 있어 내부로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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