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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상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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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객지사람이 들르면 융숭히 환대하는 관습은 동서가 다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죽고없는 조상이 축복을 주기 위해 변신을 하고 들른다는 종교적인 해석을 하는 나라(일본)도 있고, 죄를 짓고 쫓기거나 망명자 무의탁자에 베푸는 인도적 관습으로 해석하는 나라(희랍,로마)도 있다.이 환대가 음식을 잘 차려내고 옷과 잠자리를 안락하게 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내나 딸을 동침시키는 성적 환대로까지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이래 이 과객환대의 기록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그 환대받는 과객이 왕족이거나 권력자 지배자 고급관리라는 점에서 권력이나 이권을 위해 바치는 성 상납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처음에는 종교적 인도적 관습이었던 것이 후세에 인신뇌물로 변했을 가능성도 없지않다.신라 문호왕의 배다른 동생인 차득이 베옷에 비파를 들고 무진주에 이르자 안오라는 관리가 그의 첩을 인신뇌물로 동침시키고 있다. 왕건이 궁예의 슬하에 있을때 정주 땅 유천궁 집에 유숙하게 되자 그의 딸을 바쳐 시숙케 하였으며 양희수가 영암수령으로 고을살이 내려가는데 도중 장성의 한 장교의 집에 쉬어갈 제 그의 딸을 시숙시켰다. 시숙하고 나면 첩으로서 들여야하게끔 돼있었지만 버리는 것이 관례였다.곧 일회용 환락의 성뇌물이 근대까지도 관습화돼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그밖에 딸을 기생 족보인 기적에 올린다는 미명의 성 상납도 성행했었다.옛날 군수나 원님은 삼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죄량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큰 죄에 묶여 옥살이를 하고있는 가장은 자신의 나이 어린 딸을 기적에 등재해 주옵소서하는 첩지 한장 올리면 풀려났던 것이다. 곧 기적에 올린다는 것은 그의 딸을 관기로서 바친다는 뜻이요, 실제로는 수령에게 성 상납을 한다는 것이다. 성 상납에 희생된 딸은 이렇게 해서 효녀로 우러름을 받게 마련이었다.또 고을에 따라 은결이라 하여 부수입이 크고 작은 고을이 있게 마련인데 작은 고을의 수령이 그의 뛰어난 미모의 기첩을 감사에게 상납하여 은결좋은 고을로 바꿔치는 것도 관례가 돼있었다 한다.뇌물에는 그 먹어드는 효력순위로 1)아부뢰 2)향응뢰 3)명예뢰 4)재물뢰 5)색사뢰가 있는데 그 뇌물중 으뜸인 색사뢰가 부산에서 발생했다.경관들이 퇴폐심야영업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성 상납을 받아오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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