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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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발덴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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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영국의 존 위클리프의 개혁운동과 그 영향을 받아 체코슬로바키아 전 지역을 휩쓸었던 얀 후스 종교개혁운동등이 바로 그 것이다.비록 이들의 운동은 실패로 끝났으나 종교개혁을 예비했던 개혁운동 이었다는 것을 교회사가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예수로부터 시작됐던 새로운 복음운동이 팔레스타인지역에 밝은 빛을 비춰줬다며 예수를 해방적차원으로 해석,혹자는 예수를 최초의 종교개혁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그리스도의 복음은 주후 300년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공인을 받고 [지하 종교]에서 [지상 종교]로 승격된 이후 점차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수많은희생을 치르면서 하나님의 새 계약의 공동체로 출발했던 교회가 중세 봉건체제와 결합,본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역사가들은 이 시기,곧 6세기부터 15세기까지를 중세기라 지칭하면서 동시에 [암흑의 시기]로 부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당시 일부 민중들이 예언자적이고 생명감 넘치는 본래 교회를 갈망하게 된 이유도여기 있다.이와 때를 같이해 12세기를 기점으로 정체된 봉건사회의 기초가 흔들리기시작한 것이다.일부 민중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국경을 넘어 여러곳을여행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시민계급이 성장했기때문이다. 요즘들어 유럽의 신학자들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을 12세기까지거슬러 올라가 주의깊게 살피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프랑스 리옹지방에서 전개됐던 발덴저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아 할것이다.로마시를 가로질러 티베라 강줄기를 따라 우뚝 솟은 성 베드로 성당에서7백여m 떨어진 곳에 십자가 지붕을 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이 교회 입구에는 이탈리아어로 [로마 발덴저교회]라는 간판이 새겨져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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