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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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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내리는 비비 오는날의 청량리 야채시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눅눅하고 고리타분하게 축 처져있다. 오늘처럼 이렇게 겨울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시장은 전체적으로 공기가 눅눅해지면서 시장만의 특유한 냄새를 짙게 풍기기 마련이다. 농산물찌꺼기 썩는 냄새가 질척질척한 길바닥에 합해져코를 들쑤셔 놓을때면 기실 이 냄새야말로 인간 삶을 가장 솔직히 드러내는 기본적인 내음인 듯한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그래서인지 나는 이제 이 냄새에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사랑마저 느끼게 되었다. 이 냄새를 맡음으로써 나의 오장육부와 맞닿은 복음의 현장을 스스로 확인이라도 하듯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청량리시장 골목골목을 뒤지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이렇게 발길 닿는대로 청량리역 주변과 시장을 걸어다니다보면 발을 멈추고 서서 저려오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외마디 비명같은 기도가 저절로 터져 나오는 것을 경험한다.잘해 봤자 가마니대기 한장 깔아놓은 정도의 좌판에 몇가지 야채 따위를 벌여놓고 지나가는 손님을 부르는 주름살만큼이나 깊이 패인 할머니들의 시름, 엄마등에 매달리다시피 업혀 있는 아이들이나, 낡은 유모차에 뉘여 온갖 혼탁한 공기속에 방치되어 있는 아기들을 볼때마다 나는 더이상 걸음을 옮기기가 어렵다.어디 그 뿐인가. 청량리 오팔팔번지 뒷골복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낡은 건물속에서는 진종일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오가는 행인들을 표정없이 바라보는 어린이들도 있다. 시장골목 물웅덩이에는 맑은 시냇물이라도 만난듯 그 더러운 구정물 속을 첨벙거리며 노는 아이들의 고질고질한 모습이나 먹지못해 야윈 얼굴과 고민해서 얇아지고 누렇게 뜬 얼굴들, 아픈 세월 험하게 살아온 얼굴들을 대할 때마다 가슴속 한복판에는 수 없이 아픈 금이 그어진다.이것이 선진국 반열로 발돋움하고 있는 이 나라 수도 서울의 거리, 그중에서도 이름난 홍등가, 네온사인의 찬란한 불빛에 파묻혀 가려진 또 하나의 도시의 얼굴이다. 나라의 미래인 우리 어린이들이 이렇게 보호받지 못하는 곳이 이 나라 어느 구석에 또 있으랴!오늘도 여전히 고급호텔에서 조찬기도회를 드리는 교계어른들의 눈에는 아직도 도시락을 준비못해 쌀 한줌에 울면서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소년소녀가장들의 모습이 진정 보이질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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