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털과 범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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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학자 유종원이 지은 우화에 임강의 사슴이라는 게 있다.임강에 사는 사람이 사냥 갔다가 사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 애지중지 길렀기로 그 집 개들이 주인 눈치를 살피며 사슴 새끼에 비굴하게 굴고 엉켜 놀 때면 일부러 나뒹굴곤 하여 비위를 맞추었으므로 이 사슴은 유아독존 안하무인이 되었다.이렇게 집안에서만 3년 자라던 사슴이 주인의 여행중 집밖으로 나갔다.뭇 남의 집 개들이 달려들자 여느 때처럼 응석을 부렸지만 물어 뜯겨 피투성이가 되었고 주인이 돌아 왔을 때는 죽어 있었다.유종원은 벼슬이란 입고 벗는 옷같은 것으로 한번 입은 옷에서 얻은 영화가 영원할 것으로 믿는 어리석음을 빗대어 이 우화를 적어 남긴 것이다.장관과 시장을 역임한 프랑스의 인류학자 알랑 페일피트는 벼슬을 지낸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게 마련인 이같은 예우 망상증을 눈병의 하나인 시야암점증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 눈병에 걸린 사람은 두루마리를 통해 사물을 보듯 시점만 보이고 시야는 보이지 않는다. 이 눈병을 프로이트는 의식 세계에 도입하여 과거에 사로잡힌 아집과 망상의 병명으로 삼고 있다.수의 차림인 미결수에게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하느냐 마느냐가 쟁점이 되고 있다던데 임강의 사슴이나 시야암점증으로 미루어 예우를 안하는 것이 좋고 본인이 그런 예우를 거절하는 것이 심신에 편하며 국민들이 감지하는 속죄 농도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구치소 풍속에 여느 죄수를 개털이라 하고 신분-돈-권력이 있어 예우를 받는 죄수를 범털이라 한다던데 범털일랑 입히지도 또 입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영의정 정광필은 악군인 연산군 버릇을 바로 잡으려다 벼슬살이 절반을 유배 생활로 보낸 분이다. 당상 벼슬이 유배 가면 유배지의 수령들은 자신의 장래를 위한 빽줄을 만들어 놓기 위해 예우를 웃도는 과분한 대접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지만 유배지의 종으로 하천된 정광필은 관가의 뜰을 손수 쓸고아전들의 심부름을 태연히 해냈던 것이다.동궁의 스승이었던 학자 정여창이 사화에 연루되어 종성으로 유배되었을 때에도 사신이 오갈 때 횃불을 밝히고 인도하는 정료부로서의 천직을 다해 냈고 임진사충신중의 한 분인 조헌이 역졸로 하천 되어 길주로 유배 갔을 때 자신보다 벼슬이 낮은 지방 관리가 오더라도 패랭이를 쓰고 마중하고 인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곧 본인의 인격을 보장해 주는 차원이나 민주 법정신 구현의 본보기로나 국민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는 시각에서 구치 중이나 복역 중의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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