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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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시는 이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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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일 아침, 내가 강단을 향하여 들어가는데 한 꼬마가 자기 어머니에게 이렇게 속삭였다."저기 하나님이 있어요'" 예배가 끝난 후에 그 어머니는 흥미있게 나에게 그 얘기를 해주었다. 나도 역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후에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다.이는 "너희말을 듣는 자은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눅10:16)"라는 신비스러운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비록 그 소년은 교리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가졌지만 재미있다고 웃어넘긴 그의 어머니가 보지 못한 ㅈ한 중요한 성경적인 진리를 그는 우리에게 밝혀 주었다.물론 설교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보통 상황 가운데서는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놀랍고 신비스러운 진리를 선포하는 설교자는 하나님처럼 들릴때가 있다. 설교자은 강단에서 하나님께서 한때 하신 말씀을 그도 선포하기 때문에 이런 설명이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강단에 선 인간을 통하여 직접 말씀하신다. 설교 가운데 하나님은 임재하신다.헨리 마틴 로빈슨의 소설 "주교(Cardinal)"에서는처음으로 미사 예식을 집전한 한 젊은 신부의 생생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젊은 신부가 그의 손으로 주님의 피와 살을 실제로 만진다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히므로 그의 몸에는 땀이나고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렸다.신교 그리도인들은 성찬식에서 그와 같은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만약 신교의 교역자들이 강단 설교를 대할때 이와 비슷한 신비와 경이의 태도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신교의강단은 과거에 한번 경험했던 강단을 통해 나오는 말씀의 능력과 힘을 복귀하지 못 할 것이다.신교의 교역자들이 강단을 대하는 태도가 냉담하고 태연하며 거만하기까지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은 강단으 신성하고도 신비스러운 기능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신교 교회의 거룩한 장소야 말로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인 것이다. 그 이유는 그 곳에 하나님으 임재가 나타나며 강단을 통하여 설교자는 말씀을 가지고 회중을 향해 나아가며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우리는 자칫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개념을 "하나님에 대하여"말하려는 인간적인 시도로 대치해버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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