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사역의 진단과 반성
본문
영국의 신학자 폴사이드는 그의 저서 "긍정적 설교와 현대인의마음"에서 "개신교는 말씀과 함께 살고 말씀과 함께 죽는다"고말했다. 이 말씀은 설교야 말로 개신교의 생명줄이라는 말일 것이다.1. 한국 교회 목회 사역의 시대를 구분해 보면 크게 다섯가지로나눌 수 있다.첫번째 시기는 초기 한국 기독교의 시대인데 제사 불상등 아무런말도 들어 보지 못한 한국 사회에 복음이 처음 전파되자 이 말씀에도취되어 위치와 명예에 얽매임이 없이 말씀에 미쳐 있던 시절로 말씀집중 시대라 할 수 있다. 말씀의 종, 말씀의 사자라는 말이 크게유행했고 설교자의 위력도 대단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전념하던시기였다.두번째 시기는 일제 중반기에서 6.25직후에 이르는 시기로 일제핍박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설교의 초점이 재림에 맞추어진 시기로종말론적 메세지가 강조되던 시기이다.세번째 시기는 자유당,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독재 정치현상으로 인해 한국 교회가 크게 분열되었던 시기였다. 사회정의와예언자적 설교와 예수믿고 천당만 가면 그만이라는 현실도피적인설교가 크게 유행한 시기로 많은 교회가 분열을 거듭했다.그다음 네번째 시대는 전국 복음화 운동과 메세지 탈선시대였다.교회의 수적 부흥은 있었지만 메세지의 탈선이 심각하게 전개되던시기로 교회를 떠나 학교나 운동장에서 설교하는 무드가 형성되었다.자연 설교가 울고 웃기는 만남의 장이 되어 갔고 설교자가 설교의장에 주인이 되었다. 즉 설교자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공감대를형성하는데 주력하여 부흥은 있었지만 설교의 질은 낮아졌다.끝으로 다섯번째 오늘의 시점은 설교자는 늘어나는데도 많은사람이 말씀을 찾아 헤매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신학교가 생기고 설교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설교자는몸으로 거룩하고 얼굴로 거룩하였지 말씀의 권위로 거룩해지지 못하고있다.한국 갤럽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1백명 기준으로 볼 때 불교에서개신교로 개종한 사람은 9.2명, 개신교서 불교로 개종한 사람은13.1명, 불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은 10.9명, 천주교서 불교로개종한 사람은 2.2명, 천주교서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은 2.1명,개신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은 10.9명이라고 한다.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천주교서 개신교로 가는 숫자보다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가는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사실 천주교는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설교가 없었다. 그러나 1960~63년의 제2바티칸 공회에서 내린 칙령으로 각국의 천주교는 그 지역 언어로미사를 드리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설교를 회복시켰다. 이에 따라성경이 번역되었고 각신학교에 설교학이 부활되었다. 그들의 설교가개신교의 설교자의 설교와 틀린 점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하고시작한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우리의 설교는 인간의 말이 많아지고많은 예화 속에서 만담화되어 갔고 많은 사람이 떠나 간 것이다.2. 이제 우리는 위기 시각을 갖고 우리의 설교를 반성해야 할때가 온 것이다.첫째 한국교회에 위기를 몰고 온 주범은 설교의 횟수가 너무많았다고 하는 점이다. 한국 목사들은 설교자로서의 생명을지속하려면 설교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본다. 설교의 3요소는 신선,창조, 역동인데 이런 요소를 갖추기 위해 횟수는 줄이되 준비하는시간은 많이 가져야 한다.둘째의 원인은 설교에 대한 준비성의 결여에 있다. 목회자들은설교 사역이 목회 사역의 70%를 점하고 있다고 보지만 시간의 투자는20%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목회자들이 많아 심방위주의 목회에 의존하다보니 준비 시간을확보하지 못해 서서 목회하는 목사가 많다. 역시 목회의 핵심은설교에 있고 설교자는 모든 것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세번째는 설교의 도용 문제이다.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다보니남의 설교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도적질이다.네번째의 문제는 설교자가 본문의 봉사자인지 지배자인지 분간이어려워진데 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예화를 들고 자기 말을합리화시키기 위해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엄밀히 설교라고 볼 수없다.다섯째는 메시지의 변질에 있다. 복음은 순수한 것이어야함에도불구하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는 논리에 물량주의 기복주의가판을 치고 있다.여섯째는 설교가 목회의 수단이 되고 방편이 되어 버렸다.설교자는 자신의 말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하나님의 전권대사가 되어야 한다. 설교가 설교자의 감정에 따르거나목적을 이루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일곱번째 문제는 예언자적 설교의 결여이다. 설교는 순복음설교,교훈적 설교, 목양설교, 예언적 설교가 조화해야 함에도 한국교회는목양 설교에만 치우쳐 있다. 개인과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여 정의를선포하는 예언자적 설교가 있어야 한다.여덟번째로는 설교자들이 설교 이론에 대한 훈련 부재이다.철저한 자기 훈련이 선행되어야 하겠다.아홉번째로는 설교자는 자기 설교에 대한 착각적 과신에서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자신의 설교에 대한 본격적인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마지막 열번째로 교인들에게 끌려가는 설교에서 벗어나야 한다.3. 우리에게는 설교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대책방안이 중요하다.첫째, 설교이론, 원리, 실재에 대한 책을 읽고 설교 신학에 대한재확인이 필요하다.둘째, 설교자의 정체성 이해, 확인이 필요하다. 설교자 자신이자신에 대한 identity를 정립, 자기의 모든 생각과 기도를 쏟아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의확신이 바로 설 때 순교자적 자세로 설교를 할 수 있게 된다.세째, 설교를 위한 철저한 석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말씀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주어진 본문이 무엇을말씀하고 있는가 하는 세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네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철저한 주해 작업이 있어야 한다.말씀하신 본문에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는가를, 나자신과 나의 양들은 어느 위체에서 그 말씀을 듣고 있는가, 이 말씀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나는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만남이 될 수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답을 찾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과의깊은 교제가 있어야 한다.다섯번째, 설교 문장이 주격과 종결어의 정확한 사용이 있어야한다. 한국어는 주격(1인칭)이 생략된 문장이 성립한다. 고로설교자들은 "...생각합니다", "...바랍니다", "...축원합니다"라는문장을 더 많이 사용하는데 위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이 아니고 설교자자신이다. 따라서 설교가 인간의 말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설교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도구로쓰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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