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선포 권위
본문
우리는 흔히 복음주의적인 교역자들이 회중에게 축도할 때에 눈을 감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역시 잘못된 겸손의 표시이다. 물론 이것은 기도드리는 것과 축도를 하는것과의 혼동에서 오는 것이다.예수께서70문도을 보냈을때에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하는 눅10:5-6의 말씀은 기도도 아니요경건한 소원도 아니고 바로 선포인것이다.--- 흔히 교역자들은 설교 대신 간증을 나누고 축복을 선포하는 대신에 기도을 한다.솔직히 말해서 설교자도 역시 설교의 내용의 일부이다.바울 사도는 이와같이 설교자 자신과 설교자의 메시지가 아주 특이하고 현저하게 동일시되고 있음ㅇ을 다음 말씀들을 종해 잘 나타내주고 있다."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수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히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바울 쇼ㅏ도는 자기를 전파하거나 자신의 신앙체험을 전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했다.그러나 이렇게 할때에 자시 자신도 그 *메시지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기 위하여 자신이 믿음이나 자신의 신앙체험을 나누는 것과 는 전혀 다르다.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도 셩경적인 메시지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15)오로지 교회 안에만 선포된 분(Proclaimed)과 선포하시는 분(Proclaimer)이 존재한다. 예수께서 말씀을 전파하라고 제자들에게 위임하실 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함께 주셨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눅10:16).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드ㅡㄹ에게 고통이 될 수 있는 반면 영광이 될수가 있고 등력이 될 수 있는 반면에 어리석음이될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경계선에서와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에서 일하는 사람이다.이 영역은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합당한 장소가 아니다. 이강단은 자신들이 전하는 메세지와 그 능력을 믿는 사역자들에게만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P.50)설교자로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설교에 대한 확신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설교를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 했을 경우 다른 방법으로 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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