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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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페로의 [엄지꼬마] 라는 동화가 있다.가난한 나무꾼의 부부가 그들 눈앞에 굶어 죽어가는 일곱 아이들을 참아볼 수 없어 숲속에 버린다는 이야기다. 한데 그중 엄지꼬마라는 별명을 가진 꾀돌이의 기지로 죽음의 역경에서 살아난다는게 줄거리다. 이처럼 16∼18세기의 유럽에서는 가난 때문에 아이를 숲속에 버리는 것이 그다지 큰 죄악이 아니었다.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도 자신의 아이 다섯명을 고아원에 버렸다고 [고백]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의 하숙집 가정부 테레즈와 결혼없이 사생아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스스로 기를 역량이 없어 고아원에 맡겼다]며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그의 [정치단장]에 보면 1758년도 파리에서 4천3백42쌍이 결혼했는데 기아수는 5천82명에 이르렀다 하고 기아행위가 얼마나 빈번했던가를 강조하고 있다. 당시 아이를 손쉽게 버리게 하기 위한 시설로 오스피스 (구호원)에 투우르라는 회전 상자를 장치해 두어 야반에 신분을 숨기고 아이를 버릴 수 있게까지 했던 것이다.부유한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 양육관습을 요즘 시각에서 보면 분명한 아동학대로 고발당하기 십상이다.전기 루소의 [에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이 기르는 것을 싫어하는 도시의 부유한 어머니들은 아이를 농가에 맡겨 기른다.가난한 농가에서는 이를 미라처럼 띠로 꽁꽁 묶어 꼼짝 못하게 침대에 고정시켜 놓거나 일터에 나가면 그런 자태로 나뭇가지에 걸어 놓아 얼굴이 자색으로 변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선진국에 있어 어린이에게 인권이나 인도적 보호가 가해진 것은 20세기 전후로 일천하기 짝이 없음을 알 수 있다.한데 유니세프의 최근 보고서는 선진국들이 18세기형 아동학대로 회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만도 이혼가정이 두쌍에 하나꼴이요 프랑스에서는 이합에 구속을 받지않는 유니언 리블(자유결합)과 콩큐비나주(계약동서)가 이미 10년전에 1백만쌍이 넘어서고 있다. 이 급증하는 결격 결합에서 부스러기처럼 생겨난 아이들은 학대받을 수 밖에 없다.그리하여 미국에 있어 전체 어린이의 30%가 결손가정으로 연간 3백만명의 어린이가 버려지며 다섯 어린이에 하나꼴로 굶주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유아학대도 증가추세에 있다 한다.후진국형인 빈곤이나 무지로부터 어린이들을 구제해놓기 바쁘게 선진국형의 학대가 눈앞에 몰아닥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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