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한자루와 찬양대의 지휘봉
본문
나는 초등학교를 여덟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친구를 사귈만 하면 이사를 했고, 학교에 정이 들만 하면 떠나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어려서부터 체험한 셈입니다. 그렇게 떠돌이 초등학교 시절을 마치고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는 가족들의 죽음을 계속 치루었습니다. 삭막하기 이를 바 없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면 살맛이 나겠는가 철저하게 찾아 다니던 내가 장밋빛 인생을 만난 것은 대중가요 작곡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머나먼 고향' '모정의 세월' '찻집의 고독' 등 '나훈아와 한세일'을 정상의 가수로 끌어 올려 놓은 가요가 라디오며 다방, 연회장, TV를 석권하면서 나는 삽시간에 방송국, 신문사, 잡지사, 연예 담당 기자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인터뷰! 인터뷰! 연일 플래시가 터지면서 일급 스타가 된 것입니다.한동안은 살만하다고 느꼈습니다. 신명이 나기도 했지요. 그러나 나는 인기가 정상에 올라가 있는 그 때, 말할 수 없는 허무감에 빠졌습니다. 인기(人氣), 돈 이름이 알려진 자, 그 어떤 것으로도 허망한 가슴을 채울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찬란한 각광이 쏟아지던 가요계를 하루 아침에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사람은 끝내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들을 풀기 위하여 하루 종일 시립 도서관에 틀어 박혀 철학책을 읽었습니다. 수없는 책을 읽어내었으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에는 불교 서적 탐독, 정신분석학, 주역(周易), 그리고도 모자라서 도사(道士)라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멀쩡하던 놈이 돌았지. 그렇게 인기 정상에 있던 놈이 무엇이 모자라서 저지경이되었는고…"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가운데 9년이라는 세월이 덧없이 갔습니다. 남은 것은 더욱 감당할 길 없는 허무감, 그리고 심한 불면증과 신경쇠약증뿐이었습니다. 매일 죽음을 생각했고 그 생각은 죽음을 결행하게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을 자유도 없었습니다. 절벽, 절망. 헤어날 길 없는 심연.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끔찍하기만 했습니다.그러한 절망에 빠져있던 1983년 가을.약의 힘을 빌려 잠든 뒤의 꿈속이었습니다. 한밤중에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집은 현실보다도 더 초라했습니다. 하도 기막힌 오막살이여서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제껴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그 순간 전신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이 온통 짙은 자주빛이었습니다. 하늘이 자주빛이라니...두려움을 진정시키고 눈을 씻어가며 자세하게 살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옷자락이었습니다. 순간 초등학교 때, 어른들게 매를 맞아가면서까지 교회를 다니던 때가 더올랐습니다."예수님의 옷은 자주빛이야. 십자가를 지러 가실 때 빌라도의 법정에서 입혀드린 옷이 자주빛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내 죄 때문에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그 피 빛에 물들어 그 옷이 자주빛이 된거야."친구가 들려 준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자주빛 옷자락이 펼쳐진 하늘에서 난데 없이 삽 한자루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집을 수리하려고 마당 한 옆에 쌓아 놓았던 모래더미에 내리꽂힌 것입니다.두려워 떨면서 깨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꿈은 생시처럼 생생하게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이웃 사람에게 물었더니,"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라시는 하나님의 계시임에 틀림없어요."목사님께 여쭈어 보아도 같은 대답, 그래도 혹시...다른 대답이 있으려나 해서 알고 지내는 스님에게 물었으나, 그 역시 같은 대답. 기가 막혔습니다. 그 순간,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늘 외우게 하던 대목이 떠올랐습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아주 지워졌던 것 같았던 요한복음 3장 16절이 저의 가슴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예수. 십자가. 회개. 죄사함. 구원. 영생... 믿음의 단어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의 구원은 정말 나의 고통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가.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때까지 거들떠 본 일이 없던 성경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성경만 붙들고 1년 6개월, 교회 출석을 거부한 채 성경만 읽었습니다. 가장(家長)의 역할을 돌보지 않았으니 집안 형편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알거지처럼 되어서야 마지못해 교회로 찾아간 것이 1985년 봄. 서대문구 영천에 있는 독립문 중앙교회였습니다.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성경공부를 하며, 성도와의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인생의 가치가 새로워지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들였습니다. 불면증과 허리 통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씻은 듯이 없어지고 정신적인 질병에서도 완전히 놓여났습니다. 부정적이던 사고 방식이 긍정적인 것으로, 좌절과 회의의 생활에서 찬양과 평안의 생활로 바뀌어졌습니다.그리고 대중가요 작곡가에서 복음성가 작곡자로 변했고, 드디어 '박정웅 창작 복음성가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버려진 자식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메던 나에게 찬양대의 지회봉을 안겨주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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