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들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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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서울 구치소 형복 김준영 목사는 사형수 네 명의 사형집행에 참여해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도 사형수들의 가족들이나타나지 않아 김 목사는 장례까지 치르어 주게 되었다. 사회적 지탄을 받은 사형수의 시체는 친족들도 인수하기를 꺼렸다. 김 목사는 구치소 당국에 지원을 청하여 관 네개를 마련케 하고 운구용 수송차를 부탁하니 쓰레기 운반차를 하나 내주었다. 장지는 기독교상조회 호의로 다행히 기독교 묘지를 사용할 수 있었다.김 목사 자신이 상제 겸 호상에 집례자까지 되어 간단한 영결식을 마치고 트럭에 시체를 싣고 장지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검문소와 초소 몇 군데를 거치게 되었는데 검문소마다 한결같이 "트럭에무엇을 싣고 가느냐" 하며 트럭에 여러 사람이 얹혀가니 교통법규에 어긋난다, 관속이 못 미덥다는 식으로 따졌다.그렇지 않아도 시체를 싣고 가기 때문에 속이 편치 않던 운전사가 퉁명스럽게, "정못 믿겠거든 뜯어봐요! 사형수의 시체니…..."하고 대꾸하면 그제서야 통과시켰다. 겨우 검문소를 통과해 지정한 곳에서 차를 세워관을 내려 화관 예배를 드리고 매장을 서둘러 합동장례식을 마쳤다.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친족들도 꺼려하는 사형수들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교도소 선교 목사의 마지막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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