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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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규범보다 인간도리 중시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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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가지고 주를 섬기는 목사에게는 부담이 적지 않다. 먹고 입고 사는일도 그렇지만 자식들의 교육도 큰 짐이 된다. 늙으면 교회에서도 물러나게되는데 노후대책이 큰 문제다. 요즈음은 교단마다 교역자 양로원을 세운다거나 은급제도를 만들어 대책을 강구한다. 그러나 내가 교회를 섬길 때엔 그런 보장이 없었다. 나는 목사가 되어 첫 일터에 가서 처음으로 받은 목회비가 쌀 두말,땔나무,그리고 돈 50원인데 그것도 나와 내 아내와 갓난아기들이열흘 먹을 양식밖에 되지 않았다. 교회가 그지없이 가난했기 때문이다. 나는내가 먹고 사는 문제에는 무모하고 무지했다. 그래서 내 아내는 고생이 컸다.그런데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열흘밖에 먹을 수 없는데도 한달간을 먹고 살았던 것이다. 때로 우리 식구만이 아니라 시골서 올라온 고학생 친구들까지우리집 식구가 되어 산 것이다. 어느 때는 교역자생활비를 마련해보려고 오리를 키우기도 했다. 잘 안됐다. 목사는 그저 먹든 굶든 하나님이 지급해주신양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살다보니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물어다 먹였다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사실로 나타난다는 것을 체험했다.오히려 먹고도 남은 부스러기가 생겨 배고픈 이웃에게 나누어준 일도 있게 됐다.가을과 봄 대심방때면 서울을 한바퀴씩 다 돌아다니게 된다. 대부분 교인들은 빈민층이다. 나는 이렇게 일하다가 언젠가 늙어 교회를 못나오면 내 처자를 데리고 들어앉을 판잣집 한칸도 내게 없으니 판잣집안에 사는 사람들이부자같이 보였다.그런 마음을 먹은 것만도 큰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목사도 교회도 모두가난한 시절이라 10년,20년을 한 교회에서 일하다가 물러나도 퇴직금이 변변치 못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서울에서도 잘사는 부자동네에 제법 좋은 집에서 살고 있다. 이 집이 마련된 이야기도 동화같다. 캐나다 유학을 떠날 때 내가족 다섯식구를 옮겨 놓으려고 단칸방 전셋돈 6원을 로오브 선교사 부인에게서 꿔 가지고 거지처럼 살던 누구의 땅굴집을 사니 그 집의 시유지 40평이 그대로 따라왔다. 그것이 오늘 내집이 됐다.하나님이 주시면 주시는대로 받으리라.주지 않으셔도 원망할 것이없다 생각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을 거지되게 하시지는 않는다. 목사가 되어도 일자리가 문제다. 좋은 교회에 일터가 생기면이력서를 들고 찾아드는 목사가 부지기수다. 사실 목사들에게는 좋은 일터가쉽지 않다. 목사마다 경우가 같진 않겠지만 나는 일생동안 나를 써주십시오라고 선배들에게 부탁하거나 이력서를 들고 나서 본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해방전에는 함남노회에 속한 풍산읍교회 전도사로 24세때 부임했다. 나는그때 이 고산지대에 사는 화전민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자하는 화려한 꿈을꾸었다. 해방이 되자 공부를 더하려고 서울에 왔다가 서울 신사동교회 목사로부임하여 6·25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일했다. 그때 나는 이 작은 마을에 이상촌을 세워 보고자 일했다. 전쟁으로 피란을 갔다가 돌아와 서울 초동교회목사로 부임했다. 판잣집을 2층벽돌 예배당으로,그리고 7층집 예배당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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