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장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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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신문을 펼쳐든 나는 한장의 사진 앞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없었다. 사진 속에는 헬멧을 쓴 한 소년이 제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야구연습을 하고 있었다. 케이시 메컬리스터. 11세. 오리건주 초등학교 6학년. 이정도의 인적사항이라면 배트를 들고 타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 또래의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을 터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진속의 타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소년은 하반신이 없었다. 두다리 대신 몸통으로 서서 타격을 하고 두팔을 써서 구르듯 1루 베이스로 달려나갔다. 수비포지션은 포수.케이시의 꿈은 메이저 리그의 야구선구가 되는 것이었다.그 꿈은 5년전 크리스마스날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집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엉덩이 아래 부분이 모두 바스러져나갔기 때문이다. 5년이 지난 후 케이시의 꿈은 여전히 메이저 리거가 되는 것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그는 야구클럽에서 친구들과 야구연습에 몰두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어 한없이 행복하다는 케이시의 말은 열한살 어린 소년의 그것으로 들리지 않는다.후원과 격려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한 리틀야구단은 올 시즌의 모든 경기를 케이시에게 헌정하기로 했다. 아침신문의 사진에는 헬멧을 쓴 케이시의 머리 위로 떠오른 무지개가 선연히 빛난다.가슴 저려오는 한 미국소년의 삶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아침 내내 마음은 밝지 못했다. OB나 해태 야구선수를 꿈꾸는 케이시 또래의 한 우리 아이가 똑같은 사고를 당했다면. 그는 여전히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을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를 다니며 두발 대신 몸통으로 서서 힘차게 야구배트를 휘두를 수 있었을까. '나는 불구가 아니라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케이시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꿈은 한 사회의 건강성과 진보를 담보하는 유일한 척도의 이름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꿈을 지닌 구성원들로 들어찬 사회는 그만한 빛과 온기를 지니게 되며, 차갑고 쓸쓸한 꿈으로 범벅이 된 구성원들을 지닌 사회는 그만한 냉기와 어둠을 지니게 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의롭고 인간다운가를 생각하는 동안 한 사회는 그에 걸맞은 정신적인 품격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교육부 장관은 최근 교육개혁을 얘기하는 한 인터뷰에서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입시제도를 바꾸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그의 지적은 정확히 옳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보기 좋은 삶, 향기로운 삶에 대한 꿈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그동안 우리의 학교에서는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은 도무지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고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 무렵을 책에 파묻혀 지낸 학생이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고등학교 3학년을 내내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문제와 씨름하고 다른 암기과목들을 줄줄 외우지 않고서는 세칭 1류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다.책을 많이 읽는 학생을 우대하겠다는 말은 학교의 본래의 기능을 되살리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축구도 하고, 시도 쓰고, 영화만들기에 참여하고, 탈춤도 추고, 클래식기타도 연주하고, 사회봉사활동도 하고,농장견학이나 실습도 하고, 종합적으로 우수한 활동을 보인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볼썽사나운 고액과외도, 자기 아이의 유리한 성적을 위한 촌지도 사라질 것이다. 한 아이가 아름다운 꿈을 지니며 성숙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기대는 우리 교육개혁의 참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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