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증오의 매
본문
때렸으면 상처를 싸매줘야 한다.필자 세대는 매를 맞으며 자랐다. 걸핏하면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상급생한테 맞았고 집에선 부모한테 맞으며 자랐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단 한번도 앙심을 품거나 보복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상이 한참 변했다지만 자기 자식도 마음대로다루지 못하는 요즘에 비기면 격세지감마저 든다.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필자는 예의범절과 정직에 관한한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커 버릇없다는 평을 들어선 안된다]는 어머니의 생각때문이었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외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각별했다. 그러나 일단 잘못을 저지르면 그 벌은 무섭고 엄했다.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때리셨다. 그리고 반드시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받아내셨다. 어느날 밤 매를 맞고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 눈을 떠보니 어머니께서 나를 껴안고울고 계셨다. 이렇듯 어머니는 때리시곤 반드시 싸매 주셨다. 교육학자도, 교육전문가도 아니셨지만 매와 사랑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자녀를 키워내셨다.모전자전이었을까. 필자도 삼남매를 때리면서 키웠다. 회초리 대신 손바닥으로 아이의 손바닥을 때렸다. 그러나 감정을 앞세운 매질은 피했다. 맞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얼마를 맞아야 하는 잘못을 저질렀나를 깨닫게 했다. 매맞는 아이와 때리는 부모간 합의를 도출해낸것이다.매의 의미는 그릇된 행위를 고치라는데 있지, 때리는 사람의 감정해소나 보복에 있는것이 아니다. 매가 감정해소나 보복의 수단이 되면 폭력으로 변질한다.매는 맞는 사람이 그것을 이해해 수용해야 한다.그럴 경우 단 한번의 매도 효과를 거둔다. 사랑과 용서가 전제되지 않는벌은 그냥 벌일뿐 변화나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매 맞고 훌쩍거리는 아이를 30여분 지난후 껴안고 토닥거리며 {많이 아팠니, 아빠도 너랑 똑같이 아팠단다. 다신 그러면 안돼}라고 타이르면 녀석은 다시 울음보를 터트리기 마련이다. 공의와 사랑의 교감, 바로 그 교차점에서 새로운 결단이 이루어진다.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전투적 용어가 난무하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이니 [마약과의 전쟁]이니 [쓰레기와의 전쟁]이니 하는 용어들이 그것이다. 6·25 전쟁을 겪은 우리네로선 전 쟁이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전쟁이라니 살벌하기 짝이 없다.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전쟁이겠지만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는 우리를 공포에 빠뜨린다. 난무하는 언어의 폭력, 실종된 용서와 사랑,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갈등과 증오….길가는 행인의 두꺼운 외투를 벗긴 것은 따뜻한 햇볕이었지 바람이 아니었다는 우화의 기본 뜻을 이해한다면 사회문제에 대한 처방은 분명해진다. 큰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면 상대는 움츠리고 긴장하기 마련이다.그러나 조용히 말로 타일러 설득하면 마음이 열려 대화의 장이 펼쳐진다. 외과 의사의 메스는 환부를 가차없이 째고 도려낸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면 섬세한 봉합과 조치가 뒤따른다.째고 도려낸후 싸매고 치료하는 것은 수술의 질서이며 과정이다.우리사회는 모두를 적대시하려는 잘못에 빠져들고 있다. 그래서 휘두르고 내려치고 일격에 넘어뜨리려는 전투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상처를 싸매고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이다. 더 이상 상대를 향해 돌을 던지고 비수를 휘두른다면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들만 늘어날 뿐이다.[수술은 마지막 조처]라는 어느 외과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환자를 보자마자 수술을 강요하는 의사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잘못은 때리고 도려내고 치면 된다는 발상에서 비롯되고있지 않을까 파스칼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남의 죄악이나 잘못에는 매우 분개하면서도 자신의 죄악이나 잘못에는 분개하지도 싸우려 하지도 않는다].더 이상 매질은 안된다. 만일 아직도 해야 할 매질이 있다면 싸맬천과 바를 약을 미리 준비해 두자. 때리기만하고 내팽개친다면 상처받은 사람을 누가 돌보고 치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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