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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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대학 병원.한 여인이 심내막염으로 수술이 시급했으나, 수술비가 없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 50대 후반의 한 노신사가 거액의 수술비를 내놓았다. 신분을 묻는 이들에게 그는 그저 '대전에 사는 전씨'라고만 했다. 가난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다른 두 환자의 치료비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그는 병원에 약속했다. 그리고는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전씨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불행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늑막염으로 대전의 모 의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치료비가 없어 몰래 병원을 도망쳐야 했다.그로부터 40여 년.그는 생활의 기반을 잡았고 세 자녀도 잘 키워 출가시켰다. 어느 날 그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집을 처분하여 돈을 마련한 전씨는, 대전의 그 의원을 찾아갔다.어린 시절 자신을 치료해주었던 의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하고는 잘못을 빌었다. 치료비를 꺼내놓았다.의사는 전씨의 두 손을 꼭 잡고는 고마워했다.그러면서 "잊지 않고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치료비는 갚은 셈이니, 그 돈으로 노후를 편안히 지내라."며 치료비 받기를 사양했다.그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는 언젠가 입원한 적이 있는 서울의 한 대학 병원으로 달려갔다.사경을 헤매는 가난한 환자에게 기꺼이 치료비를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평생 져온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던 것이다.글·이의용 그림·김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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