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태워진 자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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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28일 서울이 탈환되어 김활란 총장과 교직원들이 이화여자대학교에 돌아왔을 때였다. 학교 행정을 시작하기 전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공산당 치하에서 강제로 제출한 교수들의 자술서 기록이 남겨져 있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17 항목의 설문에 답을 적은 것으로 자신의 이력을 통하여 성분을 밝히는 것이었다. 치안 당국에서는 학교에서 이를 일제히 심사하여 보고하라고 했다.김활란 총장과 최재유 행정원장 그리고 방용규 학무처장이 심사위원이 되어그 기록을 읽기시작하였다."나는 교육자 연맹의 회원이었습니다.""나는 월북한 일이 있습니다.""나는 이승만 도당을 싫어했습니다."그것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억지로 만들어낸 말들이었다. 당시는 단지 부역했다는 사실만으로 옥석을 가리지 못한 채 희생되는 사람이 비일비재한 형편이었다. 이화의 심사위원 세 사람은 그 자술서의 기록을 모두 묵살하기로 동의했다.그 해 11월 초순 김활란 총장은 방용구 학무처장을 명륜동 거처로 불렀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이화의 심사위원들은그 자술서 뭉치를 한 장 한 장 아궁이에 집어 넣었다. 어둑어둑한 저녁 활활 타오르는 용서의 불길이 김 총장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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