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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바람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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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바람잡이저희가 사는 이곳 삼도봉 예수마을 운동장엔 가을만 되면 20여미터짜리열그루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쏟아져 내리는 낙엽으로 이틀이 멀다하고 가득 뒤덮이게 됩니다. 물론 잎들은 거의 바싹 말라있습니다. 워낙 많이 떨어지니까 운치는 둘째치고 너무 지저분하여 하는 수 없이 몇군데 모아 불태우게 됩니다.그런데 그렇게 바싹 마른 잎인데도 거기에 성냥불을 그어 대 보았자 좀처럼 불이 붙어오르지 않습니다. 이때 저는 화장지 손바닥만큼을 가지고 나갑니다. 많이도 필요없습니다. 화장지를 낙엽더미속에 넣고 거기에 불을 붙이면 아주 눈깜짝할 사이에 낙엽더미에 불꽃이 타 오릅니다. 정말 손바닥 크기 만큼의 조그만 화장지이지만 이때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낙엽은 매우 불에 잘 타는 재료이지만 그러나 그 낙엽더미에 불이 붙기 위해서는 성냥불보다는 좀 더 강력한 불꽃이 필요한데 바로 그 역할을 이 휴지한조각이 맡는 것입니다.장작불을 피울 때면 반드시 장작 아래 사이사이에 마른 풀이나 잔가지들을 두어 거기에 먼저 불을 붙여야 합니다. 바로 굵은 장작에는 아무리 성냥을 그어 대어 보았자 결코 불이 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마른 풀이나잔가지에 붙은 불이 이 장작에 옮겨 붙게 되면 그때부터의 이 불더미의 주도권은 굵은 장작이 휘어잡게 됩니다. 그때는 애초의 마른 풀이나 잔가지들은 사그러들어 재가 되어 흔적도 없고, 더 이상의 마른 풀, 잔가지는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마른 풀이나 잔가지들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입니다.바로 이 두 경우의 화장지 한조각이나 마른 풀, 잔가지들을 일컬어 불쏘시개라고 합니다. 대부분 이 불쏘시개는 작고 미미한 것이지만 엄청난 능력의큰 불을 일으키기 위해선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프로야구 경기에서 삼성팀 포수 이만수 선수가 주전으로 활약할 때 그는포수로서의 역할이나 홈런타자로서도 유명했지만 홈플랫에 서서 캐쳐 마스크를 치켜들고 내외야 동료들을 향해 내지르는 힘찬 고함소리로서도 유명했습니다. 하도 우렁차 공격측 타자들이 깜짝 놀라거나 심지어 기가 죽기도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이만수 선수의 그 고함은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혹 침체되어 있는 팀 분위기를 전환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곤 했다는 것이 알려진 뒷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7대 0으로 지고 있어도 그가 우뚝서 헐크처럼 포효를 하면, 그래서 동료들도 그에 화답하여 한번 냅다 고함을 질러대다 보면 어느새 선수들 가슴속엔 '좋다. 다시한번 해 보자'라는 의욕이 용암처럼 이글거리며 솟아 오른다는 것입니다.사실 어느 팀에나 이런 사람이 한명 정도는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은 팀사기에 굉장한 영향을 끼칩니다. 경기에 지고서도 이런 사람의 역할에 따라그팀 분위기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윷놀이나 무슨 게임을 하더라도 이런 한사람이 섞여 있으면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그 결과도 엄청나게 달라집니다.저희가 사는 마을에 '머슴'을 자원하여 약 반년 가까이 저희와 함께 머물렀던 나성헌 형제는 대표적인 이런 역할의 사람이었습니다. Work Camp나청소년 캠프때 포크댄싱 시간은 좀처럼 열기가 달궈지기 어려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서로 서먹서먹하고 낯선 사람들의 모임일 경우는 더욱 말입니다. 인도자가 아무리 신나게 가르쳐도 참가자들이 열성적으로 따라오지 않으면 그 프로그램은 죽쑤기 알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의 여러행사에서 나성헌 형제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포크댄싱 시간엔 무리속에 섞여서 인디언처럼 괴성을 지르며 '날 뛰는데' 그 프로그램 전체의 분위기가 그만 뜨겁게 달아오르고 마는 것입니다. 목사님과 저는 멀찌감치 그광경을 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성헌 형제- 완전히 갔군! 제 정신이 아녀!"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도 신바람나게 열정적으로 '설쳐 대는' 사람이 있으면 뭐가 달라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이승룡 집사님도 그런 사람중 한 분입니다. 방문객들과 어울려 어쩌다 족구(足球)라도 한 게임하게 되면 큰 덩치의 이집사님은 실수도 제일 많이 하시지만 이집사님의 제스츄어와 고함소리 때문에 재미가 배는 더 생기는 것입니다.찬미의 합숙훈련 한달동안 매주 토요일 밤은 윷놀이를 했는데 이런 때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 바로 이준호, 김관호 두 동갑네기입니다. 이 '정신나간' 사람들의 쇼 때문에 윷놀이는 열배는 더 뜨거워지고, 덩달아 게임 내용도 극적인 반전과 대 역전극이 벌어지는 것입니다.여럿이서 함께 일을 해 보아도 이런 역할의 사람이 있고 없음에 따라 일의 능률과 결과가 천양지차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옆에서 신바람을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일이 쉽고, 꽁생원들만 모여 있으면 아무리쉬운 일도 어렵고 힘이 들기 마련인 것입니다.이런 역할의 사람들을 뭐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요 범죄집단에서 사용되는 용어이긴 하지만 '바람잡이'라는 명칭은 어떨까요직장이든 학교이든 어떤 모임이든 바로 이러한 '바람잡이'들은 보석처럼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낙천적이면서도 여유있는 성품과 유모어, 관용 등은 참으로 소중한 재산인 것입니다.불쏘시개, 바람잡이... 이와 같은 역할의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 시대의 우리가 정말 간절히 사모하고 사모하는 것은바로 이 '불쏘시개'같은 사람, '바람잡이'같은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모임에, 우리의 각 교회에 더욱더욱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유모어꾼이나 재미있게 놀기 위한 바람잡이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이 메마르고잠들어 있는 심령에 불꽃을 지피고, 무기력하고 허느적이는 우리의 영적상태를 일깨워 정말 신바람나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멋진 삶을 살게 만드는그런 영적인 [성령의 불쏘시개]와 [바람잡이]말입니다.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심령의 상태가 잔뜩 메말라 비틀어져있는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우리속에 가슴 뜨거운 감격과 환희가 있는지 없는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바보가 아닙니다. 다 알 수 있습니다.언제부터인가, 주님을 만났던 그 날 이후의 그 뜨거웠던 사랑과 감격은 다사라지고, 어느새 우리는 무기력하고 미지근해 빠진, 관념과 습관의 크리스챤으로 전락해 있는 우리 자신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말로 표현하진 못해도 우리는 우리의모임(교회, 청년회, 중고등부, 대학부, 교사회)에 대해 조금만 진지하게 더듬어 보게 되면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게 아닌데...'그렇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 고작 이것이란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그 인생에 모셔 들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삶이 기록된 성경말씀의 내용들은 한낱 '전설'이 되어 버리고, 그들이 소유했던 그 넘치는 사랑과 능력과 열정들은 영원히 그림의 떡으로만 존재해야한단 말입니까아닙니다. 이건 아닙니다. 우리의 오늘날의 삶이 얼마나 관념적이고 습관적인 하나의 '종교생활'에 지나지 않는지 돌아 보십시오.예수 사랑의 노래를 불러도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겐 감격이 없고, 우리의영혼은 공허합니다. 습관처럼 교회를 오가지만 교회에서의 우리의 예배는이미 '축제'가 아니라 '곤욕스런 의무적 행사'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교회 예배나 모임은 생동감이 없습니다. 생동감을 잃은 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분하고 지겨워 진 예배'와 더불어 우리의 가정, 직장 생활속에서 우리는 땅에 파묻었던 옛 더러운 쓰레기들(짜증, 분노, 시기, 비난,욕지거리, 음탕한 생각들...)을 다시 꺼내 입에 걸치고 있습니다.순간 순간 되돌아 보면 '이건 아니야'라고 고개를 내젓게 되지만, 점차 그런 감각조차 무디어지고, 우리는 이런 식의 무기력한 삶에 익숙해 지게 됩니다. 예수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수 밖에 있는 것도 아닌 회색지대의'명목상 기독교인'...우리는 그래도 압니다. 이건 아니라는 것을!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말하지 않아도, 표현 다 못해도, 적어도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의 영혼을 뒤덮고 있는 그 메마름과 갈증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속에는 이 회색지대를 탈출해야만 한다는 열망들이 희미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너 나 할것 없이 누구나 말입니다.그런데 이 말라 비틀어진 영혼에 새로운 성령의 불을 지펴 올려야 하는데그 불을 지펴 줄 이가 없습니다. 이 구역질 나는 미지근한 회색지대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돌파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안의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 집사님들조차도 우리와 꼭같은 '낙엽'같은 분들 일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분들 조차도 관념과 습관의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가 바로 이 중환자실이 되어 있습니다.'열정!' 열정을 잃어버린 인생은 처참한 것입니다. 그것은 생활(生活)이 아니라 단지 생존(生存)일 뿐입니다.열정을 잃어버린 노동은 호미질이라도 중노동입니다. 마찬가지로 '열정'을잃어버린 신앙생활은 한토막의 비극 그 자체입니다. 예배나 전도가 '의무'로 전락하고, 죽지 못해 감당해야 하는 '고역'이 되는 것입니다.이제, 우리의 이 잠들어 있는 심령을 일깨우고, 굳어 있는 영혼에 새로운감격과 열정의 불을 당겨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계속 살아갈 것입니까그러나, 누군가는, 그 누군가는... 메마른 낙엽더미 같은 우리 심령에, 우리 모임에 성령의 불길을 일으킬 '도화선(導火線)'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불쏘시개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때 120명의 성도들이 한다락방에 날마다 모여 성령강림을 뜨겁게 기도하고 있을 때 오순절 날 천지개벽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여 성령충만과 함께 각 나라 말이 입에서 터져나오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120명이 복음의 불덩어리가 되어 세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놀라운 성령의 역사의 현장에는 베드로를 위시한 열한명의 [불쏘시개]가있었습니다. 이들은 결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무식하고 교양없는 어부나 막노동꾼이 아니면 교활하게 매국노의 일당이 되어 동족들을 괴롭히던 로마의 앞잡이이거나 자기혈기도 제대로 못가누는 데모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마가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다가 성령께서 임하신 이후, 이들의 생애는 180도 변하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은 바로 이들에 대한 생생한 기록입니다. 이들이 가는 곳 마다 사랑과 용서, 나눔과 섬김의 역사가 일어나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으며 잠들어 있던 영혼들이 일깨워 졌습니다. 이들이 가는 곳 마다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생존에 급급하던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복음으로 신바람 나는 인생을 선사했습니다. 바로 이들은 성령의 바람잡이들이었습니다.마침내 이들 불쏘시개들은 결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커다란 장작개비 [사울]이라는 예수핍박자에게 예수복음의 불을 옮겨 붙이고 말았습니다. 그[사울]이라는 젖은 장작개비가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일꾼인 바로 바울(Paul)사도입니다.지난 인류역사 속에서 교회가 타락하고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들었을 때마다 목전에 다다른 하나님의 진노에 몸을 떨며 잠들고 메마른 심령들에새로운 영적각성과 성령충만이 임하기를 눈물로 간구하던, 그리하여 마침내그 말라 비틀어진 낙엽과 같은 심령들 속에 뜨거운 성령의 불을 점화시킨[불쏘시개]들이 있었습니다.중세교회의 타락과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마르틴.루터]와 [존.캘빈]이바로 기독교 대 개혁.부흥의 불쏘시개들이었습니다.1700년대의 독일교회 영적 대 각성.부흥 운동의 '도화선', '불쏘시개'는바로 [진젠돌프]백작이었습니다. 저 유명한 1800년대의 스코틀랜드의 대부흥의 밑바닥에는 죤.낙스라는 '불쏘시개'가 있었으며, 기독교 역사에 있어경이의 대부흥으로 기록되고 있는 1900년대 초의 영국 웨일즈 지방의 부흥에는 [이반.로버쯔]라는 한 가난하고 나이 어린 광부가 '불쏘시개'가 되었습니다.1700년대에 일어난 미국의 영적대부흥은 부도덕과 방탕과 세상과의 타협과 영적 사막화로 설명되는 당시의 교회(기독교) 상황을 가슴을 치며 안타까와 하던, 그리하여 담대하게 기독교인들의 죄를 지적하고 영적 각성과 회심을 촉구한 [요나단.에드워드]라는 '불쏘시개'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은 대부흥의 불길은 메사추세츠에서 뉴잉글랜드에 이르기까지 20년간계속 타 올랐던 것입니다.1902년에 인도 [카샤]지역을 강타한 대부흥의 불길에는 연약한 두 여선교사가 '불쏘시개'로 사용되었으며, 저 유명한 1907년의 우리나라 한국의 영적 대부흥의 역사에는 1906년부터 인도 카샤지역에서의 대부흥 소식을 접한 이후 한국땅에서의 대부흥을 위해 넉달동안 매일 네시간 이상씩 눈물로기도했던 20여명의 선교사들이 '불쏘시개'로 사용되었습니다.문제는, 지금, 바로 지금, 우리의 모임에 이러한 '불쏘시개.바람잡이'들이너무도 드물거나 혹은 아얘 없다는 것입니다.벤스.헤브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의 우리 교회는(혹은 기독교인 개개인의 심령은) '먼지같이 메마르고, 얼음같이 차며, 해골같이 파리하고, 인형같이 무감각한' 모습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폭풍우 속에서 바다를 표류하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를 받았으나 양양공급과 운동의 절대적 부족으로 앙상한 몸으로 겨우 겨우 연명만 하고 누워있는 사람처럼, 그 심령이 구원은얻었으되 영적인 기력은 쇠잔하여져 겨우 신앙을 연명해 나가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문제는 우리 자신의(혹은 교회의) 이러한 무기력과 영성의 실종상태를 우리 스스로 '경건'이니, '절제된 감정'이니, '거룩'이니 하는 그럴듯한 말로스스로를 교묘히 달래거나 위로하고 있는 사실입니다.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앞에 우리의 심령의 상태를 그대로 내어놓고진진하게 진단해 본다면 사실은 우리의 영혼은 [E.A.죤슨]이 말한 심각한'영혼의 심장병'을, 혹은 '영혼의 폐결핵'을 앓고 있을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심장병이나 폐결핵은 처음엔 자신이나 남들이 알아차릴 수 없으며, 오히려 표면적으로 건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면 그 결과는 숨길수 없는 것이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우리속에 잠복해 있는 영적 기근(기갈)과 죄에 대한 무감각과, 점차 세속적인 욕망으로 채워져 가는 우리의 병세는 곧 머지않아 다른 이들에게도숨길 수 없게 될 것이며, 우리가운데 이미 어떤 이들은 그 병세가 악화되어거의 '구원받기 이전'의 패역함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제가 아는 한 소년은 멀쩡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안색이 청백해지고, 쉬피로해지며, 기침이 잦아 졌으며, 얼마후엔 각혈까지 하였습니다. 심상치 않아 몇번이나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길 강권했으나 그때마다 그는 펄쩍뛰며 "무슨 소릴요 난 건강해요. 좀 무리를 했을 뿐이예요."라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러나 몇 달후, 쓰러진 그는 병원에 실려갔는데 이미 폐결핵3기에 이르렀고, 가족들까지도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어 졌습니다.이 시대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행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영혼의 질병에대해 똑바로 지적해 줄 수 있는 영적의사들이 대단히 드물다는 것이요, 또하나의 불행은 누군가 "당신은 병들었다. 치유받아야 한다"고 지적해 주면그것에 대해 신경질적이고 짜증과 분노로 가득찬 반응을 보이는 우리 자신의 태도입니다.오늘날,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상습적인 죄악에 대해 지적하고권고하는 목회자들은 대단히 적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의 죄에 대해 '징계'하는 권리와 의무를 포기한 지도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제 자신 조차도 [찬미]가족 가운데 심각한 영적 피폐속에 빠져 있는 단원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못하여왔습니다. 그렇게 된 이면에는, 그런 지적에 대해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반발하고 토라지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부터 이미 그런 병에 결려 있습니다.누군가의 지적과 충고에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이 겸허함이 아니라 불쾌감과 신경질이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중병이 깊었다는 증거입니다.술.담배를 팔지 말라는 목회자의 권면에 교회를 떠난 어떤 장로님에 대한이야기와 지금도 술도매업에 열심히 종사하는 또 다른 장로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 떠나신 목사님도 그러셨고 그 전에 계셨던 목사님도 그러셨고 결국 떠나실 때까지 그 점을 지적하지 못하셨다 합니다. 그 장로님이수석장로님인데 그 분 눈밖에 나면 괴로움이 많기 때문이거나 아무리 권고해도 소귀에 경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 횡포에 목회자가 2-3년을못 버티고 교회를 떠나셔도 그 잘못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견책한 교인이나주위 목회자들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완악해져 가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의 영적 절대온도가 한해가무섭게 급격하게 냉각되고 있다는 진단도 있습니다.일부 선견자들은 이미 한국교회가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무서운 경고도 하고 있습니다. 숫적인 증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질적인 면에서는 심각할정도의 하강곡선을 긋고 있다는 것입니다.지금부터 30여년 전인 1960년에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그래함]박사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오늘날 [미국]의 교회는 매우 이상한 상태에 빠져있다. 한편으로 볼때,오늘날은 역사상의 어느시대에 있어서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또한 교회의 예산은 전례없이 팽창하고 있으며, 교회의 기관들은 유례없이 번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우리는 이와같이 극심한도덕적 타락앞에서 이처럼 '영적능력'이 부족했던 교회를 세계 역사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오늘날 가장 복음주의적인 단체들도 세속적인 물질적 영향을 다분히 받고있다. 라디오, 텔레비젼, 영화, 문학등이 우리의 영적생활과 교회의 능력위에 그 세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뿐만 아니라 자기훈련(自己訓練)과 자기부인(自己否認)의 정신이 주님의모든 백성들 가운데 심히 부족하다. 매년 수많은 회의와 대형집회가 개최되고 무수한 결의문이 발표된다. 그러나 미국교회가 미국사회에 주는 영적,도덕적 영향력은 너무나 약하다. 교회들은 흔히 사소한 문제로 언쟁(言爭)과 분쟁과 투쟁을 일삼고 있는 것을 볼때 두려움을 금할 길이 없다. 과거 10년동안 교회는 너무나도 금전과 인간적 방법에 의지하여 왔다.어디 그뿐인가 기독교 대학, 신학교, 대규모의 선교단체, 라디오 및 TV등의 종교방송등은 참 그리스도의 제자 즉 온전히 주께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성에 실패함으로써 그 권위를 크게 상실하였다.오늘날 교회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자기들 대(代)에 신앙으로 세계를 전복(顚覆)시킨 그 매우 무식했던 소수의 초대(初代)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뚜렷한 특징들, 즉 그들의 정열과 용기와 믿음과 기쁨과 사랑과 단합과 자기훈련과 자기부인(否認)등을 회복하는 일이다. 과연우리는 바로 이것들을 다시 회복할 수가 있는가30여년이 지난 오늘날, 당시의 미국교회를 향해 애통한 심정으로 외쳤던빌리그래함박사의 이 눈물어린 경고는 바로 지금의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멧세지가 아닙니까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교회들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으로,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속에서 죄악과 불법의 밤이 깊고 어두워질 수록 바로 그때가 영적 대각성과 부흥의 날이 가장 가까와 진 때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대부흥이 다 유사한 영적 암흑기, 침체기에 타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대로를 결코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문제는, 가장 큰 문제는, 이 피폐해진 심령들에 새로운 정열과 용기와 믿음의 불을 일으키는 데에 필요한 '불쏘시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고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불쏘시개는 많은 수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단 한 명이어도 충분합니다. 많이 배우지 않아도, 총명하지 않아도,나이가 어려도, 연약한 여인들이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 하나, 나 자신의(우리 모임과 우리 교회의)죄와 패역함과 무기력함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골방 은밀한 곳에서 눈물로 통회 자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가슴을 찢는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 자신의 심령에 성령의 능력을 회복시켜달라는 간구를 주님앞에 아뢰는 자를 하나님께서 '불쏘시개'로 쓰실 것입니다.저는 함께 이 예수마을에 살고 있는 두 분(조성래목사님, 이승룡집사님)을지켜보며 크나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불과 1년전만 해도 각자의 영역에서 인정받으며 밤낮으로 부지런히 사역을 하시던 분들입니다. 조목사님께선 개척하신 교회가 안정권()에 접어든 목회자로, I.V.F대학생선교단체의 대구지부 운영 이사장으로, 모 여중.고의 교목으로, 청소년 전문사역자로 널리 인정받던 분이십니다. 그러나 돌연 지난해 7월, 온갖 정성과 기도로 개척하시고 섬겨오시던 교회를 부목사님께 위임하시고 사임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산골로 이사를 들어오셨습니다. 무슨 또 다른 교회를 맡으신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중 하나는, 10여년간 부지런히 목회에 헌신해오셨는데 어느날 되돌아 보니 애초에 가슴뜨겁게 지녔던 그 주님사랑과 열정과 성령충만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사그러져 버리고, 인간적인 경험과 지식으로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어 가며 마지못해 목회를 하고있는 자신을 발견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일이면 몰라도 한 영혼한 영혼을 양육하고 돌보는 이 일을 그와같이 빈약한 '밑천'으로 감당한다는 것이 도저히 양심에 용납이 되지 않아 과감히 교회를 사임하시고 목회를 중단해 버리신 것입니다.지금도 주위의 많은 분들이 "목사가 목회는 안하고 산속에서 와 그카고있노 목사는 목회를 해야지."라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 옵니다. 그러나목사님은 단호하십니다. "나는 지금 쉬는 게 아닙니다. 제 속에 예전에 가졌던 그 열정과 성령의 능력이 다시 회복되지 않으면 절대 목회에 다시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겐 당장의 목회보다도 영성회복이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이승룡집사님은 서울 불광동 기독교 수양관에서 캠프디렉터로 13년간 계셨던, 캠프지도자로 유명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나이 마흔이 되던 해, 문득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진지하고도 심각한 자기성찰 결과, 자신이 지금까지 줄기차게 달려온 그 길이 정말 평생을 다 바쳐 헌신할 만큼 가치있고소중한 일이었던가 하는 물음앞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발견은, 주님을 처음 영접하고 그토록 열정적으로 주님과 이웃을 섬기며 참으로 수년간 능력있는 삶을 살았던 자신이 어느새 냉랭하고차가운 습관적인 크리스챤으로 전락해 있음을 발견한 그것이었습니다.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도 자신의 재능과 경험만으로도 넉넉히 수많은 캠프들을 치루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생명력없는 일에 시간과 몸을 바쳐오고 있었는가를 깨달으신 것입니다.더이상 그런 상태로 그런 일에 마지못해 매달려 있는 것이 용납될 수 없으셨던 이승룡집사님은 10여년 이상 몸바쳐 온 그 일터를 단호히 떠나셨던것입니다. 기도원에 엎드려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던 중 올 여름, 이곳삼도봉 예수마을에 연결이 되어 마침내 온 가족이 이사를 들어오셨습니다.저희가 볼 땐 이 두분은 이 산골짜기에 은둔하실 분이 아니시며, 은둔해서도 안 될 분들이십니다. 앞으로 주님의 나라와 이웃들을 위해 참으로 큰 일을 하실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 분들은 이 산골짜기에 납작 엎드려 계십니다. 가끔 꼭 필요한 집회와 강의를 나가시는 것 외엔 말입니다.그러나 저는 이 분들이 이곳에 엎드려 주님앞에 눈물로 기도하고 계시는그 제목들을 압니다. 그 분들 속에 다시한번 예전에 뜨겁게 불태웠던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하는 간구(懇求)인 것입니다.이 두분은 늘 요한계시록 2장의 그 에베소교회에 내리셨던 하나님의 책망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선 에베소교회를 향해 "그래. 너희가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수고가 얼마나 큰지, 핍박도 잘 견디고 어려움도 잘 참아 내는지, 교회내의 죄악들도 허용치 않고, 거짓 목회자들도잘 가려내며 내 이름을 위해 끝까지 견뎌왔는지도 내가 다 안다. 그러나 너희를 내가 징계하겠다. 너희는 나를 향한 그 첫사랑을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디서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에 가졌던 그것을 되찾으라. 만일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용도폐기처분해버리겠다."(계2:1∼5)라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오, 우리가 주님에 대한 그 사랑을 지니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설교를 할수 있고,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으며, 찬송을 그럴듯 하게 부를 수 있으며,목사노릇, 전도사 노릇, 장로 집사노릇, 청년부 대학부 회장, 임원 노릇, 성가대, 교사노릇을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섬찍한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계속 그런위선으로 껍쭉거려대며 설쳐대면 머지않아 촛대를 옮기고야 마시겠다는 것입니다.저는 조목사님과 이집사님 두분의, 겸허하고도 정확한 자신의 영적상태에대한 진단과, 이 싯점에서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냉철히 판단해 내신 그삶의 자세에 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고요히 묵산컨대, 우리 한국교회의 영적 대각성과 대부흥을 위한 불쏘시개들은 이분들과 같은 가난한 마음의 사람들이 되지않을까 기대해봅니다.교회의 여러 각 모임마다 작지만 분명한 '영적 각성의 불꽃'이 피어 올라야 하겠습니다. "이건 아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단 한 사람이라도, 단 두사라이라도, 단 세사람이라도.... 이 애타는 자기각성의 심장을 가진 분들은 오늘부터 깊은 골방에 모여 [기도]합시다. 우리교회가, 우리 청년부가, 우리 대학부가, 우리 중고등부가 이대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이대로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이 절대절명의 위기를 가슴에 부여안고 주님의 은혜를 간구합시다. 남들은둘째치고 우선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하지않겠습니까 지금과 같은 무기력과 관념적 신앙의 삶에 대해 진저리를 칩시다.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오늘도 교회에 나와 습관적인 예배를 드리고는 세상의 어두움속으로 돌아가는 가련한 형제자매들에게 야구경기에서의 이만수 선수처럼 격려와 도전의 포효를 외칠 자 없습니까우리의 연약해진 영혼의 무릎을 든든히 세우고, 허덕대는 메마른 심령에신바람을 일으킬 성령의 바람잡이가 되실 이 없습니까이번에 삼도봉 예수마을에서 모인 [찬미]선교단 가족들 월례회에서 저희는 "왜 우리의 눈빛에는 총기가 없는가 왜 우리의 걸음걸이는 땅바닥을질질 끌고 다니는 무기력 걸음걸이인가"라며 가슴을 쳤습니다.하루를 살아도 싱싱하고 패기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선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서로 외쳐줍시다. 군인들이 구보를 할 때 힘있게 군가를 부르고 구령을 힘차게 외치듯이, 치열한 매일매일의 영적전투를 치르고 있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서로 바라보며 용기를 북돋워주고 격려해 줍시다.성령의 능력과 힘은 옮겨붙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이 성령의 주시는 능력을 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성령의 충만한능력을 덧입으면 그 불은 바로 그 옆 사람에게 옮겨 붙습니다. 그리고 그불은 순식간에 큰 불로 변합니다.주님께서 바로 나를 우리 모임의, 우리 교회의 성령의 불쏘시개로 사용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단 사람의 바람잡이가 모임전체의 사기와 능력을 수십배 상승시킬 수 있듯이, 단 한 사람의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 온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작은 불씨 하나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수천만평과 수천채의 최고급 주택들을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듯이, 온전히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갈망했던 [이반 노브츠]라는 한 광부소년의기도가 온 영국교회와 나아가 동시대의 전 세계에서의 영적 대각성.대부흥의 거대한 불길을 일으킨 도화선이 되었듯이, 우리 자신- 이 볼품없는 한영혼의 겸허한 기도는 위대한 역사의 '불쏘시개'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바로 그 사람, 한 시대의 운명을 가늠할- 비록 볼품없는 휴지 한조각 같은- 작은 불쏘시개를 이 시대는 목말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우리가 겸손한 '불쏘시개'로 예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우리에게위대한 영적 대각성.대부흥의 불을 점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1900년대 초의그 대폭풍같았던 영적 대부흥의 불이 이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다시 한 번 폭발되기를 사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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