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분노

본문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최악의 모독이며 가장 두려워 하는 바인데 이는 우리가 대부분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깊은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취급받는 것은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각하게 강요하는 것이며 그러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의 분노는 표면으로 들끓어 오르며 말이나 행동의 폭력으로 폭발하게 된다.2.분노로 인한 의기소침.아무도 분노를 피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표현할 수 없고 또 표현하면 안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 분노를 억누른다.그 결과 종종 의기소침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낳고 만다.물론 의기소침은 대개 분노처럼 보이지 않는다. 의기소침은 아무 소망과 비젼이 없는 자기 방종과 자기연민으로 표현된다. 최악의 경우 의기소침은 사람을 마비시켜 일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잠도 못자며 심지어 느끼지도 못하는 사태에 이르게 한다.이는 마치 우리앞에 터지기를 기다리는 댐이 있는 것과 같은데 그 댐은 분노와 두려움의 힘을 막기에 충분할 정도로 잘 만들어 질 수 있다.우리가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 나가는 동안에는 그 댐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배척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거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인정 받기도 한다. 그러나 상황이바뀌면 위기가 닥쳐온다. 사랑하는 자가 죽기도 하고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두려움에 쌓이기도 하고 배신감소외감등의 원인들로 인해 댐의 벽이 깨어진다.그러나 그 거센 분노의 물결이 어떠할 것인지알고 그에 수반되는 감정들이 우리 사랑의 주 하나님에 의하여 흡수된다는 것을 믿으면 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것이다.-던컨 뷰케넌 -3.분노와 미음어떤분과 학생데모, 광주사태, 경제위기, 사회혼란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 받다가 얻게된 하나의 결론이있었다. 그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 밭이 무섭게 파괴되고 침몰되어 간다는 사실이었다.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분노와 미움이 도사리고 있어 심령이 강퍅해 지고 독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누군가를 죽이고 피를 보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한이 진하게 서려 있는 것이다. 어떤 사건 자체 보다도 무서운 것은 인간의 분노와 미움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제일 먼저 치료 받아야할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비록 문제는 해결 될 수 있어도 이미 독버섯 처럼 자라난 이 분노와 미움을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겠는가분노와 미움의 악령은 계속해서 분노와 미움을 증가시킬 뿐이다. 결국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결국 자기 자신도 죽이고 말것이다.-하용조 목사-4.억울함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예수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분이 누구며 불의한 고난을 당했다면 예수님만큼 당한자가 누구인가우리는 너무나 우리 자신의 억울함과 고난을 크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온 인류의 고난을 다 합하고억울함을 다 합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고난의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다.그것은 마태복음 18장에 나타난 1만달란트(약172억원)빚진 사람과 1백데나리온(약14600원)빚진 사람과의 차이보다 더 큰 것이다.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다.더구나 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변명까지 해 주셨다.5.오해된 분노자기의 분노와 화를 하나님의 분노와 화로 착각하고 자기의 열심을 하나님의 열심으로 착각한다.예수님은 따르라고 외치면서도 결국은 예수님의 제자보다는 자기의 제자를 만들고 자기의 세력을 형성하며 사랑과 용서를 말하면서도 무서운 자기 벽을 두겹 세겹 쌓고 있다.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짓고 있는가 6.인간의 분노와 하나님의 분노인간의 분노는 대게 방종하며 억제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분노는 언제나 원칙이 있고 조절되는 것이다.우리의 분노는 발작적인 폭발이 되는 경향이 있으며 불쾌한 감정과 보복 하려는 시도에 의하여 일어나는경향이 있다.하지만 하나님의 분노는 악에의해서만 일어나고 악에의한 정죄 속에서만 표현되는 하나님의 계속적이며확고한 적대이다.하나님의 사적인 원한이나 앙갚음 같은 것을 전혀 갖고 있지 않는 분이시다. 실로 하나님은 그 적대자에대해 감소되지 않은 사랑을 동시에 유지 하신다.7. 노하기를 더디하라.(시59:8,9)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생명으로 넘치게 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생활가운데 넘쳐나게 하기위해서는 분노하는 것을 참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노하기를 더디하신다고 말씀하셨다.분노는 우리의 사고력을 마비시킨다. 뿐만 아니라 분노는 전신의 혈관을 수축시켜 몸의 신진대사를 방해하고 혈압을 높이며 심장마비를 일으키기도 한다.성경 시편 37:8에보면"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지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우리가 분을 계속해서 내면 그 결과 행악에 치우치게 된다.모세를 지도자로 삼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하자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다. 그러자 화가 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 물을 내랴"고 말하면서 반석을 두 번 쳤다. 그러자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증을 해소 할 수 있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가룩함을 나타 내지 아니항고로 너희는 이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하셨다.모세같이 위대한 종도 분노를 발함으로서 하나님을 올바르게 대면하지 못하게 되자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있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만 것이다.우리가 화가 날 때는 말씀을 묵상하고 찬송을부르것이 좋은 것이다. 분이 나더라도 말씀을 묵상하며 찬송을 부르면 성령께서 우리의 분노를 가라앉게 해 주신다. 그리고 분이나면 시간의 여유를 가져라.20분 후에 화를 내자고 20분만 기다리면 분노가 사라지고 그때 분을 내지않은 것이 정말 잘 한 일임을알게 되다. 또 상대방을 이해 하려고 하면 분이 나지 않게 됨으로 우리의 마음자세가 긍정적인 자세가 된다.에베소서 3:20에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오늘 마음의 자세는 어떠한가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한가 8.분노의 극복☞ 참고,[긍정적으로 기쁨으로 사는 방법].빌 웨버.이은재 역.1990.나침판사.pp.27-42.9.바가지 철학(고부간의 갈등,스트레스)옛날 어머니들은 바가지에 금이 가 쓰지 못하게 되면 버리질 않고 주렁주렁 엮어서 고이 보관해두곤 했다. 아버지가 무슨 일로 화가 치밀어 폭발할 기미가 보이면 살짝 빠져나가 금이 간 바가지를 부엌에 늘어놓는다. 세간살이를 깨러 부엌에 들이닥친 아버지는 이 바가지를 짓밝음으로써 그 강한 파열음으로 울화를푼다. 금이 간 요강이나 뚝배기도 버리질 않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보관, 긴요하게 썼던 것이다. 아무리화가 났다 해도 세간을 무차별로 파괴한다는 법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옛 어머니들은 잘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바가지 긁는 것으로 며느리가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이 같은 심리의 연장선에서 합리화시킬 수가 있다.소리만 요란스럽고 경제적 손실을 극소화시킴으로써 화를 푸는 현명한 전통적 스트레스 해소법이 아닐 수없다. 그만큼 화를 속으로 풀 줄 알았던 것이다.지식층에서도 박(匏)을 갖고 화를 푸는데, 서민들처럼 물리적으로 풀지 않고 철학적으로 푼다. 몹시 울화에 시달리는 날이면 박 한 덩이 안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 강물가에 가서 그 박을 띄워보낸다. 울화나 분통을 박에 유감(類感)시켜 망망대해 속에 소멸시켜버리는 형이상학(刑而上學)적인 해소법이 아닐 수 없다.이처럼 한국에 있어 박은 긁어대건, 짓밟아 깨건, 강물에 띄워보내건 울화를 속으로 푸는 스트레스 문화재였다.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지붕에 가라앉을 것만 같이 데굴데굴 많은 박을 기른 이유를 새삼스레 알 것만 같다.한데 요즈음에는 박도 기르지 않고 아무리 긁어대고 밟아대도 소리가 나질 않는 비닐 바가지로 탈바꿈한탓인지, 속으로 화를 풀지 못하고 걸핏하면 분화구처럼 겉으로 화를 내뿜는다. 옛날 같으면 바가지 긁는 것으로 해소시켰던 고부불화나 부부불화가 가출이나 별거, 이혼, 죽음 같은 극단으로 흐르고 있는 파멸률이지난 10년마다 30퍼센트씩 늘어왔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자기네들끼리의 내분으로 울적해진일단의 청소년들이 지나가는 버스를 두들겨 부수었던 것도 그렇다. 스트레스를 밖으로 분화(噴火)시키기 않게 하기 위해 보건사회부에서 박 심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83/7/1210.가인의 마음내 인격속에는 가인과 같은 마음은 없는지 우리는 가인을 악한 사람이고 아벨을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며 산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아벨과 같이 선한 의로움만 갖고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그러한 소망은 희망일뿐 내면에 잠겨 있는 또 다른 내 속에는 추악한 가인의 속성을 갖고 살아간다.즉, 우리의 인격속에 아벨과 가인의 피가 공존하여 흐르고 있으며 마음속에 있는 가인과 아벨의 두마음이내 자아를 지배하려고 서로 싸우고 있다.아벨의 마음만 갖고 살고 있는 줄 알았던 내 속에 가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또 내마음을 지배하고 있음을인하여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두려움을 느낀다.얼마전 지존파라고 하는 악당들이 세상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하여 침을 뱉고 인간의 탈을 쓰고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렇게 욕하고 흥분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그들과 같은 적개심과 살의가 가득하다면 감히 누가 그들을 향하여 돌을 던질 것인가가인의 마음은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에서 꿈틀거리고 있다.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유대인들이 예수님앞에서 분노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도 간음의 욕구가 잠재되어있음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돌을 버리고 물러갔던 것이 아니겠는가율법으로 잘 포장된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더러움이 있었던 것을 그들은 순간 알았을 것이다.그 누구도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음을 알고 돌아섰던 군중들의 마음에도 가인의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바울은 자신의 마음에서 가인의 마음을 발견했다.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행함이라...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건져내랴]바울도 그렇게 자신의 이중성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바로 그렇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가인의 마음을 인하여 근심하고 탄식하는 자가 영혼이 건강한자라 할 것이다.가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 마음에 이끌려 사는 자들은 이미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심각한 병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건강한 사람은 애통해 한다. 가인의 마음이 내 속에서 꿈틀대지 않도록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자신의 힘없음을 깨닫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주와 함께 동행하기를힘스게 된다.나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가인을 이기기 위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11. 경건한 자기통제알렉산더 바쉐가 중요한 실험을 하기 위해 그 준비로 수년간 갖은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어느 날 그는탁자 위에 여러 신기한 도구들을 실험할 수 있도록 쌓아 놓은 후에 집을 잠깐 비웠다. 그 사이에 그의 어머니가 연구실을 지나가다가 그만 치마로 쌓아 놓은 실험 도구를 건드려 모든 도구들을 박살내고 말았다.이에 놀란 그의 어머니는 모든 사실을 며느리에게 고백하였다. 이 말을 들은 바쉐는 잠시 정신을 잃은 듯이 잠자코 서있더니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가 5분 후에 맑은 정신으로 유쾌하게 다시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기 식구들에게는 결코 그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페어맨 로저스에게 “나는 5분 동안은 나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했지요”라고 했다.이러한 정열의 자기 통제는 그 인격이 하나님을 닮았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노하기를 더디하는” 분이시기에 감정의 폭발에 좌우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비록 죄에 대해서는 영원히 분을 품으시는 분이시나 언제나 변함없이 침착하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들을축복하셨다. 왜냐하면 단지 화평케 하는 자들만이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울 줄 알기 때문이다.12. 알렉산더의 실수알렉산더 대왕은 "나는 더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혀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큰 불행을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자란 막연한 친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클레토스라는 그의 친구는 알렉산더 대제의 휘하에서 장군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한 번은 이 친구가 술에 취해 알렉산더의 많은 군졸들 앞에서 대제를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알렉산더는 옆에있던 병사의 창을 빼앗아서 클레토스에게 던졌습니다. 물론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불행하게 그 창은 자기의 친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후회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다 옆의 사람들의 만류로 실패했다는 일화가 전해옵니다.그는 전 세계를 정복했지만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얼마나 자주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므로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지게 하는지요 그래서 성경은 언어 생활을 조심하는 것이 중요함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성공한 사람들이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인격으로 자신을 훈련시킬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언어의 조급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려줍니다. 이 말을 조심하지못하면 드디어 이 말에 의해서 성질을 폭발시킵니다. 성내는 일에 관하여도 잠언서는 풍부한 교훈을 갖고있습니다. 되도록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름답고 유순한 말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잠15:1)13. 분노의 마음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 [올훼]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에 '레이디'와 '제이브'라는 주인공이 나타납니다. 레이디라는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는 양조장과 큰 과수원을 경영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거대한 저택에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며 살아가던 어느 날 한 난폭한 젊은이가 과수원에 불을 질러 집도 불에 타고, 레이디의 아버지도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얼마 후 세월이 흘러 레이디는 한 젊은 청년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오붓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남편제이브가 과수원에 불을 지르고 아버지를 죽인 살해범이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그때부터 남편에 대한 적개심과 보복심이 생겨 제이브를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제이브가 불치의 병에 걸려서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매일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하는데 레이디는 남편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도 돌봐주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둡니다. 아파서 고통스럽게 괴로움을 당하면서 그대로 죽어가기를 기다립니다. 잔인한 아내입니다.그의 마음 속에는 자기의 아버지를 죽인 저 남자, 어떻게 해서든지 고통스럽게 죽여야 한다는 보복심으로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적개심에 찬 아내의 모습에서 남편 제이브는 결국 권총으로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자살하고 말았습니다.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넓은 세계 속에 살도록 만들어주지만, 분노,적개심, 시기,다툼은 전체보다는 한 부분에, 적은 곳에 자기를 놓게 합니다.용서와 사랑의 세계는 넓은 곳이지만 분노와 적개심은 좁디 좁은 세계밖엔 안됩니다. 전체보다 부분에,넓은 곳보다 좁은 곳에 집착하게 되면 결국은 마귀의 유혹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35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