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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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물거품(서 재필)13세때(1879년)장원을 한 천재다.16세에 일본 유년 사관학교에입학 다음해 졸업.갑신정변(甲申政變,1884)의 주역으로 18세때 병조참판이라는 어머어머한 감투까지 쓴 인재다.바로 서 재필(徐載弼,1866-1951)이라는 사람이다.청나라의 간썹으로 정변이 실패하자 그는 일본으로 일단 망명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시민이되었고 이어서 워싱톤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필두로 세균학 박사가 된 다음 의사로 입신했다. 그는 미국명필립 제이슨으로 살았다. 천재다운 면모를 국내외에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이다.이 사람이 갑오경장(甲午更張,1894)이후 고국()에 돌아오자 국가는 그에게 중추원 고문이라는 중직을주었고 이어서 그는 정부의 지원을 얻어서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간했다.바로 그 시점의 서재필의 기록을 살펴보자매천야록(梅泉野錄)이라는 책에의하면"서재필은 갑오년에 귀국하여 성상(고종)을 뵙고 외신(外臣)이라고 칭했고 안경쓰고 궐련(담배) 물고 뒷짐을 지고서 (당시 민족의 감정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임)물러남으로 온 조정이 통분을 금치 못하였다"고기록해 놓고 있다.뿐만 아니라 그에게 돌립협회 회원이 되어달라고 하니까 그는 말하기를"나는 조선 쌀람이 아닙니다.미국 쌀람입니다.회원될 수 없습니다. 고문노릇 하지요 미국 쌀람 말 들으시오"라고 했고이름도 철두철미하게 필립제선(畢立堤仙)을 고수했다고 한다.어찌 뿌리를 상실한 한 송이 화려한 장미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이렇게 자기의 뿌리를 상실하고 살았던 그는 역사속에서 한갓 화려한 물거품같은 존재로써 잠깐 보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자기 분수를 모르고 그 땅에서 이탈하는 순간 그는 뿌리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3.자기분수이어폰 낀 원숭이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벌거숭이 원숭이'에 보면, 육식동물인 사자는 먹이 한 마리 잡아먹고 배가부르면 사흘 동안은 먹지 않으며 먹이가 곁에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한다. 그러기에 아프리카 야생공원에 가보면 사자 가족이 어울려 있는 바로 앞에 마사이족(族) 청년이 유유히걸어가고 있는 것이며, 또 바로 그 곁에서 사슴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하지만 먹이를 잡을 때만은 그 상대가 비록 나약한 토끼 한 마리일지라도 전력을 다하여 추적한다.잡아먹을 상대가 나약하다 하여 달려가는 도중에 암사자에게 추파를 던진다든가 곁눈질을 하는 법이 없다.한데 초식동물인 원숭이는 나뭇잎이나 열매 같은 영양가 낮은 것만 뜯어먹기에 하루 종일 먹지 않고는 체력유지가 안 된다. 그러기에 원숭이는 먹으면서 이동하고 이동하면서 젖을 먹이며 싸우면서 먹고 사랑하면서 이를 잡는다. 곧 이것저것 동시에 하는 '하면서주의(主義)'다.짐승을 사람에 비겨서 안됐지만 육식을 주로 하는 서양사람은 사자처럼 일할 때는 그 하는 일에 열중을한다. 서서 차 한잔 마실 여유를 허락받지 못한다. 그리고 놀 때는 칼로 자르듯이 일과 결별하고 노는 데열중한다. 이에 비해 초식을 주로 해온 우리 한국사람은 원숭이처럼 일하면서 쉬고 일하며 밥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뽕 따면서 님도 본다.기성세대가 이해 못 하는 신생세대의 행동이 하나 둘일까마는 그중 두드러진 하나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팝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원숭이 성(性) '하면서 주의'다. 팝송 듣고 싶을 때 팝송 듣고 공부할 때 공부하라는 타이름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머리 속을 시끌시끌하게 해놓아야 공부가 잘된다고 우겨대는데야 대항할 논리를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먹고살 것 없어 푸성귀만 뜯어먹고 살았던 슬픈 역사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같은 '하면서 주의'를 체질화시킨 것이려니......하고 눈물겹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데 이 팝송을 들어야 공부가 더 잘된다고 하는'하면서 주의'는 우리 한국 청소년들에 국한된 초식유전질(草食遺傳質)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보도된 바 미국의 한 교육연구소가 조사한 것을 보면 국민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학생 가운데 수학문제를 풀 때 88퍼센트가, 독서를 할 때 64퍼센트가 팝송을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다. 집중력을요하는 암기과목에는 해롭지만 응용문제나 복습할 때는 오히려 질력내지 않고 오래 공부할 수 있게 해주어도움이 된다고도 했다.현대의 '하면서 주의'는 가중되는 생활주변의 도시 소음과 텔레비전 등 잡동사니를 동시에 수용하도록 체질화된 것이며, 오히려 조용하면 불안을 느낄 정도로 심화돼 있다 한다. 이어폰 낀 벌거숭이 원숭이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87/12/304.현시점(現時點)을 모르는 사람들아동문학가 윤석중(尹石重,1911-)씨의 동시(童詩)에 [넉 점 반]이라는 직품이 있다.시계가 귀하던 시절시간과 동심에 얽힌 이야기를 詩的으로 엮어본 아름다운 글이다." 아가가 아가가 가겟집에 가서할아버지,할아버지지금 몇 시냐구요넉 점 반이다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한참 서서 구경하고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 거미 거동한참 앉아 구경하고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분꽃 따물고 니나니 나니나해가 꼴깍 져 돌아왔다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시의성(時宜性)을 알지 못한 꼬마의 천진난만함이 그대로 들어 있는 시이다.그러나 요즘 사람들을 보면 이러한 시의성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시계는 저녁이 되어도 넉 점 반으로 착각하고 사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우리가 당면한 최대의 불행은 우리가 살고 았는 현 시점을 바로 아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지금이 도데체 사치하고 방탕할 때인가정신없이 흥청망청할 때인가 말이다. 잘난 사람들의 목소리만 커질 뿐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다.이제는 성직자들가지 현시점을 바로 알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죄를 짓기에 급급하니 예수게서 언제오실지 사뭇 긴장감이 감돈다.5.자기 분수를 모른 사람백이(伯夷)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은나라 말기와 주나라 초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원래 숙제와함께 고죽국의 왕자였다. 그런데 부왕이 죽으면서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숙제는 그 자리를 형에게 양보했다. 백이또한 부왕의 유지를 어길 수 없다고 끝내 사양하자 둘은 함께 왕위를 버리고 주나라 문왕의 신하가 될 요량으로 중국땅을 밟았다.그러나 그 당시 중국의 상황은 문왕이 죽고 그 아들 무왕이 군사를 일으켜 포악무도한 은나라 주왕을 멸하고 중국 천하를 통치하고 있었다.그들은 이런 일들이 모두 옳지 않다고 통박한 다음 자기네는 주나라 영향권 밖에서 살겠다고 수양산으로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생활했다는 인물이다.그는 참다운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고 진정한 벗이 아니면 사귀지 않으며 악인이 있는 조정에서는 함께벼슬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아예 그들과 더불어 말도 하지 앞았다. 이런 그였기에 비록 제후들이 정중하게초대하는 글을 보내와도 받기를 거절했다. 제후들이 더러운 존재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고고한 선비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한편 유하혜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 하지않고 작은 벼슬이라고 하찮게 여기지도 않았으며 관직에 나아가면 능력껏 소신대로 이를 처리해 나갔다. 이런 사람이기에 버림을 받아도 원망치않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던 것이다.그는 종종 "나는 나, 너는 너다,네가 비록 내 곁에서 벌거벗고 있다고 한들 자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그에게 실제로 닥친 것이다.심하게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이었다. 폭유로 인하여 집이 허물어져 버린 옆집의 젊고 예쁜 과부가 혼자사는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유하혜는 즉시 방문을 열어주었고 둘은 한 방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모종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는 세번이나 벼슬길에 올랐는데 높은 지위에 앉았다고 즐거워하는 법이 없었고 낮은 지위에 앉았다고해서 원망하는 일도 없었다.그는 그저 자기가 맡은일에 최선을 다했고 부지런히 살았다.우리는 이 두 사람의 생애를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다.백이의 삶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칠한 무덤을 연상하게 된다.유하혜의 일생을 통해서는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정정당당했던 용감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바울은 말했다.세상이 악하고 더럽다고 부정적인 자세를 지닌 사람들을 향하여 그런 사람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것이다"(고전 5:10)고,지구를 떠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자신도 그와같이 부패한 인간임을,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나 외에는 모두 죄인이요 부정한자라고떠들며 백이와 같이 산에 들어가 고사리나 캐먹고 사는 못난 바보가 되는 것이다.6.도둑놈 의식구조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대한 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장은 잘막고 사는데 나는 왜 피눈물나게 일해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느냐고 항면하는 사람들이있다.그것은 사장과 자기의 입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실은 우리 나라가 민주주의 나라이기에 이런 유형의 항변은 그 정당성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만약 우리가 옛 조선 왕조와 같이 반상의 계급이 출생과 더불어 정해져 있다면 사회적인 괴회가 균드ㅜ허ㅏ지 못하기에 이런 부조리가 파생된 것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다ㅣ.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에게 ㅈ어진 기회는 균둥하지 않은가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건전한 경제적인 활동과 남다른 역량의 발휘로 누구를 막론하고 사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나 못살고 너 잘사는 것이 비리요 부조리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가 심각한 부조리이다.학창시절엔 열과 성을 다하여 놀고 즐겼으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근검절약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향락을 추구하고 힘껏 사치하고 방탕하던 사람이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자기의 삶을 살고 지금도 세상 어느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일하여 성공한 사람과 똑 같은 특혜를 누리겠다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치졸하기 짝이없다.공산주의가 망하고 공산주의적인 사상에 물든 사람들이 영겁에 이르도록 불행을 걸머쥘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자기의 삶에 자기가 책음일 진다는 의식이 없고 무조건 너와 나는 모든 혜택을 같이 받아 누려야 한다는도둑놈의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크리스챤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말씀위에 자기들이 서 있다는 것을 명신해야 한다.바로 우리가 누리는 복은 그러한 건전한 입지를 통해 얻어지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딤후2:6에서[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7.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아르헨티나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그들을 무조건 증오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웃 사람들이 좋은 것을 살 때마다 그녀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사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텔레비젼을구입하고 지붕 위에 안테나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녀는 이웃집 사람에게 지붕 위에 있는, 저 나무같은 것이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텔레비젼을 사고싶은 욕구가 충동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빚이 산더미 같으니 그 빚을 갚기 전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소."하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가되자 또 다른 이웃이 안테나를 지붕 위에 설치 했습니다. 이제 주위에 텔레비젼이 없는 집은 그녀의 집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대리접으로 가서 안테나만 사서 지붕 위에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텔레비젼 수상기는 사지 못했습니다. 수상기는 없었지만 안테나만 꽂아도 그녀의 마음은 좀 가라앉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텔레비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테니까요.-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著<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中에서-안테나는 신앙 생활의 외적인 것들입니다. 즉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순종의 측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삶에서 그리스도가 빠진다면 아무리 엄격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수상기 없는 안테나 교인일 뿐입니다. 아들의 영이 없는 자는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하고 계명을 실천하려고 애를 쓴다 하더라도 죽은 자입니다.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우리는 충만해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온전합니다. 그리스도 외에 무엇이 우리에게 더 필요합니까8.자기 분수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제자리에 있을 때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밥알이 박릇속에 있을 때 아름답지만 얼굴이나 옷자락에 있을 때 오히려 추하게 보일 뿐이다.그것은 제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제 자리에 있는 것,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 ,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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