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사건을 구차히 설명않는다!
본문
본문에서 증거하는 것도 그렇고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을 읽어보면 우리가 특별한 것을 하나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성령을 아무리 봐도 부활을 증명하려고 하는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언제든지 사실이 아닌 경우에 이론도 많고, 생각도 많고, 말도 많다. 그러나 사실이 사실인 바에는 특별히 그것이 본인의 일인 경우에는 언제나 말이 없다. 세상에는 사실이 사실 아닌 것처럼 묻혀 버리는 일도 많고, 또 사실 아닌 일이 사실인 것처럼 그렇게 소문도 나고 인정되어버리는 때도 많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능력은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은 조용하다. 사실은 때로는 말이 없다. 사실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은 설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실이니까. 믿거나 말고나, 알거나 모르거나, 남이 인정하거나 않거나 상관없다. 엄연한 사실은 사실대로 침묵을 지키고 그대로 있을 뿐이다. 이것 사실이라고 한다.이 부활사건을 놓고 성경은 그것을 이런 말로 저런 이론으로, 저런 추상적 진리로... 이렇게 어떤 철학적인 방법을 빌어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신학에는 변증학이나 험증학이 있다. 성경자체에는 변증학도 험증학도 없다. 그대로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부활사건은 진리요, 진시이요, 사실이요, 사건이기 때문에 이 엄연한 문제에 대해서 논증이 필요없다. 더더욱 그런 것은 이미 우리가 본문 15장에서 알 수 있다. 지금 예수님의 부활을 만나본 사람들이 태반이나 살아 있다. 그리고 또 바울도 예수를 만나보았고, 베드로도 만나보았고, 야고보도 만나보았고... 만나본 사람들이 즐비하게 여기에 있는데 무슨 철학적 논리가 필요한가 그저 '부활했다' - 그것으로 끝이다. '내가 만났다' - 그러면 끝이다. 그 이상 남이야 믿건 안믿건 그걸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문제가 있다. 부활 그 사실을 설명하려고 하는 의도는 없고 이 염연한 사건, 이 진리에 근거해서, 논리적인 말을 빌리면 연역적으로 다음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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