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사건의 의미
본문
여기에 몇가지 진리를 찾아보게 된다.첫째로,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이론을 초월한다. 사람들은 말을 좋아한다. 논리를 좋아하고, 철학을 좋아하고, 추상적 이론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실'은 침묵한다.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를 않는다. 그 많은 이론이 아무 상관도 없다. 그래도, 그야말로 우뚝 서 있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이론과 모든 설명을 여기서는 다 초월한다. 그리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사실만이 진리요 또 진리는 곧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가 부인한다고 없어지고 누가 믿는다고 없는 일이 생기고- 그런 얘기가 아니다. 그대로 사실대로 존재한다 - 그것을 설명하게 된다.둘째로, 믿음의 근거는 부활에 있다. 오늘 분문에 보면 우리 신앙, 모든 신앙의 근거는 부활에 있다. 가끔 우리는 잘못된 기독교인들을 본다. 사실은 밖에 있는 기독교의 적보다도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기독교의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활을 부인하는 신앙이다... 사실 이 목회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한마디로 말하면 '장례식'이다. 목회는 곧 장례식이다, 죽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장 성공적인 목회는 장례식을 잘하는 것이다...세째로, 오늘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은 뭐냐하면 모든 인생의 생명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했으니까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죽음이 끝이 아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 볼 때는, 또 기독교적 신앙으로 볼 때는, 성서적 신앙 안에서는 죽음은 우리 생의 끝이 아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생의 과정일 뿐이다. 이 세상이라고 하는 이생적 생을 살고, 다음에는 저 나라에서 사는 영생이라고 하는 의미의 생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단계에, 이 생명의 단계에 있어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부터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변화를 부활이라고 한단 말이다.네째로, 오늘의 본문에 보면 '만일에 부활이 없다면'하는 말씀이 나온다. 대단히 재미있는 논리이다. '이 생 뿐이라면 어떻게 되겠는냐 만일에 부활이 없다면'하고 묻는다... 허무주의에 빠진다... 윤리의 근거는 영생에 있다(32절)... 그러나 기독교는 윤리 종교가 아니다. 초대교회는 어디까지나 부활신앙, 그것 뿐이다. 철저한 부활신앙, 이 부활신앙이 확증될 때에 여기서 자동적으로 초대교회적 윤리(교제와 사랑)가 나온 것이다.다섯째, ...또한 17절이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죄 문제, 이 사죄 문제와 부활 사건이 관계가 되어 있다.여섯째, 기독교의 부활은 '영혼 불멸설'(immortality)과는 다른 것이다. 영혼불멸설이라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부활이 없고 그저 정신적인 부활이 있다, 영혼만은 영원히 산다, 그러니까 실제적으로는 돌이킬 길이 없다... 하는 얘기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소설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이 없다. 왜 너무 멀어졌다. 너무 다 잘못됐다. 마음은 부활이 있는데 현실적 부활은 없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렇지 않다. 마음은 되고 정신은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부활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용서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만 그것이 참된 의미에서의 부활 생명이다. 이것... 기독교의 핵심이다.일곱째, 기독교인의 생활, Christian life style이라는 것은 뭐냐 -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라는 것은 부활신앙 앞에서 사는 것이다. 부활 사건 앞에서 사는 것이다. 그런고로 순교한다, 절제한다, 고생한다, 혹은 스스로 자기를 버린다, 봉사한다... 이 전부 다 부활 사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땅에서 욕을 당해도 하나님 앞에 가서 영광을 누릴 것이요, 땅에서 다 빼앗겼어도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이요...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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