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본문
당나라가 망국의 말기 증상을 나타내고 왕조의 지배 질서가형편없이 붕괴되고 있을 때다.중국 천하를 무정부 상태의 혼란으로 몰고간 농민 반란으로 황소의 난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때 황소의 부장으로 주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때까지 자기를 키워준 황소를 배신하고 당나라에 투항하여절도사라는 직임을 지니고 있다가 마침내 황소를 파멸시키고 말았다.당나라에서는 그의 공로를 크게 기려 각가지 특혜를 베푸는 가운데 그에게 주전충이라는 이름까지 하사했다."그대 당나라를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하였도다 앞으로도 나라를 위하여온전한 충성을 다할지어다"라는 뜻이 그 이름에 담겨져 있었다.본래 은인이요 주인이던 사람을 배신하고 당나라의 충신으로 변한 주전충이다. 그때부터 당나라의 병권과 함께 정권을 한 손에 거머쥐고 온갖호사를 다 누리더니 다시한번 배신하여 290년을 이어오던 당나라를 멸하고 스스로 후량국의 태조가 되었다.이렇게 배신과 배신의 연속선상에서 황제가 된 주전충는 온갖 호사와포악을 자행하더니 미처 5년이 다 가기전에 자기 아들 주우규의 칼을 맞고 그의 최후를 장식했다. 전충이라는 이름으로 배신을 뿌리고 배신을 가꾸던 사람이 마침내 엄청난 배신의 열매를 거둔 것이다.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다.아비를 죽이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 녀석은 1년이 채 못되어자기 동생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형을 죽이고 천하를 차지한 주우정은 어떠했던가그는 형의 피가 다 마르기도 전에 후당이라는 나라를 세운 이존욱이라는 사람에게 자기의 목숨과 함께 황제의 면류과,그리고 나라까지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이렇게 하여 주전충이 세운 후량국은 겨우 14년을 지탱하다가 역사의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실로 숨가뿐 배신과 배신의 세월이요 역사다.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상고하다보면 인간의 역사란 실로 한없이 계속되는 배신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2.유대인의 교육유대인들의 육아법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다. 어린 자녀가 차츰 자아의식을 형성해 가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그 아들을홱 던져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선다.꼬마는 평생 처음당하는 엄청난 쇼크에서 쉽게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다.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까닭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어린 아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절망과 배신을 딛고 또 다시 아빠품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빠가 다시한번 호되게 밀쳐내 버린다.어린 아들에게 아빠는 사랑의 대상이요 다정한 친구요 자신의 삶은 몽딴 송두리째 책임지고 있는 존재로서 이 아이에게만은 하나님방불한 실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까닭없는 배신의 아픔은 어린이가 재대로 소화하기에 힘겨운 과제임이 분명하다.이럴 때 아빠는 자기 아들에게[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아빠가지도 너를 배신할 수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믿을 수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가르친다.성경은[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그 호흡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3-5)한눈에 매정해 보이는 유대인의 아비들은 이 진리를 아이들에게 바로가르치기 위하여 애간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참고 견디며 이런 방법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유대인들이 자기 나라없이 온 세상을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면서도 2천수백년 동안 자기들의 민족성을 굳게 지키고 오늘의 세계를 이끌어 가는힘의 상당 부분은 이와같은 육아법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떠한가[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만 굳게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단다 너는 아무 걱정 말고 편하게 살아라]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는지.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 주는 것,시집가는 딸에게 엄청난 혼수를 장만해 주는 것 등이 바로 그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 뿐만이겠는가 엄마는 아이들의 학교 성적까지 책임질 작정으로 맹렬한 치맛바람을 날리고 다니지 않는가이런 식의 육아법은 결국 자녀들로 하여금 남을 의지하는 졸장부로 만들고 또 지극히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은 하늘같이 믿었던 인간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면그 엄청난 충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결과 적으로 파탄의 인생을 살게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인간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오직 하나님외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자가 없음을 가르쳐야 한다.3.누가 배신자일까3.1절이면 기억해 줄만한 인물이 하나 있다.바로 신 철이라는 한국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종로 경찰서 고등계 형사로 있던 그는 특히 수상한 조선인을 색출하는 데는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그 당시 그의 나이는 사십이었다. 종로 경찰서에 10년간 근무해온 고참이기도 했다.신철, 그가 일본 경찰의 고위 간부들에게 인정 받기까지는 수많은 동족들의 피와 눈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내놓은 민족반역자였고 천황의 사냥개였다.기미년 2월 26일께의 늦은 밤이었다.지금의 안국동 자리에 있던 인쇄소 보성사에서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안에서 가리고 무엇인가를 찍어 내고 있었다.그때 보성사 부근을 지나고 있던 신철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인쇄소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인쇄 중이던 독립 선언문을집어 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문을 읽어 보고 놀란 표정의 인쇄소 사람들을 한번 둘러 본 후 말없이 그곳에서 사라졌다.이 소식은 즉각 거사를 준비중이던 핵심인사들에게 전해졌다.33인의 민족 대표 중의 한 사람이던 최린이 신철의 소재를 수소문해서은밀하게 신철과 마주 앉았다.{당신은 이제까지 우리 동족들에게 참으로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소, 이제마지막으로 한번 우리 민족을 위해서 큰 일을 해 주시오. 당신만 입을 다물어 준다면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독립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면 역사는 신철이라는 이름을 명예롭게 기억할 것이오}최린은 당시 돈으로 거금인 5천원을 신철 앞에 꺼내 놓았다.{ 이 돈이면 만주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오. 우리 민족전체의 미래가 당신 ㅅ한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최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신철은 한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라졌다.3월 3일로 독립선언은 서둘러 3월 1일에 앞당겨 행하여졌다.3.1만세 운동이 일제의 잔인한 탄압에 눌려서 독립의 희망이 점차 사그라들던 두 달 후,신철은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만다.고등계 형사 신철과 관련해서 분명한 것 하나는, 그가 독립 선언 계획을 사전에 탐지했지만 이를 일본 경찰에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3.1운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최근 3.1운동 당시 33인 민족 대표로 불리는 이들 중 일부가 나중에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는 주장들이 대두 되고 있다.청주시 3.1공원 안에 있는 청주 출신 33인 대표 한 사람의 동상이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강제 철거 될 위기에 있다고 한다.해방 이후 이제 까지 우리 정부의 각료를 지낸 분들의 상당수가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몇일 전에 발표됐다.그런 저런 믿기 싫은 이야기가 발표될 때마다 신철이라는 사나이가 생각이 난다.그는 결코 훌륭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롭게 살다가 후에 변절한사람들과, 개처럼 살다가 후에의롭게 죽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1995.3.1, 동아일보"어느 고등계 형사의자살" -4. 일관된 대답몇 년전 홍콩에서 한 친구가 중공에서 감옥 생활을 하다가 최근에 풀려난 어떤 분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나를 좁은 언덕 아래에 있는 연립주택 2층으로 안내했습니다.친구와 함께 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자 약 60세 가량 되어 보이는중국 노인이 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그 분의 얼굴은 반가운미소로 환했으나 허리는 반쯤 굽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약간 초라한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거의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중국여인이 차를 들고 들어왔습니다.그녀가 차를 놓고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자기 남편과 얼마나 정겹고 사랑스럽게 마주 보고 있는지, 나는 넋놓고 그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친구에게 묻자.“아무 일도 아니야. 지금 이 분은 서로 대단히 만족해 한다는 것을 자네에게 보여 주고 싶어 그러시는 거야. 이 분들은 신혼부부거든.”나는 1949년 이 노인이 난킹 신학교의 학생일 때 이분들이 약혼을 했는데, 결혼 하루 전날 중국 공산당들이 신학교를 점령하고 학생들을 강제노동 수용소로 끌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뒤 30년 동안그녀는 신부가 되어 보지 못하고 일 년에 단 한 차례 수용소 사무실에서몇 분 동안만 그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만일 기독교인이 되기를 포기한다면 네 신부와 함께 고향으로 보내줄 수도 있지.”담당 공산당원의 이러한 말에 그는 해가 거듭 바뀌어도“아니오”라는단 한 마디 말로 일관된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어떻게 가족도, 결혼도, 심지어 자기의 건강도 마다하고 그토록 오랜세월을 견딜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그 분께 질문을 하자 그분은 내 질문에 오히려 놀라는 기색으로 대답했습니다.“예수께서 저를 위해 치르신 그 모든 것을 받고서 어떻게 그 분을 배반할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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