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자
본문
3.1절이면 기억해 줄만한 인물이 하나 있다.바로 신 철이라는 한국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종로 경찰서 고등계 형사로 있던 그는 특히 수상한 조선인을 색출하는 데는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그 당시 그의 나이는 사십이었다. 종로 경찰서에 10년간 근무해 온 고참이기도 했다.신철, 그가 일본 경찰의 고위 간부들에게 인정 받기까지는 수많은 동족들의 피와 눈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내놓은 민족반역자였고 천황의 사냥개였다.기미년 2월 26일께의 늦은 밤이었다.지금의 안국동 자리에 있던 인쇄소 보성사에서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안에서 가리고 무엇인가를 찍어 내고 있었다.그때 보성사 부근을 지나고 있던 신철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인쇄소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인쇄 중이던 독립 선언문을 집어 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문을 읽어 보고 놀란 표정의인쇄소 사람들을 한번 둘러 본 후 말없이 그곳에서 사라졌다.이 소식은 즉각 거사를 준비중이던 핵심인사들에게 전해졌다.33인의 민족 대표 중의 한 사람이던 최린이 신철의 소재를 수소문해서은밀하게 신철과 마주 앉았다.{당신은 이제까지 우리 동족들에게 참으로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소, 이제마지막으로 한번 우리 민족을 위해서 큰 일을 해 주시오. 당신만 입을 다물어 준다면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독립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면 역사는 신철이라는 이름을 명예롭게 기억할 것이오}최린은 당시 돈으로 거금인 5천원을 신철 앞에 꺼내 놓았다.{ 이 돈이면 만주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오. 우리 민족전체의 미래가 당신 ㅅ한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최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신철은 한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라졌다.3월 3일로 독립선언은 서둘러 3월 1일에 앞당겨 행하여졌다.3.1만세 운동이 일제의 잔인한 탄압에 눌려서 독립의 희망이 점차 사그라들던 두 달 후,신철은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만다.고등계 형사 신철과 관련해서 분명한 것 하나는, 그가 독립 선언 계획을 사전에 탐지했지만 이를 일본 경찰에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3.1운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최근 3.1운동 당시 33인 민족 대표로 불리는 이들 중 일부가 나중에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는 주장들이 대두 되고 있다.청주시 3.1공원 안에 있는 청주 출신 33인 대표 한 사람의 동상이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강제 철거 될 위기에 있다고 한다.해방 이후 이제 까지 우리 정부의 각료를 지낸 분들의 상당수가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몇일 전에 발표됐다.그런 저런 믿기 싫은 이야기가 발표될 때마다 신철이라는 사나이가 생각이 난다.그는 결코 훌륭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롭게 살다가 후에 변절한사람들과, 개처럼 살다가 후에의롭게 죽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1995.3.1, 동아일보"어느 고등계 형사의자살" -2. 조국을 멸시한 어리석은 자 서 재필13세때(1879년)장원을 한 천재다.16세에 일본 유년 사관학교에입학 다음해 졸업.갑신정변(甲申政變,1884)의 주역으로 18세때 병조참판이라는어머어머한 감투까지 쓴 인재다.바로 서 재필(徐載弼,1866-1951)이라는 사람이다.청나라의 간썹으로 정변이 실패하자 그는 일본으로 일단 망명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시민이 되었고 이어서 워싱톤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필두로 세균학 박사가 된 다음 의사로 입신했다. 그는 미국명 필립 제이슨으로 살았다. 천재다운 면모를 국내외에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이다.이 사람이 갑오경장(甲午更張,1894)이후 고국()에 돌아오자 국가는 그에게 중추원 고문이라는 중직을 주었고 이어서 그는 정부의 지원을 얻어서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간했다.바로 그 시점의 서재필의 기록을 살펴보자매천야록(梅泉野錄)이라는 책에의하면"서재필은 갑오년에 귀국하여 성상(고종)을 뵙고 외신(外臣)이라고 칭했고 안경쓰고 궐련(담 배)물고 뒷짐을 지고서 (당시 민족의 감정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임)물러남으로 온 조정이 통분을 금치 못하였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뿐만 아니라 그에게 독립협회 회원이 되어달라고 하니까 그는 말하기를" 나는 조선 쌀람이 아닙니다.미국 쌀람입니다.회원될 수 없습니다.고문노릇 하지요미국 쌀람 말 들으시오"라고 했고이름도 철두철미하게 필립제선(畢立堤仙)을 고수했다고 한다.어찌 뿌리를 상실한 한 송이 화려한 장미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이렇게 자기의 뿌리를 상실하고 살았던 그는 역사속에서 한갓 화려한물거품같은 존재로써 잠깐 보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것이다.자기 분수를 모르고 그 땅에서 이탈하는 순간 그는 뿌리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자기가 태어난 조국을 멸시함은 바로 자신을 멸시함과 같은 것이다.그는 수십년만에 유골이 되어 미국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국가 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이 되었다. 그가 유공자라면 이 땅에 사는 그누구도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3. 인생의 실패자 이 완용세상 살면서 이기고 또 이긴 사람이 있다. 조선왕조 말기 우리네 대부분이 깊은 역사의 잠을 자고 있을 때 유달리 일찍 세상을 향하여 눈을 뜬사람이 있었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벌써 영어를 배웠던 사람으로써 미국이 우리와 가까히 지낼 때 친미파의 주동인물이 되었고, 세상이변하여 러시아의 발언권이 강해지자 어느새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친러파의 중심인물이 되더니,노일 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자 이번엔 유창한 일어를 앞세워 친일파의 거두가 되고 이어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사람이다.그후 우리나라가 일본의 손으로 넘어갈 때였다.그는 서슴없이 일본인이되어 그 나라 귀족으로 둔갑했고 마침내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았다. 어찌 이기고 또 이기기만 계속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바로 이 완용(1858-1926)이라는 사람의 얘기다그런데 신가한 것은 우리들 어느 누구도 그를 생의 승리자라고 말하지않는다는 것이다. 삶의 방향 설정이 잘못된 것이요 생을 통틀어 결산할때 결단코 승리의 팡파르를 울릴 수 없는 일생을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