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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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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수 은반지 파동세모를 앞둔 지금, 항간에서는 은반지값이 평소보다 5 배나 급등을 하여 은이 동이 날 지경이라 한다. 이달 들어 매출고도 급증, 2백억 원대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었다.이변경기(異變景氣)를 넘어선 파동이 아닐 수 없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용(辰)해가 가기 전에 용이 새겨진 은반지를 딸이 어머니에게 선물하면 어머니가 장수하고 또 자식도 복을 받는다는 유언(流言)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효도경기 같지만, 뒤집어 보면 미신경기인 것이다. 미신에도 나름대로의 역사와 전통이 있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말띠에 낳은 딸은 팔자가 사납다든지…구성(九星), 육요(六曜), 십이직(十二直) 등 어느 띠 해의 어떤 길흉이 예언되는 전통적 미신은 적지 않지만, 용(辰)해와 반지와 장수(長壽)를 연결시킨 미신은 없었다. 우리 민속에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여 딸이나 며느리가 동지날에 손수 버선을 지어 바치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는 풍속은 있었다.18 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동지헌말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동지에는 사람 그림자가 하지 때보다 한 길 세 치나 길어지고, 또 동지날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기에 이날을 기해 버선을 지어드려 길어지는 햇살을 밝게 함으로써 수명도 길어지길 기원하게 됐다고 했다.하지만 이 해석은 도덕적으로 미화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버선을 신는 행위는 성행위를 상징했으며, 이것이 발전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로 정착했던 것이다. 곧 모성 -> 생식 <-> 버선 <-> 결실 -> 풍년의 도식에서 버선 바치는 민속이 탄생한 것이다. 동지헌말을 궁중에서는 풍정(豊呈)이라 한 것만 보아도 미루어 알 수 있다.돌, 결혼, 회갑에 반지를 만들어 끼워주는 습속은 있지만, 이 같은 통과의례와 관계없이 용해라 하여 반지를 끼워드리는 습속은 없었다.이 장수 은반지는 `행운의 편지'류의 대중현상으로 보여진다. 은반지를 바쳐서 장수를 기원한다기 보다 바치지 않음으로써 장수를 못하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형성된 미신인 것이다.옛날에도 세태가 불안해지면 이 같은 불안 공감현상이 자주 일어났었다. 미구에 난리가 나는데 그 병화(兵火)에서 살아나려면 식구수 만큼 요강(便器)을 사두어야 한다 하여 요강경기가 휩쓸었던 일이며, 또 대역질(大疫疾)이 번지는데 붉은 바지를 해입으면 그 병화(病禍)에서 살아날 수 있다 하여 적상(赤裳) 경기가 휩쓸었던 것이 겨우 20-30 년 전의 일이었다. 그 배후에 상혼이 개재되지 않았다는 보증은 물론 없다. 만약 은을 비싸게 팔아먹고 싶은 상혼이 개입됐다면, 효도라는 아름다운 명분을 악용한 심보가 그 더욱 교활하기만 하다. 이성으로 극복할 수 밖에 없는 전근대적인 은반지 파동이 아닐 수 없다.2.방상시(方相氏)언젠가 율곡(栗谷)학통을 이어받은 마지막 선비의, 달을 넘긴 유월장(踰月葬)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유월장이 될 것이라 하여 많은 민속학자들과 외국인들이 지켜보았다 한다. 그렇다면 그 장례행렬의 맨 앞장에서 귀신탈을 쓰고 지전(紙錢)을 뿌리던 방상시(方相氏)도 마지막 방상시가 될지도 모른다. 노인들은 오랜만에 다시 보지만, 중장년(中壯年)들만해도 처음 보는 방상시는 옛날 장례행렬에 반드시 앞장서게 마련이었다.문헌에 적힌 방상시의 몰골부터 보아보자. 귀면(鬼面)의 탈을 쓰는데, 눈이 양쪽에 두 개씩 도합 네 개 있는 사안(四眼) 방상은 5 품 이상의 벼슬아치, 이안(二眼) 방상은 5 품 이하의 벼슬아치의 초상에 쓰도록 신분에 차별을 두고 있다. 검은 곰가죽을 둘러쓰고 붉은 바지를 입었으며 오른손에 장도(長刀)나 창을, 왼손에는 방패를 들어 이를 휘두르며 전진한다.아무나 방상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로 형장에서 참수를 하는 망나니가 방상시로 선택받았던 것이다.왜 방상시를 장례행렬의 맨 앞에 세우는 걸까. 불행(危)과 병(病)을 몰고와 해코지를 하는 악귀(惡鬼) 아귀(俄鬼) 원귀(怨鬼)들이 무서워 접근 못 하는 어떤 가공할 존재를 만들어 둔다는 것은 미개사회에 있어서 합리적이었다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처용랑(處容郞)도 그 가공할 존재 가운데 하나다.신라 헌강왕 때 동해룡(東海龍)의 아들인 처용은 그의 아름다운 아내를 역귀(疫鬼)에게 간통당한다. 처용이 알고도 태연자약하자 역귀는 그 큰 그릇에 감동하여 사죄를 하고, 그 후부터 처용이 나타난 곳에 귀신들이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 후부터 처용의 부적이나 처용의 인형(제웅)이 귀신 쫓는 방패가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방상시는 바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귀신 쫓는 가공할 존재다.고대국가인 주(周)나라 때 귀신 쫓는 관직이 있었는데 그 벼슬아치를 방상시라 했고,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장례 때 이 방상시를 앞세워 죽은 사람 가는 앞길에 악귀를 쫓게 했던 것이 그 기원이다.그러나 그렇게 했다고해서 귀신이 쫓겨갈리 만무하다. 귀신에게는 하나님외에는 두려운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삶을 저주하고 온갖 질병과 가난과 슬픔을 안겨주는 악한 귀신을 내어 쫓기 위해서는 예수 이름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3.생매장(순장)세상은 진보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역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인도의 힌두교도 가운데 과격파측에 속하는 일단의 여신도들이 남편이 죽었을 때 따라 죽는 순사제도(殉死制度)를 합법화하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도 그런 진보 속의 역행이랄 수가 있겠다.힌두교의 종법(宗法)인 이 '삿치'라는 순사제도가 비인간적이라 하여 법으로 금한 것은 영국 통치시대였으나, 순사를 하는 열혈신도가 아주 단절될 리는 없었다.워드가 쓴 '힌두'란 책에 보면 삿치의 진행은 다음과 같다.남편의 유해가 운반되면 미망인(未亡人)은 망고의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어 들고 성스러운 갠지즈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 이 성수욕(聖水浴)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미용사로 하여금 두 발바닥에 화장을 시킨다.미망인은 "머리카락수 만큼(힌두성서에 의하면 4천 5백만 개) 오랜 세월 동안 남편과 더불어 천국에 머물게 해주옵시며,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의 조상들도 이 나의 아름다운 행위로 인하여 천국에 오를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하며 바라문 의식에 따라 기도를 올린다. 이 기도가 끝나면 몸에 화려한 장식이 베풀어지고 기나긴 여로에 대비한 음식이 주어진다.그러는 동안 남편의 유해는 쌓아올린 화장터의 나뭇가리 위에 놓여지고, 미망인은 이 나뭇가리를 일곱 번 돌고 난 뒤 나뭇가리 위에 들어올려져 남편의 유해에 꽁꽁 묶인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나 가장 가까운 근친에 의해 점화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통곡 속에 산 채로 타오른다. 처절하다. 삿치를 거부하는 미망인은 사회적으로 소외받게 마련이라니 사회적 살인이랄 수 있다.우리 나라에도 순사습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여(夫餘)시대에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을 순장(殉葬)한다는 기록이 있고, 고구려 동천왕(東川王)이 죽었을 때만해도 순사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다 묻지 못해 들판에 시체가 즐비했다 한다. 김해에 있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무덤이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도굴당했는데, 20대로 보이는 두 젊은 여인이 순장되어 있었다 했다.하멜과 더불어 한국에 표류했던 화란선원(和蘭船員) 에이복켄의 기록에 보면 "조선에서 국왕이나 귀인이 죽으면 아름다운 여자노예를 산 채로 더불어 묻는데 무덤의 문이 닫히기 전에 약간의 식량이 주어진다"고 했다. 한데 이 순장이 비인도적이라 하여 금령(禁令)이 자주 내려져 산 사람 대신 목인형(木人形)으로 대체하였던 것이다.다만 남편 따라 죽지 못한 여자, 곧 '미망인'이란 말에 이 비인도적 습속이 살아 있을 뿐이다. 진작 없어졌어야 할 이 말이 미화(美化)까지 되어 쓰이고 있으니 관념적 '삿치'가 우리 주변에 그늘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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