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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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진보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역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이를테면 인도의 힌두교도 가운데 과격파측에 속하는 일단의 여신도들이 남편이 죽었을 때 따라 죽는 순사제도(殉死制度)를 합법화하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도 그런 진보 속의 역행이랄 수가 있겠다.힌두교의 종법(宗法)인 이 '삿치'라는 순사제도가 비인간적이라 하여 법으로 금한 것은 영국 통치시대였으나, 순사를 하는 열혈신도가 아주 단절될 리는 없었다.워드가 쓴 '힌두'란 책에 보면 삿치의 진행은 다음과 같다.남편의 유해가 운반되면 미망인은 망고의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어 들고 성스러운 갠지즈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 이 성수욕(聖水浴)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미용사로 하여금 두 발바닥에 화장을 시킨다.미망인은 "머리카락수 만큼(힌두성서에 의하면 4천 5백만 개) 오랜 세월 동안 남편과 더불어 천국에 머물게 해주옵시며,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의 조상들도 이 나의 아름다운 행위로 인하여 천국에 오를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하며 바라문 의식에 따라 기도를 올린다. 이 기도가 끝나면 몸에 화려한 장식이 베풀어지고 기나긴 여로에 대비한 음식이 주어진다.그러는 동안 남편의 유해는 쌓아올린 화장터의 나뭇가리 위에 놓여지고, 미망인은 이 나뭇가리를 일곱 번 돌고 난 뒤 나뭇가리 위에 들어올려져 남편의 유해에 꽁꽁 묶인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나 가장 가까운 근친에 의해 점화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통곡 속에 산 채로 타오른다. 처절하다. 삿치를 거부하는 미망인은 사회적으로 소외받게 마련이라니 사회적 살인이랄 수 있다.우리 나라에도 순사습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부여시대에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을 순장(殉葬)한다는 기록이 있고, 고구려 동천왕(東川王)이 죽었을 때만해도 순사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다 묻지 못해 들판에 시체가 즐비했다 한다. 김해에 있는 김수로왕의 무덤이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도굴당했는데, 20대로 보이는 두 젊은 여인이 순장되어 있었다 했다.하멜과 더불어 한국에 표류했던 화란선원 에이복켄의 기록에 보면 "조선에서 국왕이나 귀인이죽으면 아름다운 여자노예를 산 채로 더불어 묻는데 무덤의 문이 닫히기 전에 약간의 식량이 주어진다"고 했다. 한데 이 순장이 비인도적이라 하여 금령(禁令)이 자주 내려져 산 사람 대신 목인형으로 대체 하였던 것이다.다만 남편 따라 죽지 못한 여자, 곧 '미망인'이란 말에 이 비인도적 습속이 살아 있을 뿐이다. 진작 없어졌어야 할 이 말이 미화(美化)까지 되어 쓰이고 있으니 관념적 '삿치'가 우리 주변에 그늘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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