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유치한가
본문
"오늘 본문에서는 육신에 속한 자에 대하여 말씀한다. 자세히 몇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우선 육신에 속한 자는 어린아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다고 한다. 유치하다, 그 말씀이다. 무엇에서 유치하냐 하면1)본문에서 보니 이해력이 유치하다. 비유로 말씀하기를 어린아이들은 '젖'과 같이 부드러운 것으로 먹여야지 '굳은 음식(밥)'은 아직 씹지를 못하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2)두번째는 어린아이라는 것은 통찰력에 문제가 있다. 이해를 하는데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그것만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통찰력이 있어서, insight가 있어서 저 깊은 세계를 이해하는지, 그런 이야기다. 우리가 피아노나 오르간 소리를 들을 때에 '아, 파아노 좋다'하는 사람이 있고 '거, 연주 잘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조금 더 이해하는 사람은 작곡가를 생각한다. 이것은 누구의 곡인데 하고.3)세번째는 구체화의 능력이다. 귀한 말씀을 들었다면 듣는 순간 이것을 내가 이해하면서 곧 나는 어떻게 해야겠다, 내일부터는 이렇게 해야겠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하겠다 하고 자기 생활 속에 곧 적용을 해야한다. 가만히 보면 성경을 줄줄 외우구 공부하고 듣고 적고 하는데 실천하는 것이 없다. 그리고 종종 질문하는 것이 "어떡하면 좋을까요"한다. 그 많은 성경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할 것을 모르고 있다. 생활에 옮기고 응용하고 열매를 생산하는 구체화의 능력이 문제이다. 그것이 유치하다는 말씀이다.그런데 본문은 다른 측면에서 말씀한다. 왜 고린도 교인들이 어린아이냐. 그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뿌리는 나 자신이다. 그리고 자기 자랑이다. 옛사람으로부터 벗어나 성숙했다면 이제와서 유치하게 내가 잘났느냐 네가 잘났느냐 하는 시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유치한 소리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울도 아니고 아볼로도 아니다. 다 사역자들이다. 문제는 이 사역자들을 부리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볼로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고 바울을 통해서도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좀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바울과 아볼로를 선택하셨기에 그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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