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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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밴 `검소'...버리는 물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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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 지내면서 새 것과 사치를 좋아하는 영국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기본적인 기능을 할 수있는 한 끝까지 고쳐서 쓰지 좀처럼 새 물건을 사지않는다. 세들어 살던 집에 진공 청소기가 있었다. 내가 쓰기직전까지 집주인이 직접 사용하던 것이다. 소리는 천둥같았으나 흡인력은 형편없었다.항상 다시 비질을 해야 했다. 바꿔달라고 요구했더니 {10년 갓 넘었을 뿐인데 벌써 바꾸다니요}라고 했다. 자기가 쓰는 것은 훨씬 더 오래됐다고 했다. 주인은 집이 두채나 되는 부자였고 다른 불편에 대해서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들어주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이웃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 집 냉장고를 보고는 처가 깜짝 놀랐다. {아직도 저런 냉장고를 쓰는 사람이 있느냐}고 했다. 성에 제거 장치가 없는 [바보냉장고]로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 이후 거의 없어진 고물이라고 했다. 그 집 역시 영국 중산층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코드를 뽑고 뜨거운 물을 부어 해동해 주면 되는데 뭘 그리 놀라느냐고 반문하더라면서 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캠브리지 출신으로 신문 기자인 영국 친구가 자기 고향집으로 초대를 했다. 중부 잉글랜드 지방에 있는 그의 집안은 일대의 땅 전체를 봉토로 가진 대영주 가문이었다. 1천년전에 지은, 가족 교회까지 거느린 집은 후계자인 그 자신이 {큰 방은 70여개인데 작은 방까지 합치면 몇 개인지 모르겠다}고 할 규모였다. 중늙은이가 팔꿈치를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고 우리를 맞았다. {아무리 하인이라도 요새 세상에 좀 그렇구나}하는데, 그가 바로 그집 주인이었다. {눈과 정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천박해졌는가}라는 부끄러움에 가슴을 쳤다. 저녁 자리에 옷을 바꿔 입고 나온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 진짜 영국신사였다.영국 체류중 서울에서 온 한 친구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얘들 GNP가 얼마야. 차들이 형편없이 작구만}이라고 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 정부기관에서 근무하는 엘리트로 비교적 건전한 사고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인물의 입에서 나온 첫 소감이었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엄청난 갑부다.텔레비전, 청소기, 냉장고 등 대형 가전제품은 신형만 나왔다하면 불티나게 팔린다. 쓰레기통은 금세 산더미가 되고 이래서 우리나라 환경운동가들의 할일은 더욱 많아진다. 이 부자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영국은 불쌍하고 가난한 나라다.이처럼 [마음이 부유해진 서울사람들]과 다시 만난 경험을 최근 외국서 돌아온 30대 주부가 이렇게 들려주었다. 8살, 6살바기 두 아이를 데리고, 김포에 내렸다. 30분 가까이 기다리다 심사대에 이르렀는데 입국서류 양식이 바뀌어 다시 써야 했다. 망연해있으니 직원이 서류를 새로 써서 줄서지 말고 곧바로 오라고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그 무거운 짐을 끌고 뒤로 갔다가 다시오는데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들이 다투어 손가락질을 해댔다. {아줌마, 왜 새치기해.} 아이만 있으면 어디서나 최고의 도움을 받으며 [프리패스]하던 영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꼭지가 뜨겁게] 깨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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