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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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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明成皇后 1851<철종 2> - 1895<고종 32>)는 조선 고종의 황후로 성은 민(閔), 본관은 여흥(驪興), 치록(致祿)의 딸이다. 여주에서 출생했으며 9세 때 부모를 잃고 여주의 본가에서 가난하게 자라다 66년(고종3) 흥선 대원군의 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왕비에 책봉되었다.그러나 당시 고종이 궁인 이씨만을 총애하여 아내로서의 애정을 받아 보지 못한 데다 68년 궁인 이씨에게서 완화궁(完和宮)이 출생하자 이를 기뻐하는 대원군에 대한 질투가 폭발, 집권자인 대원군의 반대 세력을 규합하고 민씨 척족들을 인사 재정 군사의 요직에 등용케 하고 조영하(趙寧夏) 김병기(金炳冀) 등을 포섭하는 한편 최익현(崔益鉉)과도 제휴하여 확고한 세력 기반을 이룩했다. 점차 고종이 애정도 독점하여 71년 원자(元子)를 낳았으나 5일 만에 죽자 이를 대원군이 준 산삼을 먹고 죽은 것이라고 단정하여 더욱 대원군을 증오했다.73년 일본에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어 국제 정세가 긴박해지고 경복궁 중건으로 민생고가 가중되는 등 대원군의 실정(失政)이 계속되자 그를 탄핵할 주동 인물로 최익현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 대원군의 모든 시정을 한데 몰아 정부 전체를 탄핵케 했다. 이어 고종에서 친정(親政)을 선포케 함으로서 민씨의 외척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 때부터 대원군 계열의 인사들을 모두 숙청하고쇄국 정책을 폐하여 일본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82년 임오군란으로 신변이 위험해지자 궁궐을 탈출하여 윤태준의 집을 거처 충주 장호원으로 피신했으며 이어 대원군에 의해 죽은 것으로 선포되었으나 장호원에서 윤태준을 고종에게 밀파하여 자신의 생존을 알리고 청나라의 지원을 요청케 했다. 청군의 출동으로 군란이 진압된 뒤 대원군을 청나라에 납치해 가도록 하여 민씨 정권을 다시 수립했으나 국고를 탕진하는 등 갖은 실정을 저질렀고 또 한 민씨 일족의 부패상도 극도에 달하고 기강은 무너졌다.84년 갑신정변으로 민씨 일족을 비롯한 사대당이 실각하자 심상훈 등에게 청나라의 지원을 요청케 하여 개화당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일본 세력의 침투로 점차 김홍집등의 친일 정권이 득세, 이어 94년 대원군이 재등장하면서 갑오경장이 시작되어 친일파가 정권을 잡게 되자 러시아에 접근하여 일본 세력의 추방을 기도했다.이듬해 일본 공사 미우라가 부임했으나 계속 이들을 견제하자 미우라가 거느린 일본인 병사들이 궁궐을 침범 그 가운데 아다치가 거느린 선봉 부대의 흉한들에게 건청궁에서 난자당해 죽은 후밖으로 운반되어 소각되었다.죽은 뒤 폐위되어 서인이 되었다가 10월 복호되고 97년(광무1)에 명성이라 시호가 내려졌으며 이 해 11월 국장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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