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메뚜기와 하루살이

본문

이솝 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읍니다.어느 여름날이었읍니다.하루살이와 메뚜기와 함께 하루를 즐겁게 놀았읍니다. 저녁 때가 되자 메뚜기는 아쉬움을 안고 하루살이에게 작별을 하며," 얘, 하루살이야 우리 오늘은 그만 놀구 내일 놀자, 응"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내일 내일이 뭔데 ."하고 하루살이는 무슨소리냐는 듯 메뚜기에게 대답했읍니다." 내일이란, 캄캄한 밤이 지나면 다시 오늘 처럼 날이 밝아 오는 데 그게 바로 내일이야."" 치! 오늘처럼 날이 밝아, 거짓말."" 어어, 거짓말이 아니야."" 세상에서 넘어가버리고 있는 저 해를 보라구. 저게 어떻게 해서 다시 떠올라 밝아진다는 거냐."" 나참, 얘, 하루살이야 내일이란 건 정말 있어."" 뭘 있어, 다 죽지! 그저 니가 날 놀려 보겠다는 거 겠지."" 어휴, 답답하구나 정말."메뚜기는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적인 내일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하루살이는 도무지 미덥지못한 코웃음만 흘릴 뿐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읍니다.그런데 이번에는 메뚜기가 개구리와 함께 놀게 되었읍니다.그 풍요로운 자연의 낭만이 깃든 여름이 가고, 소슬바람 낙엽지는 가을도 지나자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얘, 메뚝아! 우리 이젠 그만 놀아야 할까 보다.날씨가 추워 오니까 우리 내년에나 다시 만나서 놀자." 라고 말했읍니다." 뭐라구 "" 내 년에 다시 만나 놀자구."" 내 년이 뭔데""냇물이 다시 졸졸 소리내어 흐르고, 새들은 노래하구, 온 산과 들에 다시 꽃은 피구…"" 치! 거짓말."" 뭐, 거짓말이라구."" 그래 시들은 꽃이 어떻게 다시 피어나니"" 어어, 는가 모양인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나 개구리를 친구로 생각한 것을 후岾! 사기꾼! 치, 뭐 내, 새들이 다시 지저기고 꿎들이 다시 피다구, 웃기지 마라, 제발."그도 그럴 것이, 하루만 살다가는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란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고, 겨우 한 해를 살다가는 '메뚜기'에게는 '내년'이란 이해할 수 없는, 넘을 수 없는 어떤 세계였을 것입니다.이와 같이 '神'의 세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본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런 '神'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허나 본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神'에 존재를 믿지 않은다면 '내일' 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하루살이나, '내년'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메뚜기'나 우리가 과연 무엇이 다를 것입니까.어쩌면 '우화'와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ㅣ고 할지 모른다.그러나 우리가 '神'의 존재를 믿지않거나 의심한다면 '메뚜기'나 '하루살이' 의 차원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루살이'가 '밤의 존 재'를 부인한다고 해서 우주의 '밤'이 없는 것이 아닐테고, '메뚜기' 가 '겨울'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겨울'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닙 니다.그처럼 우리는 같은 인간이라 눈이라도 '神'을 볼 수 있는 눈과 '신'을 볼수 없는 눈이 있는 것입니다.일례로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미국의 우주과학자는 우주선을 타고, 그 광활한 우주를 꿈 처럼 여행을 하며, " 하나님에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다." 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는데, 소련의 우주 과학자들은 같은 우주를 여행하며," 하늘에 '神'은 없었다"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유물론자들에 눈은 '하루살이'나 '메뚜기'의 눈이었던 것이었을 것입니다. '神'을 볼 수 없었으니까.'神'의 존재 여부를 떠나 우리 인간들에뚫 '神'이 꼭 존재해야 할 것이다. '신'이 없다하드라도 억지로라도 '신'의 존재를 만들어 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가엾고 어리석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을 위해선 반듯이 '신'의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예를들어, 우리가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누명을 쓴다거나 그밖에 여러 가지 모순과 절망을 당한다거나 할 때, 구원의 결백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신앙 밖에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외로움을, 고통을 입증하고 온전히 알아 주시는 단 한 분, 그것은 하나님일 것이다.우리가 만일 그 분의 존재를 부인했다면, 그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느껴질 것이고,'신'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 무한한 다는 것은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고 말이다.'神'은 행복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 불행한 사람을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神'은 '신'에 자리 에서 '人間'의 자리로 자기를 낮추어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하는 것이다.그래서 살아가는 순간순간 크고 작은 일상사에서 속을뒤집어 보 일 수 없는 숱한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크고 소중한 보배인지도 모릅니다.개나리 나무는 해마다 개나리 꽃만 피우고, 장미는 장미만 꽃피우는 것을 생가해 봅시다. 그것이 일반 과학자에게는 질서인 것입 니다. 그러나 신학자일 경우는 그것은 바로 '神'인 것입니다.암튼, 아무려면 어떤가. 그럼 섭리를 믿 듯 우리는 '神'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할레루야!!!'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38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