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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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인간의 거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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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예수의 초상은 매력있고 선한 모습이나 예수의 모습이 이사야에서 처럼"아무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고 없는, 마치 벌레 같은 모습을 "상기해야한다. (54)우리가 예수가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죄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거부감을 느낀 후에야 비로서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십자가가 우리를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설교도 우리에게 거부감을일으킬수가 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거부감을 갖게 하셨고지금도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보고 마음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진실로예수 자신이 "누구든지 나를인하여 실족치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말씀하셨다(마11:6).(P. 55) -> 그러나 제자들 까지도 실족하였다. (요6:60ff)시므온이 예언하였듯이 예수님은 그 시대의 "비방의 표적"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지금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헌신의 메세지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일이 희귀하다. 진실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을까(심지어 맘에 드는 설교를할 수 있을까: 차목사 註)하고 골몰한다.(P. 56)그러나 심리학적 피해가 영적인 유익이 된다.(56)쇠랜 키엘케골은 말하기를 신약적인 기독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최소한 두가지 기본개념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믿음이고 또 다른하나는 *거부감이다. 그는 확실히 이 거부감에 대해서 지적인 측면에서 이해를하였다. 인간의 이성적인 논리로는 영원한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믿으려고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고한다. 이것 만큼 인간의이성을 어리석게 만든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키엘 케골이 분류한 신약적인 거부감을 우리가 어떻게받아들이든지 간에 그의 주장 가운데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고 하겠다.그것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할 때에 신약의 메시지는 왜곡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P.58)-> 예를 들면 세례 요한의 실수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마11:2-6)심판을 기대했던 요한에게 예수는사랑과 긍휼이라는 은혜의 방법을사용하신다.-> 요나도 거부감을 가졌다.(요나3:10-4:2) 즉 요나의 마음을 거스리게 하고반발을 일으켜 그가 다시스로 도망하게 했던 요소는 악한 것을 돌이키시는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이다.-> 품꾼의 비유에서도 첫 시간의 고용된 일꾼의 마음은 거슬렸다. 그러나 그주인의 대답은 은혜의 우위성에 대해 더욱 강조하는 것이었다.-> 고전1장에서 바울은 십자가의도가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요유대인에게는 꺼리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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