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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접어든 빌리그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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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접어든 빌리그래함타임지, 선교50주년 맞은 빌리그래함목사 집중 취재올해로 75세가 된 빌리그래함 목사의 선교사역 50주년을맞아 TIME지는 '말년에 접어든 크리스찬'이란 제목으로 글을 집중 취재, 기사화 (93,11,15) 했다. 이를 요약 소개해본다.빌리그래함목사는 이번주로 75세가 된다. 인류역사상 빌리그래함목사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숫자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 시대의 위대한 영혼의 추수꾼, 빌리그래함 목사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전세계 각국의 운동장, 성당, 서커스 텐트,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개최된 집회에서 그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 받기"를 요청 받은 사람은 1억명을 넘어설 것으로추정되고 있다. 지난한해 동안 2백87만4천명의 사람들이 그의 '예수영접'요청에 응답한 것으로 보좌진들은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다. 작년 모스크바에서만해도 15만5천5백여명의 청중들중 1/4이 예수 앞으로 나오는 역사가있었다고 전한다.빌리그래함 목사는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일을 하게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면서 "이제 하늘나라에 갈 때가 언제인지 주께 물어야만 한다"고말한다. 이제 그의 은빛갈기는 여위어졌고 그의 발걸음은 힘차지 못하다.그는 이제 더이상 부흥집회를 찾아다닐 힘이 없다. 훌륭하던 그의 설교에서도 열정은 많이 감소 되었고 목소리도 잔잔해졌다. 그는 현재 파긴슨병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병이 악화됨에 따라 신경의 무질서는 그로 하여금운전할 수도, 펜으로 글씨를 쓸수도 없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남은 여생을 깨달은 이후 신약성서연구에 대부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그는 "가끔 마귀가 나를 둘러싸는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고 토로한다.그는 "그 순간 육체적인 힘의 한부분이 내 몸 밖으로 나가고 나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약해진다. 온몸에 힘이 빠지곤 한다"고 말한다. 힘든 성전(聖戰)을 끝낸후면 그는 그의 부인 루스여사와 함께 케롤라이나 북쪽지역에위치한 그들의 너른 통나무집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말한다. 이젠 "너무 힘이 들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느려지길 원하든 원치 않든 파긴슨 병은 나를 느림보로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빌리그래함으로 하여금 유명한 부흥사가 되게 한 계기는 의외의 사건이었다. 그가 플로리다의 어느 성경공부반에 있었을때 에밀리라는 예쁜 동료를 만나 인생을 약속하게 되었는데 이를 깨버린 그녀의 변심이 빌리그래함을 몹시 괴롭게 만들었다. 이 일이 있은후 그는 그녀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입증해 보이기로 결심했고, 하나님의 소명에 복종하게 된다. 그는 낡은 헛간이나 호수 가운데 배를 타고 나가서는 큰 소리를 내어 설교연습을 하기 시작 했고 지방의 작은 교회를 순회하며 몸 동작과 얼굴 표정연기도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다.젊은 나이에 벌써 대부흥사로의 기질을 엿보이기 시작한 그는 친구들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 친구'로 여겨지게 되었다.그의 교육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는 1940년에 있었다. 그가 일리노이주 웨톤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은후 그는 복음주의연구소에서 공부할 수있는 기회를 얻게된 것이다. 거기에서 뜨거운 신앙으로 티벳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루스 벨을 만나게 되었고 "내가 이끌고 갈테니 나를 따르라"는 결혼요청으로 둘은 결혼하게 된다. 빌리그래함은 자신의 동역자인루스 부인에 대해 "나를 복음주의자로 만드는데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사람"이라고 평한다.웨톤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한 작은 교회를 맡게 되었고 여기에서 국제기독청년회(Youth for Christ Inter)와 함게 일하게 된다. 이후 이 젊고패기 넘치는 복음주의자는 미국전역을 순회하게 되었고 곧이어 세계를 돌며 많은 군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된다.빌리그래함목사는 과거를 회고하면서 "내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은 바로학문연구에 대한 아쉬움이다. 나는 학교에서 더 많은 공부를 했어야 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그는 "의심은 나의 소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위험스러운 요소였다"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면서 가장 진실된 말씀은바로 성경이며 일평생 이를 스승으로 삼아왔음을 밝혔다.하지만 성경에 대한 그의 순수성이 그를 보수주의자로 못박아두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순수한 복음주의자(Evangelist)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근본주의는 가장 기초적이고 놀라운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은 선로를이탈했고 많은 극단적인 위치로 들어섰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근본주의자들로 부터 많은 공격을 받게 했다. 그는 "근본주의자들의 적대 행위가 자유주의자들의 조소보다 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는 마치 나의 형제가 나를 등지고 돌아서는 것과 같았다"고 덧붙였다.미국대통령들은 기도가 필요할때 빌리그래함목사를 부르곤 했다. 그는백악관에서 아이젠하워에게 설교했고 걸프전쟁 바로 전날밤에는 부시와 함께 보냈다. 닉슨은 그를 이스라엘 대사 자격으로 중동지역에 보내기도 했다. 또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힐러리 여사와 만남을 갖기도했다.빌리그래함목사는 부인 루스와의 사이에 세딸-지니,앤,버니-과 두 아들-프랭클린,네드-를 두고 있다. 세딸은 이미 출가 했고 두 아들은 현재 복음주의 선교단체에서 일하고 있다.하지만 두 아들이 주의 일을 감당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플랭클린(41)은 '유명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폭주를 일삼았고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었다. 둘째 아들 네드(35)도고등학교 시절부터 방황하기 시작해 마리화나 등을 통한 마약복용으로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내야만 했었다. 이러한 아들들의 어려운 시절에 대해 부인 루스여사는 "자신들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반항"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반항 시기를 지냈고 아버지의 복음선교에 동참해 아버지의뒤를 이어 주님께 쓰여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기까지는 빌리그래함목사와 그 부인 루스 여사의 지속적인 기도와 사랑이 큰 힘이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사탄은 너의 삶을 차지하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네 영혼속에서 계속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란다" 빌리그래함목사의 이러한 충고 속에서 두아들은 하나님에게 잡힌바 되었고 현재 네드는 중국교회를 지원하는 국제동양단체를 이끌어가고 있다. 프랭클린 역시 두개의 국제원조기구, 사마리안 기금과 세계의료선교회를 책임지고 있다.---------------------------------- 물은 마음에도 좋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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