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러시아 장교의 고뇌어린 편지

본문

"체첸전선서 날아온 한 러시아장교의 고뇌어린 편지"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무의미한 전쟁…옐친과 그라초프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지난해 11월 러시아의 공습으로 시작된 체첸전투.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인 체첸의 독립을 둘러싼 이 전쟁은 당초 러시아측의 호언과는 달리 3개월째 숱한 주검만을 쌓고있다.본지는 체첸전선에 참전중인 러시아 육군의 블리디슬라프 슈르긴 대위가 러시아 민족주의계 자프트라지에 기고한 참전기 [12월44일]을 자프트라지의 양해아래 현지 보도전 단독 입수, 게재한다. 그의 참전기에는러시아 군 수뇌부에 대한 강한 비판과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있다.요즘 매일 아침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주여! 우리를 살려주세요.죽음이 나의 사랑하는 친구 레하와 세르게이를 비켜가도록. 동향친구이골도 도와주세요. 당신은 아프카니스탄에서 그를 도와주지 않았습니까이번에도 도와주세요. 주여, 당신을 제외하고는 그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수 없습니다.}.부서진 건물에 몸을 은폐한채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총소리는 계속되었다. 총알이 날아와 깨진 벽돌 파편으로 인해 경미한 어깨부상을 당했다. 내옆의 대대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벌써 10일째 이 전투에참가하고 있었다.{도대체 적을 어디서 찾으라는 거야. 저쪽에서 사격을 가하는 놈들은 도대체 어느 편이야.}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우리 대대병력은 총1백50명에 불과했다. 우리 대대는 우리 앞에 방어선을 치고 있는 연대본부를 지원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연대 진지로부터맹사격이 가해졌다. 우리를 적으로 오인한 것이었다.눈썹을 찌푸린채 마냥 시계를 바라보던 대대장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았다. {10분 뒤에 진지 근처로 다가가서 군호를 외친다.} [군호]. 이것은 아군임을 알리는 육성신호이다. 총알이 쏟아지는데 그냥 다가가서우리편에 사격하지 말라고 외친다 10여분 뒤 불을 뿜어대던 기관총이멈췄다. 그때 대대장이 뛰어나가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그리고 곧 땅에 엎드렸다. {사격중지! 같은 편이야!} 50M쯤 떨어져 있는 연대 진지에서 소리가 들렸다.{우리 편이라고 소속을 밝혀라.} {제 2대대 대대장이다.} 대대장은다시 한번 숨을 내쉰 다음 몸을 일으켰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소리가 들렸다. {이 쪽으로 오시오.}병사들은 폐허 건물에서 기어나오기시작했다. 곧 조그만 길은 병사들로 메워졌다. 은폐건물 뒤에 서 있던수송차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대장은연대본부 대대장을 만났다. {죄송합니다. 체첸군이 공격해 오는 줄 알고, 무식한 우리 졸병들이 사격한모양입니다.} {체첸군 대대병력을 본 적 있소} 우리 대대장의 말은 정당했다.체첸군은 보통 3∼5인으로 구성된 전투편제를 갖고 있으며, 10인 이상 넘어가는 공격 전투단위는 거의 없었다. 옆에서는 간호병이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전사자 2명중 1명은 아군에 의한것 ***.그로즈니(체첸 수도)에서는 우군의 사격을 받아보지 않은 군인이 없다. 소총사격만이 아니다. 우군 폭격기에 의해 폭격당하고, 우군 포병에의해 포격당했다. 통일된 전투 지휘부에 의한 정확한 협동작전 없이도시공격에 무조건적으로 내몰린 각 부대들은 연락과 통신이 두절된 채고립되어 있다. 우군이 어디 있고, 적군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이같은 상황은 생존본능만을 자극, 살아있는 물체가 보이면 무조건 사격하고 본다. 늦게 쏘면 자신이 당하기 때문이다.기동화기연대 연대장 V. 블라지미르 중령은 작전 지휘부를 욕하기시작했다. {전사자 2명 중 1명은 아군에 의한 것이야. 아군 폭격기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다 철렁거려. 그래도 낮은 조금 낫지. 밤은 정말 개같아. 우리 연대는 그로즈니시에 10일째 주둔하고 있는데, 신정공세 당시역포위를 당해 4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어. 그런데 알고보니 시베리아에서 온 혼성여단이었지. 기가 막혀서.}.연대본부의 상황은 엉망이었다. 탱크병들은 제대로 복장도 갖추지않은채 그냥 여기저기 누워 있었으며, 장비들도 제멋대로 놓여 있었다.탱크중대 중대장이 변명조로 설명했다. {병사들 대부분이 신병들입니다.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채 전선으로 내몰렸습니다. 어떤 새끼들이 이런부대를 이끌고 전쟁을 하라고 하는지.}.탱크는 모두 72대가 서 있었다. 80대가 되야 맞는데…. 어제 하룻밤사이에 8대를 상실한 것이다.가장 치열한 전투는 12월 31일에서 1월1일 사이의 밤이었다. 러시아군은 이날 밤 탱크를 앞세우고 종대대형으로 그로즈니시 중심가를 향해진격했다. 갑자기 건물에서 유탄발사기가 불을 뿜었다. 순식간에 대열이붕괴되고, 시가는 지옥으로 변했다. 많은 탱크들이 뒤따르던 보병들을내팽긴채 도망쳤다. 은폐물을 상실한 보병들은 체첸군의 밥이 되었다.*** 고층빌딩 밀집지역 탱크진격 명령***.밀집한 고층건물 꼭대기에 적이 은폐하고 있어 우리 탱크포는 무용지물이되었다. 한 탱크병은 나에게 말했다. {목표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던 것이 탱크포이지 대공포는 아니지 않습니까}이날 밤 전투로 인해 사마라(도시명) 기동화기연대는 전멸했다. 불과몇명의 장교와 수십명의 사병만이 살아 후퇴할 수 있었다.예프게니 수르닌 대대장이 이끄는 보병대대는 원대 복귀자가 7명(대대장 포함)에 불과했다. 오르제니기제가에서 접전을 벌인 탱크중대의 경우에는 사병 두명만이 살아 남았다.유탄 발사기, 대전차포로 무장한 체첸군 소단위 부대가 건물 곳곳에산재해 있는 도시를 향해 종대대형으로 진격하다니. 이러한 작전명령은오류가 아니라 범죄행위다. 그라초프계열 장군들은 모스크바에서 파티를즐길 줄 알아도 전투는 전혀 모르는 것같다. 도시 시가전에서 탱크가 무력하다는 것은 이미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잘 보여준 것인데…. 엘리트부대인 공수부대 조차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게릴라전 교육을 받은이들도 피해가 막심하다.1월 1일까지 26명이 전사했고, 1일과 2일 이틀간의 전투에서만도 최소한 80명이 전사했다. 이 비극은 누구의 탓인가 제대로 된 계획도없이 무의미한 전쟁을 일으킨 그라초프장군과 옐친대통령에게 죄를 묻지않을 수없다. 해병대대가 도착했다. 그들도 1주일도 훈련을 받지 못한채실전에 투입됐다. 4분의 1 가량의 해병대원이 3일전에 처음 소총을 만져보았다는 것이다. 이런 부대를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라니. 또 사단본부에 카프카스 군관구 소속 혼성연대가 도착했다.한 중대장이 물어 보았다. {어디서 사격연습을 해 볼 수 없을까요}한번도 쏴 본 적이 없는 최신형 소총()이 배급됐다는 것이다. 그런데이 혼성연대 중 일개 대대는 불과 몇시간 뒤에 전투에 직접 투입되었다.이번 체첸전쟁은 소련방 붕괴이후 러시아군이 얼마나 개판이 되고있는가를 처절히 보여주고 있다. 군대는 내부에서 철저히 붕괴되고 있었다. 군기가 엉망인 것은 말한 필요도 없다.작전회의가 시작됐다. 포병중대장 투쉰대위, 대대장 이반 페트로비치소령 등이 모여 앉았다. 투쉰대위는 1월 1일 공세이후 새로 배속된장교이다. 이반 페트로비치소령은 작전명령서를 하달했다. {우리 대대는이쪽 지역을 장악해야만 한다. 따라서 각 중대별로 도로 한개씩 담당한다. 우리 병력은 불과 3백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작전은 매우어렵다.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먼저 정찰대를 보내 적이 있는지를확인한 다음, 적이 없을 경우에는 먼저 건물 옥상을 장악한 뒤 도로를장악한다는 것이 작전의 골자였다.이 지겨운 전쟁에서는 사관학교에서 배운 기동전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어린아이들 전쟁놀이마냥 건물 벽에 숨어서 쏘고 도망가는 식의전투였다. 따라서 탱크나 야포가 아닌 소총과 수류탄이 주요 무기였다.정찰대가 한 건물을 살펴보고, 적이 없으면 건물 상층부나 옥상을점령하여 기관총을 설치하고, 건물을 샅샅이 뒤진다음 탱크가 건물앞 도로로 전진하고, 그 뒤를 보병이 따르는 식의 전진. 만약 적이 있을 경우에는 불과 1를 전진하기 위해서 몸서리치는 격렬한 전투를 치러야만 한다.또 전진했다고 해도 적은뒤에서도 나타난다. 5일전 한 체첸여자가 대대장에게 할 말이 있다고 찾아온 적이 있다. 대대장의 허락을 받은 이 여자는 들어오자 마자 호주머니에서 수류탄을 뽑아들었다. 옆에 있던 병사가 간신히 빼앗아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이 체첸여인을 심문했다.-아이가 있는가 {둘}-남편은 뭐하는 작자야 {죽었소.}-이번 전쟁에서 {아니오. 1년전에.}-누가 이런 일을 시켰어 {친정 아버지가…}-뭐, 친정아버지가 그 작자가 직접 싸우지…. {그 분은 늙으셔서걸음도 제대로 못하시는 분이요. 어차피 나는 과부이고, 아이들은 친정에서 길러줄 것이고….} 체첸전쟁에서는 전선도 후방도 없다. 아니 적군도 민간인도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는 건물의 정글에 갇힌 것이다. 체첸산악지대에서의 게릴라전에 걸리기 전에 이미 건물의 숲에 걸린 것이다.*** 오합지졸 병사에 엉터리 정보이번 체첸전쟁은 우리 러시아군의 실체를 적랄하게 드러냈다. 세계최강의 군대 소련군은 사라지고, 엉터리 오합지졸 러시아군이 남아있다.스테파쉰 FSK(러시아연방 방첩대-KGB 후신)의장은 두다예프 체첸군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가지고 있던 정보가운데 제대로 맞는 것이 없었다.{1개 공수연대면 몇시간 만에 그로즈니시를 점령할 수 있다}던 그라초프 국방장관의 호언장담은 모두 엉터리 정보때문이었다. 체첸군은생각보다 잘 무장되어 있었으며 훈련도 잘 되어 있었다. 엉터리 정보만믿고 안이한 작전을 벌이다가 1월 1일 대참패와 같은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국방군은 국방군대로 보안군(내무부 소속병력)은 보안군대로, 연방 방첩대는 연방 방첩대대로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었것은 작전을 위해 파견된 병력의 질 문제다.80%가 혼성부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경우 훈련기간이 너무 짧아실전이 곧훈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라초프 장군은 이번 체첸전쟁을 93년 10월에 있었던 벨르이돔(국회의사당) 공격 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협동작전 없이 탱크로 밀어붙인 다음 포위해서 항복을 받아냈던 93년 10월 벨르이돔 공격처럼,체첸그로즈니 대통령궁 공격이 용이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보급문제도 심각하다. 따뜻한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피복지급이 안되어 찢어진 전투복을 계속 입고 지낸다. 근거리 사격이 아닌 경우에는 관통이 안된다던 방탄조끼는 모조리 뚫렸다. 통신장비도 석기시대 수준이다. 무전기는 작동되지 않고, 유선장비는 항상 부족했다.체첸군 시체를 발견했다. 러시아인 얼굴이었다. 신분증을 찾아냈다.[보가초프 세르게이 블라지미로비치. 76년 11월 5일생. 알타이주 에르마치르 마을 출신. 94년 11월 5일 루드밀라 부한쇼프와 결혼.] 결혼한 지불과 한달이 조금 넘었다. 이 청년은 왜 이 머나먼 체첸땅에서 동포의가슴에 총을 겨누다 죽어간 것일까 말로만 듣던 용병일까 한 체첸군포로의 말이 생각났다. {시베리아에서 경영하던 조그만 가구공장이 문을닫았다. 그래서 종업원들과 이곳 체첸 고향으로 돌아왔다.}.마침내 체첸 대통령궁을 점령했다. 대통령궁에서 특수부대 대원들은일반보병이 3일동안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점령하지 못한 [석유-가스연구소] 건물을 1시간 반만에 점령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투쉰대위가물었다.{오늘이 며칠이지}{12월 44일.}{뭐라고}{그래도 너는 신정을 지냈지}{체첸으로 이동해 오는 열차 안에서 한잔 했지.}(설날 떡국을 먹는우리와는 달리 러시아인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 사이 자정에 샴페인을마신다;역자주)-{우리는 아직 못했어. 그래서 우리에게 오늘은 12월 44일이야. 아직 아내와 새해 축하 샴페인을 마시지 못했거든.}.나는 1월 1일이후에 전선에 투입된 투쉰대위를 놀렸다. 그렇다. 모스크바 파티장에서 1월 1일을 맞이한 고위 정치가, 장군들과 달리 우리일선 장교들과 병사들은 아직 1월 1일을 맞이하지 못했다.12월 44일, 45일, 46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언제 1월 1일이 올런지.<번역=황성준 상페테르부르그 특파원>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40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