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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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볼 줄도 아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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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까지도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성대가상해 '침묵'해야 했는데, 지난해 12월 거의 10개월만에 조금씩 말하는게 가능했으나 많이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말연시 이곳 예수마을을 찾아온손님들과 조금씩 대화를 나눈게 화근이 되어 다시 성대주변이 붓고 따가와현재(1월 중순) '침묵'중입니다. 이 먼 곳까지 쳐들오 오신 분들을 문전박대할 수도 없어 입을 연게 '미련한'짓이 되고 만 것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께 송구스럽기 그지 없고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이곳으로 이사온 지도 어언 석달 보름이 다 되어갑니다. 이 산골 마음에있는 자그마한 교회에 출석을 하는데 교인이 한 40여명되는 아담한 교회입니다. 이 곳에 이사와서 교회에 나가며 제가 제일 견디기 힘들고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바로 예배전 찬송부르는 시간입니다. 시골 교회들이 거의 그렇듯이 대부분이 노인들이신데(설령 젊은 사람들이 좀 있더라도 그들조차도) 찬송을 부르는 것이 흡사 타령이나 중얼거림이기 십상인 것입니다. 전도사님이라도 마이크에 대고 찬송을 부르시면 낫지만 예배전엔 전도사님께서도 예배준비,기도등의 이유로 미리 나오시기 어려우므로 하는 수 없이 교인들끼리 찬송을 부르는데, 반주자도 없고, 게다가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찬송가가 거의악보가 없이 가사만 있는 것이기에 오로지 '대강, 기억만으로' 부를 수 밖에없는 것입니다. 찬송소리는 땅바닥에 깔려 있고(적어도 한 옥타브 이상) 그나마 곡이 제대로 흘러가기가 어려울 뿐더러 때로는 잘 나가다가 가사는맞는데 곡조는 전혀 다른 곡의 것이 끼어들어 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곳에선 목소리 큰 할머니의 곡조가 이깁니다. 어쨌거나 그 할머니의 '창'에다른 이들도 따라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축축 늘어지는 노랫소리들…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그 자리 한 가운데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엔 비록 시덥잖은 엉터리이긴 했었어도 명색이 찬송인도자였습니다. 제 목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크고 우펑차며, 이삼백명 앞에서도 마이크 없이 세시간 이상 강의를 할 만큼 튼튼한 성대를 가졌습니다(덕분에 이처럼 엉망이 되었지만) 그런 사람이 이런 자리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잇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말을 조금 할 수 있던 때에도일체 찬송은 못 부르고 그저 입만 달싹여야 했으니...! 마음 같아선 그냥 큰목소리로 찬송을 이끌어 나가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 얘긴가요 한 두달동안은 너무 답답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정말 홧병이 생기지 않나 싶을정도였습니다. 공연히 애ㄲ게도 옆에 있는 아내 옆구리만 쥐어 박는 것입니다. "좀 크게 해! 제발!" 그러나 아내도 곤욕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할머니들이 시작한 찬송 음이 워낙 낮아 따라하기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피아노음대로 하면 할머니들이 도저히 소리를 낼 수 없으니 그렇게 인도할 수도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 함께 흐느적 흐느적 할 수 밖에요. 쯧쯧..! 그 가운데 앉아 있는 저는 주여! 하며 가슴만 치고 있는 것입니다.'어이구, 답답혀! 도대체 이것도 찬송이라도 부르는 건가'당장이라도 일어나 앞에 나가 고함을 치고 싶은 생각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이것 좀 보세요. 다들! 아니 누가 죽었습니까 어떻게 찬송이 전부 장송곡입니까 그리고 하나 따져 봅시다. 주님 찬송하는게 그렇게시시한 일입니까 왜들 그렇게 찬송소리가 풀어 푹-죽어 있습니까 저야말을 못하니 그렇다 치고, 아니 여러분들은 다들 목소리가 멀쩡한데 그 목아껴뒀다가 무덤속에 갖고 가실 계획들입니까 좀 속 시원하게 찬송 못해요 정말"하고 말입니다. 예전에 각 교회에 가서 많이 떠들던 소리이기도합니다. 목만 나으면 아주 이 교회 찬송부르는 자세부터 고쳐놓아야겠다고벼르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묵상중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용덕아! 불쌍한 내 아이야! 내가 네 목을 친 까닭을 아직도 다 모르고 있구나. 그렇게 감을 못잡겠니 목이 멀쩡하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뭘 가르치겠다고 했느냐 쯧쯧! 오! 아니다. 용덕아! 그게 아니다. 저 백성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어 내가 너를 이 산골짜기까지 끌고 들어왔겠느냐 천만의말이다. 착각하지 말아다오. 너 말고도 이 세상엔 똑똑한 사람이 너무나 많단다. 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있더구나. '그렇찮아도 할 일 많은 이때에 왜 하필 하나님께선 최간사를 저렇게 1년가까이나 말도 못하게 만드십니까'하고 말이다. 오해하지 마라.내가 일꾼이 모자라서 나의 일을 제대로 못 이룰 줄 아느냐 그건 너희 인간들의 생각일 뿐이다. 용덕아! 만약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이걸 가르쳐 주마.대구에서 찬미선교팀을 결성한 후 지난 5년간 승승장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최용덕, 최용덕하며 너를 찾고 너의 간증을 원하고 강의를 요청하니까너는 네 스스로 아마도 대단한 예수의 일꾼이나 되는 줄 알았겠지 그리고너의 주변의 사람들도 그렇다. '찬미'하면 곧 '최용덕', '최용덕'하면 곧 '찬미' 운운하며 마치 찬미가 최용덕이 하나 때문에 유지되는 양 '최간사 없으면 찬미야 하루아침에... '어떻게 하며 떠들더구나.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그렇다면 나는, 이 땅에 최용덕이란 사람이 없어도 나의 계획과 사역이 어떻게 능히 잘 이루어 져 갈 수 있는지를 너와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줄 작정이다. 찬미도, 최용덕이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사역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겠다. 아니 대구땅에서 찬미팀 조차 사라진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내 나라는 확장되어 갈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려한다.용덕아! 명심해라. 추호라도, 네 자신이 무슨 대단한 사역자나 되는 것처럼 거들럼거리지 마라. '찬미'라는 이름의 팀이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도 생각지 마라.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것을 잊진 않았겠지 나는 나의 피조물들이 다른 피조물들을 나보다도 더 주목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내가 속좁은 옹졸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 줄 아느냐 그게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곧너희 피조물, 특히 인간에게 있어선 패망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네 스스로 조금이라도 우월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면 그것이 곧 네가 망하는 길로접어 들었음을 깨닫도록 하여라.지난 10개월동안 너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연단을 통해 내가 의도했고 계획했던 많은 훈련을 그런대로 잘 감당해온 것도 사실이다. 너의 목의 회복을위해 기도하는 많은 나의 자녀들의 기도소리를 내가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가 기대했던, 이 연단을 통해 얻기 원했던 아주 중요한 몇가지 [과목]에서 아직도 빵점을 면하지 못하고있기 때문에 나는 너의 목을 아직 열어줄 수가 없단다.적어도 나는 네 스스로 그 정도는 쉽사리 깨달을 수 있을 줄 알았고, 난그것을 학수고대했다. 왜냐하면, 그까짓 것 쯤이야 당장이라도 하루아침에나의 능력으로 네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보다도나는 나의 자녀가 스스로 깨달아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벅찬 감격거리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오늘 시간까지도 너는 나를 기쁘게 해 주지 못하는구나. 내가 왜널 이 산골마을 교회당 안에 앉혀놓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가 그 한가운데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다는 소리가 "으이그! 이것도 찬송이냐" 겨우 그런 탄식이냐 건방진 녀석.... 도대체 네가 거기에 무엇하러 앉아 있는게냐 내가 널, 거기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 찬송부르는 자세, 음정, 박자심사나 하라고 보내놓은 줄 알았더냐 이 답답한 아이야! 내가 널 선생, 재판관으로나 쓰려고 말도 못하게 만들어 이 산골짜기로 쫓아보낸 줄 알았더냐 여기서 큰 소리나 치고, '무식한 사람들'앞에서 훈계나 하라고, 그래서그동안 갈고 닦은 네 진면목이나 보여 주라고 이곳에 보낸 줄 알았어이 불쌍한 녀석아! 아직도 넌... 참으로 멀었구나. 아직도 그걸 못 배웠니도대체 언제까지 네 알량한 경험과 지식으로 남들을 평가하고 분석하고 앉아있을 작정이냐이것하나 분명히 알아두어라. 네가 볼 땐 이곳 시골교회 교인들이 '흐느적거리며 타령조로 부르는'(이건 네가 했던 말이다) 찬송들이 도대체 음악도아니고 노래도 아니고 찬송도 아닌것 처럼 보이는 지는 모르겠는데 이놈아!그건 네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야.내겐 이들의 음정, 박자도 안맞는 그 흐물거리는 찬송이 어찌 그리 귀하고소중한지 늘 언제나 이들 가운데 함께 하여 귀를 기울이고 또 너무도 기쁘게 그 고백들을 받는단다. 왜, 뭐가 이상하니 너희 인간들은 뻑하면 내 이름을 들먹이며 음악의 수준을 논하고 가사의 문학성을 이야기하고 화음과표현의 세련미를 떠드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데엔 크게 관심이 없다.그거 알고 있니 그게 '거룩'이라고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그 찬송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의 진실성과정성, 바로 그것이다. 나는 네가 소위 '찬양강의'라는 걸 통해 늘 빠짐없이바로 이 말을 떠들며 가르치는 것을 수없이 들었지. 그러나 정작 문제는,네 자신은 지금도 별로 그런 문제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야. 내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녀석이 교회 한 가운데 앉아서 '으이그, 답답혀! 이것도 찬송이라고!'하며 가슴을 치는 거냐넌 아직도 멀었구나. 나는 네가 적어도 그 알량한 얼마간의 경험과 주워들은 지식으로 남들을 가르치려는 태도부터 고치지 않으면 너의 목을 열어주지 않으려 한다. 도대체 네가 똑똑하면 얼마 똑똑하며, 잘났으면 얼마나 잘난 게냐 나는 네가 적어도 남을 가르치기 전에, 네가 먼저 지녀야 하고 배워야 할, 태도, 자세부터 익히지 아니하면 네가 말로 남을 가르치는 일은맡길 수가 없다.어디 물어보자! 네겐 도대체 뭐가 그렇게 '차마 보지 못할 것'도 많고 '차마 듣지 못할 것'도 많고 '가만 두고는 못 볼 것'이 많으냐 말 나온 김에,네 발목 얘기... 어디 네 입으로 설명 좀 들어보자. 어서!"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숨겨둔 내용인데 어차피 이곳에 들린많은 분들께 발각이 되었기에 이실직고 합니다.사실은 제가 말만 못하는 게 아니고... 잘 걷지도 못합니다. 벌써 두달째입니다. 죄송합니다. "에이그~ 참 지지리도 못났군! 기가차서! 아 최용덕씨 당신 왜 그래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야 뭐 아픈게 자랑이야 동정표 긁어모을 일있어"할 말이 없습니다. 한 달 반동안은 정말 겨우 몇 발자국만(병원에 갈때)걸을 수 있었고 집에선 꼼짝없이 기어다녀야 했답니다. 지금은 목발을 짚고조금씩 다닙니다만...양쪽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디딜 때 마다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이거- 오래 가는 거 알죠 걸으면 안돼요! 계속 무리하면 인대늘어난 건 돌이킬 수 없어요!”라며 협박()을 했습니다. 물리치료를 보름이상계속받고 침도 보름이상 맞았지만 그게 원체 하루 아침에 낫는 게 아니니…어쨌든 저는 이곳에 이사온 지 한달 뒤부터 방안에 꼼짝 못하고 앉아만있어야 했습니다. 하긴 가을에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며 놀 때()가 좋았지요.저는 원래 성격상, 어느 정도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저분하게 정리가 안 되어있고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꼬락서니’는 가만두고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찬미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오며 가며 늘 잔소리인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결혼 후 아내가 저에 대해서 포기한 것은 책상, 방 정리입니다. 돼지우리처럼 만들어 놓고도 그속에 들어 앉아 작업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긴 그건 ‘나아진’게 아니라 무질서해 진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쨌거나 옛버릇 어디 가겠습니까 제 방이야 제 자신도 포기했다치더라도, 다른 곳이 어지러워져 있으면 그건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처음에 이곳에 이사를 오니... 세상에! 이럴수가! 이게 사람사는 곳입니까도처에 널려 있는 쓰레기들, 무성한 운동장의 잡초들, 10년동안 손을 보지않아 제멋대로 자라나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들, 귀신나올 것 같이 온통 부서지고 뜯기고 엉망진창인 기와집, 비가 새는 교실 지붕들, 무너져 내린 벽,엉터리 전기시설들...적어도 제 눈엔 그런건 내버려두고는 못 볼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도착하자 마자 주먹을 쥐고 이를 갈았습니다. 하긴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낫이니톱이니 하는 공구들을 죄다 사오기도 했습니다. 이튿날 부터 닥치는 대로일을 했습니다. 집근처 풀이라도 베어내고 캐내니 좀 나아진 듯 했습니다.목사님과 함께 고랑을 메꾸고 마당을 정돈했습니다. 그리고는 오후엔 뻑하면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땄습니다. 일손이 없어 감따는 일은 우리외엔 아무에게도 맡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감나무에 올라가 버티고 서서 장대로감을 꺾어내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발목에 힘이 얼마나 많이가는 일입니까 며칠 후 오른쪽 발목이 시큰둥하고 아팠을 대 정신을 차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품이 하도 되먹지 못해서, 제 자신이든 누구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게으름을 부리거나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 ‘꼴’은 용납하지 못하는 터라 눈 앞에 산적한 일거리를 두고 발목이 조금아프다고 ‘엄살’을 부린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늘 그런 식으로 무식하게살아왔고 실제로 그런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대부분 먹혀들어 갔었습니다.아내가 ‘제발 좀 쉬어라’고 당부하는데도 불구하고 다음날 꼭두새벽에일어나 절뚝거리며 톱을 들고 나갔습니다. 혼자 사다리를 어렵게 어렵게 플라타너스에 걸쳐놓고는 올라가 곡예하듯이 매달려 가지들을 톱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반나절이나 걸렸습니다. 오른 발이 아프자 왼쪽 발만으로깨금발을 해가며 다녔습니다. 머저리... 멍청이... 바보... 미련둥이... 똥고집...무식쟁이...“이거 지금 더이상 무리하면 평생 고생합니다. 발목 인대는 달라요, 다른데 하고.” 의사와 다른 분들의 경고에 그제서야 겁이 덜컥 났습니다. “다니면 안돼요!”하기는, 목도 그랬지 않습니까 따갑고 아플 때 이미 경고를 느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몇달 전에 잡혀 있는 집회들을 목이 좀 따갑고 아프다고 취소를 한단 말입니까 저로선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엄살은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어느 봉사모임의 뮤직디렉터로 삼일 밤낮을 꼬박 찬송인도를 하고 이튿날부터 잡혀있는 찬미집회들을 하고 세시간짜리 강의까지 마이크 없이 진행했습니다. 병원에 들렀을 땐 이미 성대의모세혈관이 터져 물혹이 생긴 후였습니다. 서울 한강성심병원 이비인후과,“이거 수술로 제거하는 방법외엔 다른 방법 없습니다. 수술날짜 잡지요.”그렇게 무식할 수도 있는 건가요 저 말입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는걸 왜 몰랐던 걸까요 우리의 육체는 애초부터 어느 한계이상 혹사를 시키면 이상신호(경고)를 보내게 하나남께서 만드셨고, 그 경고를 무시하면 넘어지게 되어 있는게 하나님께서 주신 법칙이거늘...뒤늦게야 겨우 이 초보적인 ‘진리’를 조금이나마 깨달은 저는 의사선생님의 권고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더이상 아내를 속썩히는 죄도 지을 수없었던 것입니다.그 즈음에 저희가 살 집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산골에서의 공사에 일손이 모자라는 게 당연하고 집 주인이 가서 집일이라도 돕는 것이 상식입니다. 일이 제대로 되어 가는지 돌아보고 싶고 도 마땅히 보는게 상식입니다. 그러나 저는... 200m 떨어진 임시 거처에 들어 앉아 멀거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일 괴로웠던 것은 공사 일꾼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거... 일하기 싫어서 엄살부리는 것... 다 압니다. 에이그... 저희는요, 갈비뼈부러졌는데도 톱질했다구요.”하는 말이었습니다. 제 성격에, 이 와중에 들어앉아 있는 것도 견딜 수 없는 고문이거늘... 엄살, 요령의 혐의는 차마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도... 그래도 도리가 없습니다. 이 상황을 참고 견디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저희가 살 집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이사를 하는 날, 찬미형제들과일꾼들이 죽을 고생해가며 짐을 나르는 것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별 수 없이 구경이나 해야 하니 그것 역시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보다도 더욱 힘든것은 여전히 엉망으로 방치되어 있는 이곳 예수마을 구석 구석을 바라보는일입니다. 창문을 열면 교실바닥에서 나온 그 좋은 목재들이 아무렇게나 내던져 진 채 비를 맞아 썩어가고 있고, 치워야 할 공사자재들, 공사 쓰레기들이 집 앞뒤에 흉칙스럽게 널려 있는 것이 빤히 보입니다. 기와집은 여전히 흉가입니다. 나머지 옛 사택들도 폐가처럼 내버려져 있습니다. 목사님혼자서는 비틀거리는 진협이를 데리고선 손도 댈 수 없는 큰 일들이라 아얘 엄두도 내시지 못합니다. 결론은 제가 나아서 밖으로 나가 힘을 합하는길 밖에 없습니다. 바로 코앞 손 닿는 곳에 쌓여있는 '두고 못 볼 골칫거리'들을 '두고 보아야'하는 고문은 참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습니다.그러나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며... 저는 이제서야, 새로운 상황에 대한 조용한 적응훈련을 받다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창문만 열면 널려있는 '골칫거리'들이 보기싫고 골치가 아파 아얘 창문열기를 포기했었습니다. 집안에서 기어다녀야 하는 처지로 보고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안보는게 나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어느날부터 갑자기 저는 목발을 짚고 바깥 구경을 나왔다가 달라진 제 눈을 느끼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전히 변함없는 너전분한 환경이지만그때 다시보니 그런 모습들이 뭐 그리 심각할 만큼은 아니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어지럽고 정돈되지 못한 구석구석이 '차마 보지 못할, 신경질 나는 꼬락서니'들이 아니라 그런대로 '두고보아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습니다. 근처에 가기도 싫었던 폐가 기왓집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는데 요즘은 목사님댁이나우리집, 진협이 마저 이쪽 멀리로 이사한 탓에 예전보다 더 흉칙하고 으시시한 몰골인데도 다시보니 그 집은 그 집의 그런 모습대로 어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환경이 바뀐게아니라 제 마음과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사실 조금만 신중히 생각해보면 10년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 곳 구석구석을 하루아침에 천지개벽하듯이 뜯어 고칠 순 없다는 사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뿌리를 뽑을 듯이 이를 으깨어 물고는거품을 흘리며 덤벼들었던 제가 미련한 바보 아니었습니까 아차피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일이라면,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만큼만 이루고는 그나머지는 그 나머지 모습 그대로 '좀 두고 볼 줄도'알아야 하는 것입니다.하룻동안에 겨우 얼마만큼 이루어 놓고는 나무지 '꼬락서니'들을 돌아다 보며 "으이그! 저 꼴보기 싫은 것들! 저런 것들을 내가 보고 있느니 죽지!"하는 자세야 말로 바보짓 아닙니까 그러느니 차라리 "그래! 저 나머지도 아무래도 손이 가면 좀 낫겠지만 그래도 저 모습 저 대로도 인정해 주고 봐주는 거야"라는 자세가 훨씬 나은 것입니다.혼자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혼자 용감한 척 했던 저를 하나님께서 교육시키는 방법은 이 길 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떠드는 목을 치고, 싸돌아 다니는 발목을 후려치는 것. 그리하여 궤변을 못 늘어놓게 하고, 잘난 척 뛰어다니지 못하게 해서, 그리하여 무엇하나 제대로 큰 소리치며 할 것도 없는 '무용지물', '바보'로 만들어 놓으신 것 말입니다.그것은 참 잘하신 것입니다. 저처럼 혼자 똑똑한 척 나서기 좋아하는 녀석은 그저 좀 두들겨 패는 게 상책입니다."으이그! 저놈의 교회도 교회냐 허구헌 날 찌지고 볶고 싸우고...", "저런집구석도 가정이냐", "저런 부모도 부모냐", "저것도 예수쟁이냐 글쎄,담배도 못 끊었대. 가끔 술도 한 잔 한대. 교회에선 또 얼마나 설친다구! 아이구, 난 저런 꼬락서니는 못 봐 줘! 그냥 하나님께서 확 한번 안 쓸어 버리시나", "난 목사님들이 그랜져 타고 다니는 거 보면 눈이 뒤집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 아냐 자기들이 섬기는 교회가 중소기업이라도 되는줄 아는 거 아닌가 어이구, 속 터져! 난 저런 꼴들 못봐줘! 그냥 확∼ 까뒤집어 놓을까 보다. 무슨 개벽이 일어나야 돼! 우리 교회에도!"얼마나 말이 많은 세상입니까 사실은 위의 얘기들은 툭하면 제가 주먹을불끈 쥐고 침을 튀기며 떠들어 대던 말입니다. 마치 이 시대의 마지막 의인(義人)이나 되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선 오늘 제게 이렇게타이르십니다."용덕아! 오냐 그래! 네 눈엔 차마 눈뜨고 못 볼 일이지 하지만 어쩌면좋겠느냐 하나님인 나는 그런 모습들 그대로 놔두고도 잘 봐주고 있으니말이다. 네 말을 들으니 마치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된, 판단력도 없고 둔한신(神)같이 느껴지는 구나. 그렇니 어디 똑똑한 네가 나에 대해서도 한번말해 보렴. 나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날이면 날마다 졸고 앉아 있는 하나님 같으냐 네 이녀석아! 나도 다 두고 보고 있는데 네가 왜 내 앞에 나서서 저건 어떻게 이건 어떻고 하며 내게 보고하는 거냐 내가 네게 그걸 부탁했었어 아니잖니! 물론 네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 자행되고 있는 모든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사건들, 온갖 더러운 모습들.... 난들 보기좋고 아름다와서 감상하고 있는 줄 아느냐 내가 그런 죄악들과 쓰레기같은 인간들의 삶에 대해 징계할 수 있는능력이 없어서 두고 보는 줄 아느냐얘야! 성경을 그렇게 읽었어도 아직도 나에 대해서 그렇게 모르느냐 그게아니란다. 내가 왜 이런 온갖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을 모른체 하며 허용해두는지 아느냐 그것이 바로 너희에겐 '은혜'가 되기 때문이란다. 나는 너희인간들에게 나의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려고 한다. 너희가 그 지경으로 살고 있는데도 내가 너희를 나의 자녀, 나의 백성이라 부르고, 나의일을 맡기고 있다는 거...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느냐 그게 내가 너희들을향해 가지고 잇는 '사랑'이라는 것이란다. 내가 너희에 대해 얼마나 오래 참고 견디는지 알고는 있느냐 내가 정말 또 다시 한번 이 땅에 대해 나의'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랴 나는 너희가 내 앞에서 죽어 마땅한짓을 했어도 관용과 이해심과 사랑을 가지고 너희를 지켜보아 주는 나의모습을 통해 너희 인간들도 서로 너그럽게 보아주고 이해해 주고 참고 견뎌 줄 수 있기를 참으로 원하고 기대한단다. 너희 인간들은 끝없는 자기의(自己義) 의식이 있어 조금만 남보다 더 우월하고 더 배우고 더 가지고 더깨끗하기만 하면 스스로를 남들과는 다른 차원의 거룩한 존재로 끌어 올리려 들지! 내가 보기엔 얼마나 우스운 모습들이겠느냐 때문에 나는 너희 인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실수와 잘못들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이해하겠니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 가운데는 자신의 부족과 허물은 보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남을 향해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쑥덕거리는 자들이 많으니... 누구긴 누구냐 바로 최용덕이 너 아니냐나는 나의 자녀들인 크리스챤들이 불신자들 앞에서 스스로 대단히 거룩한존재나 되는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것을 보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럽단다. 그건 내가 바라고 원했던 반응이 아니란다. 너희가 특별나고 대단해서 내 백성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않겠니왜들 그걸 모른는지 모르겠구나.용덕이 너, [문화선교]가 어떻느니 사명이니 하며 한참이나 떠들었지 그래, 네 생각엔 도대체 뭐가, 어떤 것이 기독교 문화이고 예수 문화인 것 같으냐 음악팀을 만들고 연극팀을 만들어, 콘서트를 열고 집회를 하러 다니고 연주를 세련되게 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잘 하고, 압도적인 연출과 세상팀에 못지않은 조명과 기획, 홍보, 세련된 악보집, 음반 자켓 디자인, 예쁜 기독교 엽서와 성구가 새겨진 옷이나 악세서리... 그런 거라고 생각하느냐그러나, 네가 그런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넌 껍데기밖에 모르는 녀석이다.물론 내겐 나의 이름을 위해, 나의 사역을 위해 헌신할 많은 일꾼들(작곡.작사가, 가수, 연주인, 연극인, 영화인, 문학가, 기획가, 디자이너...)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껍데기를 원하는 게 아니란다. 그런 타이틀을 원하는 게아니다. 예수의 노래를 부르고 예수를 연극하고 예수 영화를 만든다고 그게곧 '예수문화'인 줄 아느냐용덕아! 내가 원하고 바라는 예수 문화는, 그 껍데기 속에 '예수의 정신과삶'이 흐르고 있는 문화를 말한단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섬김'의 문화이다. '겸손'의 문화이다. '용서와 화해'의 문화이다. 번지르르한 껍데기가 아닌 게야.예수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무대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환호와 박수를당연한 듯이 받는 기독교식 '스타'문화가 예수 문화인 줄 아느냐 무슨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 처럼 걸맞는 대우나 대접을 요구하고, 자기와 생각이다르고 스타일이 다르면 '너 혼자 잘났니'라며 서로 물고 뜯고 하는게 예수문화인 줄 알았니 그게 아니란다. 예수문화란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는문화'를 말하며, '어떻게 하면 내 이름, 우리 이름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고 높아질까 애쓰는 문화'를 말하는 게야.나는 오늘 네가 '좀 두고 보아 줄 줄도 아는 마음'에 대해 가르쳐야 겠다고 작정했다. 그것은, 제 스스로가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이며 앞에 나설 자격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존재인가를 깨닫는데서부터 시작된단다. (물론이것이 끊임없는 자기분석, 자기비하, 자학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에 얘기해 주마) 자신의 죄와 허물과 부족함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올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런사람은 다른 이들에 대해 어떤 종류의 우월감도 가지지 않게 되지. 그들보다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자신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크리스챤이 되면,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면, 남들에 대해 쑥덕거리고 비난하는 짓을 그만두게 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왜냐하면 내가 그 자신의 '실체'에 대해 낱낱이 가르쳐 주게 되거든. 죄악의 덩어리... 지금도 끊임없이 죄와 타협해 가고 죄를 범하는 연약한 존재... 이대로는 영원히 멸망받을 수 밖에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도무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자신을 하나님인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삼아 죽여서까지 건져내었다는 사실을...!자신을 제대로 알고나면 더이상 다른 이들의 부족함과 허물을 도마위에올려놓고 난도질 할 수 없게 되는 거... 어떠냐 그게 상식이지 않니그래! '두고 볼 줄도 안다'라는 말은 체념이나 자포자기에서 비롯되는 게아니란 사실 또한 명심하렴. 네가 운동장과 예수마을 구석구석을 바라보며'이제는 두고 볼 수도 있게 되었다'라고 고백한 건 환경 그 자체에 대해 '낸들 어쩌랴. 까짓거 내버려두자!'라는 생각이었던 건 아니지폐허는 폐허대로, 널려있는 쓰레기는 쓰레기대로, 우거져 엉망인 나무는나무대로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나는네가 그런 황폐해진 환경을 통해 오히려 교훈을 얻기를 원한다. 돌보지 않는 영혼은 얼마나 쉬 황폐해 지게 되며 또 보기 흉해 지는가를 말이다.나는 네가 이 산골짜기 자연속에서 '너그러움(관용)', '보다 넓은 이해심','자제력', 그리고 '온갖 허물과 부족함과 보기흉한 것들까지도 있는 그래도인정해주고 기다려 주고 보아주는 진정한 따뜻한 마음'을 배워서 가질 수있게 되기를 정말 원한단다.이제는 부탁이다. 어찌 하든지 '좀 덜 똑똑해 지는 법'을 배우렴.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제 혼자 부지런하고 제 혼자 잘난 척 하고, 너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요란을 떠는 것도, 그리고 "내 몸은 내가 압니다"라는 식으로, 만사는 밀어 붙이면 되게 되어있다는 사고방식으로 내가 세워둔자연법칙과 나의 경고를 무시하는 방자한 행위도 이제는 좀 수그러뜨릴 때도 되지 않았니물론 게으름보다야 '부지런'이 백배 좋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곧 자신의 의(義)가 되면 그건 더 심각하고 나쁜 문제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부탁이다. 용덕아."바깥에 눈이 무척 많이 왔습니다.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였습니다. 제가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으이그 으이그 하며 꼴보기 싫어했던 모든것이 흰 눈으로 감싸였습니다. 크나 큰 하나님의 은혜(눈)아래에선 그 모든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문득 어느 소녀가 보내온 편지가 생각납니다. "눈같은 사람이 있어요. 허물은 덮어주고, 아름다운 것은 더욱 돋보이게 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되고 싶어요"(김제시. 장윤경)달리 표현하면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기 좋아하고 그것으로 대화거리를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꼭 제 얘기를 하는기분입니다.엊그제, 월간 신앙잡지 [빛과 소금] 이번 달 호를 넘기다가 지난 달에 뵈었던 리차드.범브란트 목사님 기사가 실려 있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거기에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이 한국에 머무시는 동안일행들과 함께 어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게 되셨는데 마침 옆자리에있는 다른 한 외국인과 동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범브란트 목사님과그 외국인 남자와의 대화입니다.목사님: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외국인: "아,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크라이스트 처치에 살고 있는데, 지금은 부산에 에스컬레이트 기사로 와 있습니다""오호!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라는 곳에 사신다구요 교인이십니까""나는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내 아내는 영국 성공회 교인으로 태어났지만, 우리는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왜요""교회에는 위선자들이 꽉 찼기 때문입니다. 전 그런 사람들이 싫습니다""그래요 나는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좋던데요. 나도 위선자 중의한 사람인데, 교회에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내가 불편해서 좋겠습니까 난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최용덕간사, 당신은 위선자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가는 거품을 물고 대들었을 게 뻔한 저는 범브란트 목사님께 케이.오(K.O) 어퍼컷을 한 방 후들겨 맞았습니다.-나도 위선자 중의 한 사람인데 교회에 가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아 편하고 좋습니다.-----인간의 교만과 독선을 무섭게 질타하는 한 노인의 겸허한 대답 한 마디.그 한마디가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것은, 그 노인이 바로 온 세계인의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위대한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자신을 향한, 그리고 속한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그 너그러움과 겸허함은오늘 제게 큰 충격을, 동시에 큰 위로와 격려와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앞으로 이 산골짜기에서 공부해야 할 과목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이거하나씩 하나씩 제대로 못 배워 나가면 맞아도 또 얼마나 맞아야 할까요그래도 하나님께 얻어 터지는 것은 저에게 감사제목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가 회초리를 때려가면서까지 훈련시키고 연단시켜야 할 만큼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말 한마디 제대로못하고 목발없인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 기우뚱거리면서도 히히덕 거리며신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최용덕 간사의 목과 발목을 치신 주님을 찬양하라!(아니 자기가 잘못해서 다쳐놓고는 그걸 주님께 뒤집어 씌우다니... 나쁜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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