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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우치 약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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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가 을사국치의 원흉이요 이완용이 그 주구였 다면 사내정의(데라우치 마사다케)는 경술국치의 원흉이요 윤덕영이 그 의 주구였다. 그 데라우치가 총독으로 있는 동안 끌어모아 약탈해 갔던 국보급문화재 98종 1백35점이 기증형식으로 돌아 온다는 보도가 있었 다.한말의 강제병탄에 관여했던 일본인들의 비록을 보면 병탄조약 조인이있기 열흘전에 데라우치는 윤비의 큰 아버지인 윤덕영을 은밀히 만나 병탄에 장애가 되는 8개 현안의 해결을 청탁하고 있다. 그중 큰 것이 덕수 궁(고종)측을 협박하건 회유하든간 구워 삶는 일이었다. 고종은 윤덕영 으로부터 어찌나 수모를 당했기로 다음과 같이 노발대발했다."덕영이란 자는 데라우치의 권세를 빌어 노경의 나를 이다지도 괴롭히 니왕조 5백년을 통틀어 보기드문 불신배다. 그 간사함이 혹심하여 못다 증오할 지경이다"고--. 합방후 데라우치는 윤덕영을 두고 조선 제일의 인물이라고 극찬했던 것으로 미루어 그 매국행위를 짐작할 수 있겠다.조인 전날 데라우치는 그의 심복인 아카시(명석) 경무총감과 조인 장 소인 창덕궁을 순찰하고 있는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무력 작전을 위해 서였다. 순찰도중 아카시는 우연히 순종을 만나 아이스크림을 대접받고 있는데 전염병에 대비해 위생시설을 점검하는 중이라는등 거짓말을 하고 있다. 데라우치는 옥새와 궁문의 자물쇠를 확보토록 시키고 경비를 3중 으로강화한 가운데 어전회의를 열게 했으니 합방반대가 의결되더라도 무력으로 대처할 준비를 다 해놓았던 데라우치였다. 인질로 잡아간 영친 왕 문제를 두고 엄비로부터 원색적인 공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내가 무사도에 한 치만 더 투철했거나 한 치만 더 모자랐던들 그 장 소에서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고 장담했던 오만불손한 데라우치였다.나라를 빼앗자 전리품이라도 거두어 가듯 일본 정계-군계-재계의 내로라 하는 자들은 경쟁적으로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심지어 경복궁의 동궁인 자선당이며 평양 대동강변의 애련당까지도 뜯어 가서는 자기네집 별장으로 옮겨다 지었다. 건물도 훔쳐 가는데 도자기나 서화서책 따 위야 말할나위가 없겠다. 이번에 돌아 오게 된 데라우치의 약탈재는 극 히그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완당의 서화 등 국보급이 많이 돌아온 것 은 다행한 일이지만 개별적인 민간 차원이 아닌 약탈문화재에 대한 총체 적 정책부재에 반성이 있어야만 하겠다. 노략질당하고도 묵묵히 있으니 까 합방은 합법이라느니 덕 입은게 많다느니… 치가 떨리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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