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군자
본문
중국에 양상군자(梁上君子)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도군자(盜君子)란 말이 있었다. 법도나 위신이나 인간성을 갖춘 도둑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도군자에 대해 전래된 이야기는 적지않다.어느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어찌나 가난하던지 갖고 나갈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빈손으로 나가자, 잠잔 체하고 누워 있던 주인이 `문이나 잘 닫고 가소'하고 `여기까지 오는데 신발이 닳았을테니 짚신이나 바꿔 신고 가게나' 하였다.도둑이 신발을 바꿔 신고 보니 제가 신고 온 짚신보다 더 낡아 발바닥이 땅에 닿을 지경이었다. 도둑은 너무나 주인이 가엾어서 성한 제 신발을 벗어놓고 낡은 신발을 신고 담을 넘어갔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군자다. 어느 한 도둑이 선비 집에 들어가 지묵(紙墨)을 훔쳐넣고 옆에 있는 상놈집에 침입, 마루 밑에 숨어 있었다.마침 그 집은 제삿날이라 상을 차려놓고 있었는데 제문(祭文) 쓸 줄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글깨나 했던 도둑인지라 옷을 털고 나아가 훔쳐온 지묵으로 제문을 써주었다. 그리고 `도둑 양반님 고맙습니다'하고 큰절을 받고 나온 것이다.이것이 도군자인 것이다.옛 우리 사회에서는 신분상 생업에 몰두할 수 없었음인지 가난해진 양반이 도둑질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양반 도둑들을 막는 예방책으로 문기둥에 `내외유별(內外有別)'이란 말을 써붙여 놓고 안방에 `내방(內房)'이라 써놓으면 도둑이 문전까지 왔다가 돌아가고 만다는 것이다.이것이 군자(君子)인 것이다. 도군자에게도 지켜야 할 오륜이 있었다.일당의 다른 도둑 보다 먼저 뛰어들어가는 것이 `용(勇)'이요,훔치고 나서 가장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며,훔친 물건을 고루 나눠갖는 것이 `인(仁)' 이요,우환(憂患)이 있는 집을 피하는 것이 `예(禮)'인 것이다.근대화 과정에서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증발하고 없는 터에 도군자의 오륜이 살아있을 리는 없다. 한데 일전 마산에서 20대 강도가 1백만 원 돈뭉치를 보고도 그 중에서 자기 아내 수술비에 꼭 필요한 20만 원만을 챙겨 갖고 나간 사건이 보도되었다. 다음에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서-.오랜만에 도군자의 잔영(殘影)같은 것을 어렴풋이나마 보는 것 같아 도둑질치고 덜 밉다. 진짜 밤 도둑이건 부정부패 횡령하는 낮 도둑이건, 이렇게만 한들 덜 살벌할 것을…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84/3/8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