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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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이 오라고 했다.한 신학생이 무겁게 학장실 문을 열었다. 학장실에는 차가운 눈빛만이안경 너머로 번득거릴 뿐 그 눈동자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학장은 차가우나 매우 조심스럽게 기도에 관해 말한다. 그 후 교수들은 똑같이 강의실에서 "신학생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모른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그 큰 주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한다. 그 다음에 우리의 소원과 간구를 드린다. 다음 이 기도를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간구한다"라는 기도론이 강의 되었다. 고개를 떨군 채 학장실에 불려갔던 신학생은 입술을 물며 새삼스레 기도론을 듣고 있다.파이프 오르간이 좋은 음향 시설을 타고 모든 예배 드리는 이의 마음을 움켜잡고, 신학생들과 교수들이 예배를 여는 순서를 맞이하며 고개숙인다. 짧지 않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어 본 검고 긴 천의 가운을 걸친 채 기도자는 천천히 나와 탄식 같은 소리를 내었다."기도합시다."모두가 눈을 감는 것이 보인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것이 뚜렸이 보였다. 기도자의 눈만이 감기지 않았고, 왼손으로 마이크를 움켜쥐고 입을 열려 할 때 가슴은 격렬하게 고동치고 어느새 뜨거운 기운이목젖을 막는다."주여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뜻을 더 이상 우리가 이 땅에서 실현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 힘들어서 못해먹겠읍니다. 우리 보고회개하라고요 우리가 죄인이라고요 정말 울며 불며 회개해야 할 것은당신이요, 죄인 중의 죄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 보고 하라 말고 당신이 한번 이 땅에서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그래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해요. 그런 당신은 무엇을 했읍니까 독재자의 총칼이 백주 대낮에 수천 명을 학살하는 광주에서 당신은 무엇을 했냐고요 학교를 보세요. 저 악의 무리들을 뚫고 당신을 믿지 않는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도서관 유리창을 깨고 나올 때 당신이 선택했다는 우리도 아무 것 못했지만 당신은 또 무엇을 했는가요. 우리를 시키지 말고 직접 해보라니까요.정말 회개해야 할 것은 당신의 실패작인 우리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않는 당신, 바로 당신 야훼 하나님입니다."점점 커지는 울부짖음이었다. 경건하게 고개숙여 눈을 뜨지 못한 채동요를 나타내는 신학생들과 맨 앞 줄에서 당황하는 교수들의 큰 호흡에기침소리가 들린다. 그 동요는 깨지고 한 신학생이 뒷 줄에서 일어선다.그리고 강당 문을 열며 나가려다, 기도하는 친구를 돌아본다. 먼 거리지만 일그러진 얼굴에 젖은 눈빛이 보였다. 그 눈빛을 커다란 강당 문이닫히며 삼켜버렸을 때, 이미 수십 명은 고개를 들고 강단을 보고 있었다."그래요 우리는 사실 당신의 선택을 받은 무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당신의 아들 예수처럼 살다 그렇게 죽기 위해 여기 있는게 아니예요. 사실은 이렇게 예수의 처참한 죽음을 예배드리며 팔아먹기 위해, 또 예수의 고통스런 삶과 당신의 이야기를 강의하며 팔아먹고 살기 위한 무리들이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신학을, 신앙을 선택한 것 뿐이라고요. 그래도 고맙지요. 당신과 예수가 있어서 그것으로 여러 사람이 2천년 동안 먹고 살게 해주시니."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을 떳다. 그리고 앞을 응시한다. 이제 그 눈빛들은 한 가지 색깔이 아니었다. 또 다른 분노와 노여움이있었고, 결코동의 할 수 없는 반발이 있었고, 저걸 그만두게 해야 하는데 하는 안절부절이 있었다."불쌍한 하나님, 우리 같은 것을 앞세워 하나님나라를 만들겠다는 하나님, 당신이 그래도 절 사랑하신다면 이 길을 가다 변절하기 바로 직전에 죽여주소서. 당신에게 간구하는 당신의 사람은 이 길을 가다 지쳐 쓰러져 돌아서려 할 때, 그 직전에 죽여주는 잔인한 축복을 허락하소서.그렇게 사랑하셔서 당신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기도자의 목젖에 젖어 새어나온 "아멘"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나오건만 함께 기도를 시작한 신학생들과 교수들은 아무도 "아멘" 하지 않았다.그래 차라리 해프닝이라고 하자. 그 기도 해프닝 이후 연세대 신과대학 신학생 예배시간에 3학년생들이 학번 순서로 대표 기도해오던 관례는없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학번순이 아니라 학점순에 따라서, 또 그 중에서도 기도하는 법을 알만한 학생을 학생과에서 잘 선정하여서 결정하였다.기도 해프닝이 있고 신중하게 선정된 학생들이 기도를 맡게 되었을 때한 1학년 학생이 학생과에 가서 찬양을 드리겠다고 신청하여, 기타 들고노래를 불렀다."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혀짤린 하나님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나님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그래도 당신은 하나 뿐인 늙으신 아버지하나님 당신은 죽어 버렸나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시나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나님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그래도 당신은 하나 뿐인민중의 아버지"그것은 1983년이었다.이 노래에서 나오는 고백들은 '81년부터 '83년까지, '80년 광주 민중을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한 악의 무리들이 제5공화국의 흡혈귀 같은 얼굴을 드러내고, 학원에 마저 수백명의 사복경찰과 페퍼포그차를 캠퍼스잔디 위에 깔아 놓고 압제의 아성을 드높일 때, 한 줄 한 줄 풀어져 나왔다.맨 마지막으로 나온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늙으신 아버지였다. 그것이작곡자가 붙인 마지막 고백이다. 원래는 늙으신 아버지가 두번 반복되며끝난다."형, 늙으신 아버지 한 번 하고 마지막은 민중의 아버지야, 민중의아버지."제일 무서워 하던 후배 녀석이 툭 쏘아뱉었다. 한 학년 아래인 제주도서 올라왔다는 후배, 광주 항쟁과 학살보다 먼저인 4.3 제주 민중 항쟁의 뿌리를 곱씹으며, 누가 보아도 기독인이 아니고 신학생도 아닌 그 무지막지한 녀석의 한마디에 맥없이 동의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술에 만신창이가 되면 민중의 아버지를 부르곤 했다.늙으신 아버지땀 흘리시며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노동하시는 건장한 아버지, 울부짖는 히브리 민중들과 함께 히브리 민중 해방과 민족 해방을 위해 에집트 제국주의와 직접 열가지 재앙이란 폭력투쟁을 전개하며 지도하시는 아버지, 예언자들을 불러 일으키며, 그 입에 칼 같은 폭로와 용강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반민중적, 반민족적 무리들에 대한 과감한 선전, 선동 활동을 펼치시는 아버지, 그랬던 아버지는 늙으셨다. 아주 늙어버리셨다."아버지 이것도 해주세요, 저것도 사주세요.""아버지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어요. 도대체 아버지는 지금무엇을 하는 거예요."아주 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 아버지에게 그랬다. 이어 머리가 커지면서 아버지에게 대꾸하고, 대들며, 싸우는 청년기를 지낸다. 모든 것을다 해주었던 거대한 아버지는 오히려 외소하고 무능력해 보이기까지 하고 때론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들어가고 더 철이들어 우리가 노동하며, 애 키울 때가 되면 이미 늙어지고, 약해지며, 외로운 아버지를 더욱 깊게 사랑하게 되고, 작은 기쁨이라도 드리려 한다. 이제는우리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아버지를 모시려 한다.한평생 수고하시고, 이제는 늙고 약해지신 아버지에게 "무엇을 해달라하는가 무엇을 하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늙고 무기력해지셨으니 당신은 필요 없소, 죽으시오" 할것인가대답 없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 야훼는 이미 당신의 뜻을 성서가 기록되었던 역사 만큼이나 오랫동안 자신의 뜻을 밝히고, 또 밝히셨다. 성서를 읽다 보면 지루할 정도로 반복하고, 반복하셨다. 그렇다. 늙으신 아버지를 우리가 이제는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그 뜻을 우리는춤추며, 노래하고, 실현해가야 한다.그렇게 모든 신학생을 대표하여 올린 기도 이후로 더욱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이 가깝게 다가오면서 "해달라. 해주세요. 뭐했냐"라는 어린 아이와 같은 기도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그 해 겨울 12월 24일 밤 부모님 입장에서는 철없는 아이의 가출이요,한 사람으로서는 출가가 있었다. 낙골의 산등성이 나무 십자가가 걸린교회를 집삼아 올랐다."아버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구전가요 <민중의 아버지> 를 고민하며, 결단하고, 투쟁하는 벗들이알고 부르는 모습을 간간이 보게 된다. 낙골 공동체속에서도 민중의 아버지는 함께 부르는 한 고백이었다. 민중의 아버지를 부르면 부를수록민중의 아버지를 부르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된다.늙으신 아버지의 뜻과 혼."주의 성령이 임하사 우리를 부르시어이 땅의 역사에 전위로 보내시사억눌린 자에게 해방을묶인 자에게 자유를눈먼 자에게 진리를 선포하리이 붉은 산하에 민중의 붉은 피 울부짖어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사랑은투쟁이라민중 민주주의 나라민중 민주주의 나라하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감히 <주기도문> 이라 제목을 붙였다. 이 노래를, 이 고백을 읊조리며울대 높여 부를 때 이제 그 신학생은 신학생이 아니었고, 낙골 공동체의꾸부정한 전도사는 전도사가 아니었다. 오늘도 새벽이면 일어나 아들을주님의 종으로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한 어머니에게 그 아들은 기독교인이 아닌것 만 같다.<주기도문>은 많은 사람이 알지도 못하고, 함께 부르지도 않는다. 어떤 친구는 교조적이라 안 좋다 하고, 어떤 이는 노래가 소위 '피디'라서안 좋다 하고, 어떤 이는 비과학적이라서, 또 너무 과격해서, 선율이 안좋아서…... 비기독교적이라서, 공통적으로는 안 좋다 한다.전위!전위!그렇다. 전위는 한 개인의 희망과 결의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역사적 실제이고, 조직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당이다, 당. 이시대에 전위가 있다면 그들은 이 주기도문을 부를리 없다.우습지만 주기도문은 전위가 아니라면 부를 수 없고, 또 전위라면 부르지 않을 노래이다. 그것은 노래의 좌절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장 큰좌절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은 이 노래를 부른다. 늙으신 아버지의 뜻과 혼을 되새기며."얘야, 난 이제 너에게 나를 위해선 바랄게 없단다. 다만 네가 무슨일을 해도 주님의 일을 하면 소원이 없겠다.""어머니, 전 주님의 일을 하는 거예요. 만약 예수 안 만나고, 성서안 읽고, 하나님 몰랐으면 이렇게 신세 조지진 않았을 꺼예요.""아니야, 넌 세상 이념과 사상 따라 일하는게지.""그래요. 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민족이 해방되고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주의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이라 믿지요.""예수님이 언제 너처럼 투쟁하데""어머니는 예수 참 훌륭하고 좋지요 만약 그 예수가 어머니 아들이었어 봐요. 좋겠나. 어머니는 예수가 당신 아들이었어도 목사 안 되고,신학자 안 되니 하나님 일 안 한다 했을지 모르지요. 참내, 교회에서 매주 거룩하게 예수를 예배드리는 어머니들에게 '당신의 아들이 예수처럼살다 예수처럼 사형 선고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면 어떨까요' 해봐요. 아멘 할 사람 누가 있겠어요"가출한 아들이 가금 집에 들려 저녁 식사를 마주할 때 수 없이 되풀이되는 이야기가이 대목에 이르면"야이 자식아, 저게 꼭 말문 막히면 예수님을 끌어들여. 얌마 너랑예수님이랑 무슨 상관 있냐 짜식아 그럼 예수님 처럼 장가도 가지 말고너부터 서른 세 살에 죽지 그러냐"독설가이신 아버지가 언성을 높인다."짜식이 여자는 좋아해서 쉬지 않고 연애하는 놈이 무슨.""아버지, 아 만약 천국이 있다면 누가 갈지 어떻게 알아요""야 임마, 천국 좋아하네. 천국 너나 가라. 마 너 없는 데가 나의 천국이야. 제발 죽어선 다시 만나지 말자. 아무리 천국이라도 너랑 같이있으면 그게 지옥이니깐.""하여간 전 기독인이에요. 그리고 이 당에서 하나님나라 일하는 것은민족 해방 민중 민주주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예요.""기독인 좋아하고 있네. 여보 저 자식 순 교활한 궤변가라니까. 얌마사랑 나팔 불지 말고 어느날 불쑥 와서 '아바이 동무 자아비판 하슈' 하지나 마라."이 대목에서 어떻게 한마디를 던지냐에 따라 그 날 밥상의 운명이 결정 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대화는 수없이 되풀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격렬하던 대화가 열 받아 안경이 깨지고 밥상이 들썩이는 흥분이 마침내"나가 임마.""안녕히 계세요."아버지와 아들은 인연을 끊을 듯한 그런 식의 논쟁이 서로를 변화시키지못할 뿐 아니라, 서로의 건강과 행복에도 아무 도움이 안되기에 희화화시키는 법을 배워갔다."헛소리 나불대지 말고 밥이나 먹고, 명이나 길어라."늙어가시는 아버지, 어느새 새롭게 "할아버지"란 이름을 얻으시고 만것처럼.너무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수고하시다그렇게 늙어버리고만 아버님그래서 뜻으로혼으로 살아계신 아버님우리가 여기 있읍니다.우리가 하나님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민족 해방과 민중 민주주의의 나라를위하여나아가는 길고 긴 날에하늘의 뜻, 역사의 뜻을나 몰라라며 지쳐 도망치려는 때우리를 치소서, 죽이소서그리하여 힘차게 그 길로 진군하는 이들의사랑과 투혼 속에부활시키는 잔인한 축복을 내리소서아-버-님우리의 산 제사를 기뻐하소서.(김해철/전국빈민연합 회원)이 글은 한국신학연구소 간행 월간'살림'지에 있던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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