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눈물의 한국학

본문

서울의 서소문(西小門) 밖에 돌다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다리 이름이 `눈물 다리'로 속칭되었다. 그 같은 슬픈 이름이 붙은 연유는 이렇다. 그 다리를 건너면 숱한 천주교 신도들이 참형을 당했던 서소문 밖 형장(刑場)에 이른다. 형이 집행되는 동안은 가족이건 친지건 이 다리 이상은 접근하지 못하게 돼 있었다.또한 형이 진행되는 동안 울음 소리나 통곡 소리를 내면 그 영혼이 원령(怨靈)이 된다는 속신(俗信)이 있어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목놓아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그래서 눈물을 억제해야만 했던 처참한 인간 상황(人間 狀況)의 현장이다. 벅차게 솟아나오는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했기 때문인지, 그 `눈물 다리'를 누교(淚橋)라 않고 누교로 표기했던 것이다.누교(淚橋)나 누교나 발음도 같고 뜻도 같다. 하지만 `누(淚)'는 마냥 흘려버리는 눈물이요, `누'는 눈 가장자리에 괴어만 두고 흘려서는 안 되는 눈물이다. 눈물과 인연이 많았던 민족이라서 그런지 같은 눈물이라도 일직선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체(涕)'라 했고, 갈라져 흐르되 얼굴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눈물을 `사(泗)'라 했으며, 펑펑 흘러내린 눈물일 때 `누(淚)'라 했다. 콧물과 더불어 흘리는 눈물은 `이'고-.KAL기에 희생된 유가족의 슬픔은 국적이나 인종을 초월해서 더하고 덜할 것이 없을 텐데, 위령제날 제단에 헌화할 때 흘리는 눈물은 나라에 따라 다름을 볼 수 있었다. 백인(白人) 유가족들의 눈물은 대체로 `누'였고, 동남아 계통 유가족들의 눈물은 `사(泗)'였으며, 우리 한국인의 눈물은 `누(淚)'였다. 인간 감정의 생리적 분비물인 눈물에도 민족에 따른 문화적 후천성이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사랑하는 혈연이나 연인과 사별(死別) 또는 이별(離別)하는 서양 영화의 슬픈 장면에서도 `누'가 고작이요, 기껏해야 `체(涕)' 이상 눈물 흘리는 것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 `누'가 한결 인상적이게 한다.한데 심청(沈淸)이 인당수에 팔려갈 때 도화동(桃花洞) 동네 사람이 흘린 눈물은 각기 눈물 주머니에 한 말 씩 밖에 없는 눈물을 반 말 씩이나 쏟고 있다. 곧 소설이건 시건 영화건 유행가건 텔레비전이건 `누(淚)'로 얼룩진다. 이산가족의 만남에서도 반 말 이상의 눈물을 흘려온 우리인데도 흘릴 눈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제각기 뿔뿔이 떠나 살려는 원심적(遠心的) 서양 사람과는 달리 무한히 떠나 살기를 거부하는 구심적(求心的) 우리 한국인에게는 이산 애수가 가장 큰 정서 인자(情緖 因子)가 돼 있으며, 그래서 떠나가는 사람을 두고는 그토록 눈물이 솟구쳐 나오는지도 모르겠다.83/9/10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42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