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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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흘러내려 입 가장자리로 스며들면 약간 시클하고 짭짤한 투명한 액체, 그것이 눈물이다. 리처드슨의 대하소설 <파멜라>에서 동명의 슬픈 여주인공이 자신의 흐르는 눈물 맛으로 그것이 시큼하면 사랑의 눈물이요, 짭짤하면 슬픔의 눈물로 분간한다는 독백 장면이 나온다. 정서의 변화에 따라 눈물의 화학 구조가 달라진다면 정말 눈물은 멋장이다.깜박일 때마다 조금씩 분비되어 안구를 적시고 먼지를 씻어내라는 것이 조물주가 눈물에게 내려준 역할이다. 가느다란 누선은 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하루 1~1.2그램의 눈물을 자아내기에도 벅찬데 왜 슬플 때는 그토록 걷잡을 수 없이 많은 분량의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우리 옛 어른들이 말하듯이 눈 아래 눈물보가 있는데 조물주가 이 눈물보를 막는 둑을 쌓을 때 마침 어머니가 죽어 울며불며 엉성하게 쌓았기에 잘 터져 흐른다는 편이 실감난다.젊었을 때 극장에 가 앉아 있으면 곁에나 뒤에서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어 하는 부녀자를 곧잘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세상 살기 각박하여 구두창이 구멍 나고 부러진 안경테를 실로 걸어 매고도 경련이 나도록 세상 살 맛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불 꺼진 항구의 고동 소리며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운운한 유행가 가락에도 신세를 투영시키면 눈물보 둑이 터질락말락 했던 것이다. 한데 요즘은 오랜 가뭄 끝에 눈물보가 말라 바닥이 거북 등처럼 갈라졌는지 눈물을 볼 수 없다. 드라마에서도 돼지 깔대청처럼 소리로만 운다. 동조를 요구하는 울음인 것 같은데 보는 사람은 오히려 웃는 그런 이상한 울음밖에 울지 못한다. 옛날 아이들은 꾸짖으면 잘못을 뉘우치고 우는 체라도 했다. 옛날 여인들은 울음으로 가장 강력하게 자신을 대변했었다. 한데 쌍꺼풀 수술을 할 때 눈물보를 밀어버린 걸까.고향 나라인 폴란드를 떠나온 교황이 손등으로 눈물을 막고 울었다. 눈물 가뭄이라선지 그 교황의 눈물이 별나게 인상적이다. 압박받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의 연민의 눈물인지, 그보다 심오한 신앙적인 눈물인지는 알 수 없다. 행여 순수한 인간 본연에서 울 수 없게 된 각박한 현실, 그 현실을 슬퍼하는 신(神)의 울음을 대행해서 흘린 눈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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