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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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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적어도 내가 철이 들기까지는 나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너에게 물려줄 유산도 없지만 있어도 물려주지 않을게다. 네 인생은네가 책임져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지 아버지라면 으례히 자식의 뒷바라지를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중학생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의 결심은 단호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해는 안되었지만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나는 한동안 아버지의 나에 대한 그런 태도에 대해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다니던 공립중학교의 과학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이셨으면서도 아버지께선 자식인 나의 성적표에 대해 일체 무관심하셨습니다. 한번도 "성적표 좀 보자"라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왜 관심이야 없으셨겠습니까 어떤 때엔 식탁에서 나를 향해 "이번엔 잘했더구나"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런 때면 나는 머리털이 곤두서곤 했습니다. 이미 학교에서 나의 성적을알아보고 계신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성적이 곤두박질 쳤을 때도 아버지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그 땐 좋았습니다. 그저 아버지는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살아야 하는거야"라고 하실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노이로제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고등학교는 연합고사를 치루어 대구에서 혼자 유학(遊學)생활을 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2월에 이불보따리 하나를 메시고는 나를 데리고 포항에서 대구로올라와, 하숙집 하나를 잡아주시곤 휑하니 가 버리셨습니다. 그때도 남기신 말씀은 "너도 이제 클대로 컸다.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인데 클대로 다 컸다고 그러나 그 말씀에 내가 동의하든 하지않든 그것은 아버지의 분명한 선언이었습니다.역시 아버지는 아들을 멀리 타향에 유학까지 보내놓고서도 한번도 "성적표좀 보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것은 고사하고라도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올라와 보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두고 '아버지는 나에 대해 무관심하시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결론을 내리곤 했습니다.그러나 아버지의 확고한 태도는 삶에 대한 나의 자세를 전혀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어릴때부터 사내답지 못한 전형적인 약골이었습니다. 국민학교생활기록부엔 어김없이 "...하나, 남아다운 기백이 부족함"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계집애 같음'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국어시간엔 일어나서 책을 읽다가도 석줄을못 읽고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곤 했습니다. 그런 샌님이 이제 홀로 먼 이방에 내 던져진 것입니다.나는 홀로서기에 적응해 나가야 했습니다. 나는 집에서 타오는 생활비를반으로 줄였습니다. 전셋방을 전전해야 하고, 대학다니는 큰 누님의 학비도 부담하셔야 하는 박봉의 아버지와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숙에서 자취로 생활방식을 바꾸었씁니다. 때론 예상에 없는지출 항목이 생겨 생활비가 바닥이 나도 절대 집으로 돈을 받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신명여고 들어가는 입구 (동산호텔 앞)쪽 빈 집에 홀로 살 땐 밤 10시쯤이면 골목의 포장마차 아저씨에게서 오뎅(어묵)팔고 남은 국물을 얻어왔는데그것이 유일한 반찬이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야 한다는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철이 들어가면서 말입니다. 후일, 내가 어렵게 살았다는 소식을 들으신 친척들이 "뭣때문에 일부러 그렇게사냐 그게 무슨 효도인줄 알아 도리어 부모님 욕되게 하는 것이야!"라고 나무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낄낄대고 웃었습니다. "아뇨. 아뇨. 이건 순전히 제가 택한 것이기 때문에 제 책임인걸요!" 진심이었습니다.나는 대학교로 진학할때도 전적으로 나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했습니다. 주위에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내 몫이었습니다. 남이 대신 살아 줄 수없는 나의 인생을 내 힘으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치르고 발표를보던 날, 나는 포항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 저에요. 저...대학에 갑니다. 합격했어요." 아버지께서 놀라움과 감격어린 음성으로 "오...그래 야 -축하한다! 그래 무슨과냐"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으신 이후에야 학과를물으셨던 아버지이십니다. "네! 건축과입니다." "어느 대학이지" "아버지! 대구에 있기로 했어요. 건축과가 있는 Y대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웃었습니다. 아버지께선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잘해라!"'잘해라!' 나는 아버지의 그 따뜻하신 음성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대학에 들어간 이후 나는 집에서 타오는 용돈을 대폭 줄였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며 유치원 관리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때엔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열 한개나 되었습니다. 대학 4학년 2학기엔 친구랑 둘이서 내 방세를 빼내어 학교정문앞 건물 3층 50평을 세내어 아카데미 하우스라는 크리스챤 문화공간을 시작했는데...쫄딱 망했습니다. 돈도 다 날리고 친구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 또한 나 자신의 것이었습니다.많은 세월이 지나고 지금 나의 아내가 된 자매를 만났으며, 처음으로 양가 가족들이 마주 앉았을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양쪽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대신 저희들의 이 요청만큼은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결혼비용은 일체 저희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결혼이란 완전한 자립을의미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두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하는 첫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선 그저 빙긋이 웃으셨습니다. 우리 두사람 다 모아둔 재정이없었으므로 두사람 합해서 300만원으로 결혼식을 치루고 살림을 장만했습니다.물론 장농은 중고로 마련했습니다. "그래도 신혼인데..."라며 신경질을 내는 주위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우리 예산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 다 자란 성인입니다. 우리 두사람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사무실을 개조해서 신혼방을 꾸밀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택한 우리의 인생입니다.지난해, 아버지께서 환갑을 맞으셨습니다. 나는 그날 밤 아버지 옆에 다가 앉아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 기억하십니까 제가 중학생때 저에게'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라'하셨던 말씀! 그 말씀은 아버님께서 제게 물려주신최대의 유산입니다. 언제나 그 말씀이 저의 삶의 중요한 고비때마다 생각나곤했습니다.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선 과거 너무 어렵게 사실 때 나에 대해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는데 나는 진심으로 펄쩍 뛰었습니다. "아버님! 무슨 말씀을요! 저는 오히려 감사드리고 있는데요""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라!"아버지의 이 말씀은 나에게 새로운 삶의 자세를 심어주었습니다."나는 너에게 물려줄 유산도 없지만 있어도 물려주지 않겠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야속하게 여겨지던 말씀이 지금은 지극히 합당하신 말씀으로 제 속에서인정이 됩니다.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은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우리 자신의 인생입니다. 우리 삶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쉰이 다 되어가시는 나의 삼촌 한분은 지금까지도 할아버지와 다른 큰 삼촌들을 원망하시면서 '지금의 인생이 이 모양인 것은 다 아버지와 형님들 때문이다'라며 내왕조차 않으십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어린아이때에나 하는 것입니다.나는 십대인 여러분들께 감히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 얼마나 자랑스럽냐 하는 뻐기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치셨던 그 삶의 방식들을 여러분께도 요구하고 싶습니다.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가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 스스로의 인생을 자신이 살아가야할 전환점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여러분이 책임져야 합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모님께 "더 이상 내 인생에 대해이러쿵 저러쿵 간섭하지 마십시오. 내 인생 내 방식대로 살겠습니다"라는 선언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집을 뛰쳐나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재정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분명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든 받지 않든, 부모님의 요구에 끌려가든 끌려가지 않든,일단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내린 결정에 대해선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결정은 참으로 신중해야 합니다. 무책임한 결정에 대한 모든 댓가도 결국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고교입시에 대한 방향, 대학진학 혹은 취업, 대학 학과에 대한 선택...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앞에서 여러분은 절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나는, '일단 대학 들어가고 보자! 무슨 수가 생기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대학원서를 쑤셔박는 바보·멍청이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두고보십시오. 그 장난같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들로 인해 그들은 두고두고 그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지옥같은 대학 생활을 꾸역꾸역하며 그 소중한 젊음의 세월을 허송하는 '잘못 선택한 대학생'들을 보면 몽둥이질을 해서라도 나무라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훗날 나이가 들어서도 매사의 결정이 즉흥적입니다. 나이가 됐으니 '대충 대충' 결혼해 버립니다.후일 돌이킬 수 있는 결정이 있는가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정도 있습니다. 결혼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잘못 선택한 결혼은 자신 뿐만 아니라 나아가배우자, 자녀들에게 까지 영원한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 책임도 본인이 져야합니다.고등학생 여러분께는 신신당부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립을 의미하는'성인'직전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은 '자립'을 준비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여러분은 이 중요한 시기를 헛되이 보내서는 안됩니다. 나는 오늘의 십대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질 만한 준비도안되었으면서 '무책임하기 짝이없는' 결정들을 아무렇게나 내리는 것을 보며탄식하곤 합니다. ㅌ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은 이성간의 만남입니다. 십대들이 빠져드는 '사랑'은 아름답고 깨끗한 것 처럼 보이나 실상은 '성숙된 사람으로 나누게 될 사랑'에 비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표피적이고 감상적인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미숙을 스스로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이성간의 만남은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의 그 만남에 대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왜 함부로 여러분의 그 귀한 육체와 마음을 아무렇게나 방치합니까 아직은 일부이긴 하지만 만나는 상대에게 몸을 맡기는 고교생들도 많다는 소식을알고 있습니다. 바보짓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습니까여러분은 무한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참으로 소중한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을 잘 간직해야 하며, 정말 당신을 영원히 책임질 수 있고 당신의 그 귀중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소중한 분에게 자신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십대에는 결코 그러한 인격적 성숙이 이루어지지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대인 여러분이 다다갈 수 있는 '이성에 대한거리'는 제한되어야 합니다. 상대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거리'를 허무는 사람은 결국 평생을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자신과상대에게 영원한 상처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친구간의 만남도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여러분의 인생에 끼치게 될 것이므로신중해야 합니다.졸업후의 진로문제는 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아무렇게나대학에 가지 마십시오. 아직도 막판까지 눈치를 보며 우왕자왕하다가 마감 몇분전에 아무 창구에나 원서를 집어넣는 '자기 인생에 대해 그러첨 무책임한 바보'들이 수십만명이 있다니 이 나라가 망할 징조입니다. 호소합니다. 여러분은제발 '그 짓거리'에 동참하지 마십시오. 목적도 목표도 없는 인생들이 걸어가는길은 너무나도 뻔한 것입니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가 여러분에게 재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좌충우돌하기엔 우리의 생애가 너무나 짧습니다. 저는 권고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여러분 인생에 대한 최종 방향과 목표는 '혼자일때' 확정하셔야 합니다. 결혼이전에 모든 최종결정을 마치시라는 말씀입니다.가족들까지 여러분이 만든 고통에 허덕이게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위해선 우리 모두의 10대∼20대 초반의 시기는 참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언제 빈둥거리고 탕진해도 될 시간이 우리에게 있겠습니까 대학에 들어가서도부모님의 피땀어린 돈을 타내서 흥청망청 먹고마시며 놀고 죽어라고 공부는안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나는 제안합니다. 이 땅의 우리 젊은이들도 나이 20세가 되면 부모님으로부터'재정자립'을 선언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도 손을 끊었으면 좋겠습니다.말이 좋아 '성인'이지 나이 스물이 넘어도 정신적인 유아들이 이 나라에 가득하다면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12월 중순의 일간지 기사중 어느 일본 소녀의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그 소녀가 베트남에 갔을때 어느 가난한 어린아이가 불쌍해서 자기가 가진노트와 연필을 주었더니 그 아이의 아버지가 달려와 소녀를 나무라며 "도로가져가시오. 나는 내 아들에게 땀흘려 일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오"라고 단호히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 땅의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중일까요 적당히 요령만 부리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 십대여러분!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우리 선생님이 우리에게 설령 그런 것을 가르치시고 본을 보이셨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사고에 대해 과감히 'NO'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가 됐으면 이제 직접노동의 보람과 댓가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는대학원생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큰 섬유회사의 사장입니다. 참 멋있는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야하는 시기가 바로 20대입니다. 아니 이미 십대, 그 이전부터 우리는 그 분명한 가치관을 소유해야 합니다.남자든 여자든 결혼은 '두사람만의 힘으로'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이치에 맞기 때문입니다.저와 아내가 부모님의 도움없이 300만원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우리보다 더 지독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대구 동일교회의 조돈제 목사님께선 교회내 청년들에게 '결혼비용 100만원 넘으면 주례 안해준다'는 원칙을 선언해놓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얼마전까진 50만원이었답니다. 어떤 이들은빈정댈지도 모릅니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결혼하느냐" 그러나 지금도 그 교회의 청년들의 반 정도는 실제로 그렇게 검소하게 결혼식을 치루고 있습니다.삶에 대한 그런 자세야말로 참으로 멋진 것입니다.그렇게까진 못한다면, 부모님께 신세나 안 지는 결혼식이라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십대 여러분은 훗날 부모님들께서 여러분의 결혼비용을 거들려고 하실 때 벌컥 화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벌써 스물이 넘었는데 저희 인생을 저희 스스로 일궈나갈 능력도 없는 줄 아세요 저희를 무시하는 것비까"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는데도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좀 실컷 맞아야 합니다. 특히 자매들은 제발 부모님들께 '막판 불효'한건 크게 안하고 조용히 시집갔으면 좋겠습니다. 밥그릇 두개만 들고와도 기쁨으로 안아주고 사랑해 주는 좋은 신랑 만나서 말입니다. 기둥뿌리 한 두개흔들고 뽑아서 시집간 여인들이 아무리 복되게 잘 산들 부모님들께 남긴 아픔과 시름의 큰 빚은 어떻게 갚을 것입니까 우리의 부모님들은 우리를 낳아서20년동안이나 먹이시고 입혀주신 것만으로도 그 은혜를 다 못갚을 분들이십니다. 그런데 거기다 또 무엇을 우리가 더 요구한단 말입니까 수치스럽게 말입니다. 혹 우리들에게 건네시는 부모님들의 '도움'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받을 땐 송구스러워 자신들의 가슴을 치며 받아야 할것입니다. 그것은 죄다 우리가 누구에겐가 다시 갚아야 할 빚이기 때문입니다."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라!"그것은 진리입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인생또한 우리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나,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이 말씀의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우리의 이 땅에서의 인생을 살 순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인생이 끝난 그 이후입니다. 하나님께선 "너희멋대로 살아도 좋다. 그러나 그 이후, 나는 너희의 이땅에서의 삶에 대해 꼭평가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난 이후의 심판은 우리 인생의 영원한 주인이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담판입니다. 그 심판의 기준은 주인되시는 하나님과 우리, 이웃들과의 우리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원수관계를 맺은 인생들의 영원은 너무나 끔찍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인생의 결론은 '영원한 죽음'(로마서 6:21)일 따름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그 큰 죄악을 용서해 주시겠다는 증거이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그 영혼속에 모신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다시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요한1:12)이 두갈래 길의 선택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그것은 다른 이들이 대신 선택해 줄 수 없는, 참으로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선택에 대한 전적인 책임 역시 우리 자신이 져야합니다. 예외없이!저는 십대일 때에 이 중요한 갈림길에 직면했었고, 참으로 심사숙고 끝에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 (Lord, 主)으로 모셔들이는 쪽을 과감히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백번 천번 잘 한 것이었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제 인생에 모신 이후 저의 인생은 놀랍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을 만난 이후의 십수년간의 지난 삶을 되돌아 보는 것은 저에게가장 큰 감격과 기쁨을 용솟음치게 하는 신나는 일입니다.나는 그분을 만난 이후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저는 제 인생은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진리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저는당신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신지 아십니까"그래 잘했다! 그러나 지금부턴 아니다. 너의 인생은 이후로 내가 책임진다!내가!"저의 인생을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구요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심지어는 제가 실수하고 잘못 선택한 것까지도뒷 감당을 하시겠다니 말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 유익)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지나온 십여년의 삶을 돌아보니 참으로 주님께서 친히 돌보셨다는 생생한 증거들이 온통 그 길에 가득 널려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영원의 그나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조차도 저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신실하고 멋있게 살아가는 십대들도 복된 이들이지만, 영원한 인생까지 책임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심대들은 천배, 만배 더 복된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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