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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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씨눈 벗겨질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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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씨눈 벗겨질 때에세상은 내 앞에서 닫혀 있었다. 열려 있는 아무 것도 없었다. 부모 형제도 내게는 삭막한 존재였고, 친구도 막연했다.대학 공부도 시들했고 미래는 더욱 불확실했다. 스스로 달랠수 있는 길은, 오직 글을 쓰는 것 한 가지 뿐이었다.세상으로부터는 끊임없이 움츠러들었다. 작가가 되려고 했던것은, 작가라는 이름 속으로 나를 숨기고 싶어서였다. 상처투성이의 나, 열등감으로 깊게 병든 나를 감출 수 있는 길은, 그길 한 가지뿐이라고 믿었다.이화 여대 재학 4년 동안, 나는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손길에 나를 맡기는 대신, 나를 숨기고 감출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끝없이 찾아 헤맸다. 작가가 되었으나, 그것은 헛된 이름이었다. 영혼의 눈은 맹인이었고, 마음의 문은 닫혀 있었으니,나의 인식의 세계는 황무지였다.나는 분명 사람이었으면서도, 내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나의값을 알 길이 없었다. 창조의 섭리와 존재의 의미,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나의 영혼이 도통 눈멀고 귀먹었던 주제에, 고집스럽게 눈을캄캄하게 감고 귀를 단단히 틀어막아, 주께서 부르시는 음성을들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1978년 5월 28일은 주일. 시골 신작로 길을 홀로 운전하여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가던 중, 과속으로 달려오는 버스를 피하려다가, 내 차체는 옆에 있는 고목나무를 들이받으며 박살이났다. 입으로 피를 쏟으며 운전대에 고꾸라졌으나, 정신은 깨끗했다.수술 다섯 시간 반. 오래 전부터 나를 아껴 주시던 허경발박사께서 눈물겨운 수고로 집도해 주신 뒤, 보호자들에게 들려준 말씀은 지극히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의학적인 방법으로는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재수술을 하게 될 일이 생길는지도 모르니,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그러한 상황에서 재수술이란 죽음을 의미했다. 병실로는 검은 리본이 달린 조화(弔花)가 배달되어 왔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소문이 난 것이다.사망이 겹겹으로 나를 두르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왔으나,생존 그 자체가 내게는 공포였다. 공포는 사망이었다. 숨을 쉬고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으나, 공포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고,그것은 삶의 의미를 새까맣게 지워 놓았다.수술 후 십여 일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문득 예수님을 떠올렸다.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 위에서 창에 허리 상하시고 물과피를 쏟으신 그분을.십자가 위에서 창에 허리 상하시고,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님. "오, 예수님. 오늘의 나의 이 처참한 모습은 나의 죄로 인함이거니와, 오 주여, 이 사건을 통하여 주님을 뵈옵게 하시니,감사합니다. 옆구리로 물을 쏟으시며, 창에 허리 상하시며,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그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도 못했던, 내 마음속의 기도였다.그러나, 그 기도와 겹쳐지며, 내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있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나는 그 말씀이, 이사야 41장 10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분명한 것은, 내가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그 순간, 나의 영혼이 그 말씀을 들은 것이다. 함께 한 것이다.그것은 순간이나 찰나라는 말로는 대신 할 수 없고, 기적이라거나 신비라는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이 내게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존재의 변화였다. 어둠이 변하여 광명이 되고,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된 존재의 변화였다. 공포가 걷혔다.있었던 것 같지도 않았다.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의 씨눈을 그렇게 벗겨 주시고, 믿음의눈으로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기적을 보여 주셨다. 주께 대한 내 믿음과 사랑의 순례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나, 그 후의 나의 믿음은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민족과 다를 것이 없었다. 때마다 넘어지고 수렁에 빠져 허덕이며, 위급할 때는 외쳐 주님을 찾고, 위험을 모면하면 또 해이해지고는했다.깨달음도 더디고, 행하기에는 더욱 더딘 나를, 주께서는 그때마다 다시 일으켜 주시고 손잡아 주셨다. 미미한 깨달음과굼뜬 행함도 대견타 하시면서 나와 동행해 주고 계셨다.이 땅에서 안고 있는 연약함이나, 이 땅에서 겪는 어떤 고통도, 하늘나라에서 누릴 절대 평화의 값이요, 주님과 함께 할사랑의 값을 더 값지게 하기 위한 기틀임을 믿게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우리가 이 땅에서 곤고함을 치른 날 수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하늘나라에서 더 알뜰하게 누릴 수 있음을 믿고, 소망을가지게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이지러진 것을 아름답게 다듬으시어 사용하시는 주님, 저는주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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