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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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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김대건은 우리 나라 최초의 신부라는 신앙차원 이외의 척도에 서도 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우리 나라에 있어 동-서양 문명교류 최초의 선구자이다. 학문에 동학과 서학이 있다면 그는 서학을 위한 최초의 유학생이기 때문이다.동-서가 연계된 큰 대륙의 동쪽 끝에 자루처럼 바다에 튀쳐나온 한반도. 그 주변 바다의 물살이 강하여 그 자루 속에 수천년 갇혀 살았기에 유사이래 진취정신이 활성을 띠지 못했다. 굳이 프런티어십을 구현한 역사적 인물을 고르라면 신라 구법승을 들 수 있다. 멀리 천축까지 구법순례를 했던 신라승 혜초-혜업-혜륜-현태-아리나 발마 등이 있었으나 이들은 그들이 구한 외래학문을 우리 땅으로 들여오지 못하고 천축이나 당나라 땅에서 죽고 말았다. 결실을 보지 못한 프런 티어들이다.병자호란때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북경서 천주교 선교사 아담 샤르(탕약망)와 교류하여 서학을 접했으나 간접 교류인 그나마도 세자의 요절로 해서 씨앗이 뿌려지지 못했다. 유학이라는 뚜렷한 목적으로 동양 속의 서양인 마카오에서 6년간 면학한 김대건 신부야말로 최초의 본격적인 유학생이었다.곧 대륙에서 돌출된 가죽부대를 뚫고 세계 무대에 돌출한 최초의 한국인인 것이다. 따라서 서양말을 터득하여 말하고 쓴 최초의 한국인도 김대건 신부이다. 페레올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그는 중국말을 중국사람처럼 능숙하게 하고 라틴어도 쉽사리 구사했으며 프랑스말도 불편없이 듣고 말했다]고--. 그가 프랑스인 신부를 조선에 밀입국을 시키고 상해에 돌아와 영국 함대의 도움을 받았을때 영어를 비롯 6개 국어를 구사했다고 그 배의 장교들이 한 말이 기록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그에게는 다른 한 신앙 외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최장거리 여행자라는 기록이다. 중국 내륙길로 마카오에 두번, 마카오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 피난을 두번, 군함을 타고 마닐라에서 대만을 거쳐 상해로, 다시 중국배로 만주로 시베리아 국경까지 왕복했다가 입국 해 상해를 왕복하고 서해에 붙잡히는 몸이 된다.26세에 순교하기까지 10년사이의 눈부신 프런티어십이다. 자기 비하나 사대사상으로 찌든 폐쇄사고로부터 오늘의 젊은이들을 구출하는 김대건 마인드인 것이다. 오늘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돌을 맞아 잠실벌에서 매머드 신앙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서는 장기 기증 등 현실 참여와 미래 지향적 서약 행사로 이끌 것이라 한다. 그리고 신선하고 젊은 김대건 마인드가 이를 계기로 현창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1996. 9. 15. 이규태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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