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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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옥 목사는 6.25전쟁 이후 생긴 과부들의 생계를 위하여 '신애원'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전쟁 미망인들은 그곳에서 재봉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 갈 수 있었다.일거리를 걱정하던 김 목사는 감리교 총리원에 신애원을 위한 구제물자를 요청하였는데 천안에서 가져가라는 연락이왔다. 구제물자가 모두 열 뭉치나 되었기에 이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트럭이 필료했고, 김 목사는 부근에 있는 헌병부대에서 트럭을 얻을 수 있었다.김 목사는 조금이라도 빨리 다녀올 욕심으로 안성으로 해서 입장으로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을 택햇다. 그런데 그 길은험했고 안성을 조금 지나서 그만 트럭이 고장나고 말았다. 그런데 운전사는 미군이었고 김 목사는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대화가 통하질않았다. 더구나 김 목사도 미군 운전사도차 정비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다.김 목사는 조금 돌더라도 국도를 따라 수원으로 해서 가지 않고 자기 고집으로 안성 길을 택한 것을 후회하엿다. 점심이 지나고 오후가 되어도 지나는 차가 없었다. 그러다가 저녁이 다되어서야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어 그 운전사의 도움으로 차를 고쳐 늦게야 천안에 도착하게 되었다.김 목사 일행은 천안제일교회에 가서 구제물자 10여 뭉치를 싣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안성을 통해 오는 길이 아닌 안전하게 국도를 통해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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