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그저, 불쌍해서요...

본문

"내가 아는 어느 장로님에게 아들딸 8남매가 있었다. 그 아들들이 다 훌륭하게 자라났는데 특별히 셋은 줄줄이 서울대학교를 나왔다. 대학원을 나오고 박사가 되고 했다. 자랑스러웠다. 그 장로님은 늘 "저는 아이들 때문에 걱정해 본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한번도 우리 아이들은 병원에 가는 일도 없어요. 병원하고 우리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까 사실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부인은 국민학교도 못나왔다. 겨우 한글이나 깨우칠 정도의 수준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그렇듯 잘 키웠다. 또 아이들이 어머니의 말이라면 꼼짝을 못한다. 하도 신통해서 몇번 물어보았다. "어떨게 그렇듯 아이들을 잘 가르쳤습니까" "가르치기는요. 제가 뭘 알아야 가르치지요. 가르치는 게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한창 졸리는 나이에 잠과 씨름하면서 공부하느라 애쓰고, 잘 먹이지도 못하고 입히지도 못했는데 밤새워가면서 공부하는 걸 보니 불쌍해서, 불쌍해서 내가 어떻게 잠을 자겠어요 그래서 그 옆에 앉아 저는 책도 못보고 할 일없으니까 그냥 뜨게질만 떴다 풀었다, 떴다 풀었다 했었지요." 아이들이 공부할 때에 언제나 곁에 앉아 있어주었다는 것이다. 훌륭한 어머니다. 생각해보라. 요새 소위 잘났다는 어머니들, "너 못하는 건 네 책임이다. 학비를 안줬냐, 밥을 안먹었냐, 옷을 안줬냐 에이, 멍청한 것"하는 어머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네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다. "미안하다, 공부하라고 히놓고 나는 놀러 나갔고, 델레비전만 보았고... 네가 어미 잘못 만나서 이 꼴이 되었구나"할 수 있는 마음이 긍휼이다. 남편이 밖으로 돈다면 그거 남편 책임이라고만 생각하는가 '어쩌다가 상냥하지 못하고 말 한마디 정답게 할 줄 모르는 여자 만나가지고 밖으로 도느라 무축 고생하시는구만' 이렇게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해보라.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어쨌든 긍휼이라는 것은 모든 잘못이 당사자에게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내게 있다는 것이다. 내가 책임을 진다. 이게 긍휼이다. 동시에 아주 미래지향적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는 절대 실망이란 없다. 나, 당신에게 실망했다 - 이런 소리는 하지 못한다. 긍휼과 함께, 긍휼을 통해서 먼 미래를, 밝은 미래를 바라본다. 동시에 이것은 행동적이다. 이 행동에는 낙심이 없다. 그것이 긍휼이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46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