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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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묘의 화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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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의 `한국교회사 서설(韓國敎會史序說)'에 이런 견문(見聞)이 적혀 있다.어느 한 상민(常民)이 자기 아버지가 묻힌 산소의 일부를 권세있는 한 양반에게 빼앗겼다.양반은 풍수설에 맞추어 자기 어머니를 그 산소에 묻고 이 가난한 상민으로 하여금 묘지기를 시킴으로써 먹고 살게 해주었다.치상한 지 며칠 후 양반이 산소에 가보았더니 묘지기가 자기 아버지 무덤과 양반 어머니 무덤 사이에 가서 울타리를 쳐놓은 것을 보았다. 영문을 물었다.`며칠 전날 밤 꿈에 저의 아버지 시체가 일어나 자당님 산소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 그 후의 일은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망측스러운 행위를 막기 위해 가시 울타리로 막아버린 것입니다.' 양반은 그날 밤으로 어머니의 시신을 딴 곳으로 옮겨버렸다는 것이다.우리 한국인의 사생관(死生觀)은 죽어도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생연결관(死生連結觀)이기에, 죽어도 살았을 때와 같은 음식을 젯상에 차려드리고, 또 죽어서도 곁에 있는 망인이 음심을 품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화장(火葬)을 하는 불교문화가 들어온 지 수천 년이 되지만 소각 말소시키는 시신처리가 극소수에 머물고 여전히 토장을 하는 것도 바로 죽어도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사생연결관의 소치인 것이다.유럽에서도 토장이 상식화돼 내려왔는데 기독교 교의상 화장이 불가하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중세에 이단자에게 화형을 처했던 데서 화장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토장을 하게 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산업혁명 후 급작스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묘지문제가 심각해지자 화장 운동이 벌어졌고, 화장운동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무신론자이거나 반(反)카톨릭 신자가 많은 것이 이유가 되어 카톨릭 교회에서는 1886년, 92년, 97년, 1926년 네 차례에 걸쳐 화장 금령을 내렸었다. 로마 법황이 이 화장 금지령을 정식으로 철폐한 것은 겨우 27년 전인 1963년 7월 5일의 일이다.현재 유럽 각국의 화장률을 보면 50% 이상 화장하는 나라는 영국, 체코,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요, 30%대가 네덜란드, 노르웨이요, 10%대가 서독, 오스트리아, 핀란드, 캐나다요, 미국은 10% 미만, 프랑스는 겨우 1%에 불과하다. 함부르크의 경우 가족묘지는 인정하되 1제곱미터에 골호(骨壺) 6개를 세로로 세워 묻게 함으로써 묘지의 면적을 극소화하는가 하면, 화장이건 토장이건 25~30년 후면 영구 묘소로부터 제외하게끔 묘지법을 고치는 등 묘소의 국토 이용면적 침해를 극소화하는 추세다.한국 천주교에서는 천주교 묘지에 토장한 무덤을 20~30년 후에 화장, 납골(納骨)하는 혁신적인 묘지 안을 주교회의에 상정, 의결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세계적 흐름에 동조하는 용기있는 결단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에 관계 장관은 이 방법을 일반인에게도 권유하겠다고 했다.하지만 한국인의 억센 사생연결관과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조상 숭배라는 험한 난관이 쉽게 극복되라라고 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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