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할 일이 없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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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학자인 서울대의 S교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합니다."두고 보십시오. 이제 10년이 채 안되어 한국땅에서 사회적으로 교회가 할일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복지국가가 되어 국가에서 국민들이 낸세금으로 보든 사회사업을 도맡아 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교회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게 없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로선 비극입니다."주님께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소외되고 억눌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탁하시며 저들을 돌보라고 명하셨습니다. 구제(救濟)와 구휼(救恤)은 인류역사속에서 기독교회에 맡겨진 거룩한 본분이요 사명이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 성자들이 이 일에 평생과 생명을 바쳤습니다.그러나 이 거룩한 사명도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S교수님의 예언은 우리를 섬찍하게 합니다. 그나마 지금까지조차도 우리 한국교회는 가난하고 신음하는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거의 신경쓰지 못하여 온 것이 사실임에랴 말입니다.명절이나 연말 연시에 T.V, 신문에는 기사화되는 사회복지시설의 소식에는 예외없이 그런 시설들을 헌신적으로 운영해 온 초췌한 모습의 무명의목사님, 장로님이 '극도의 운영재정 악화, 해를 거듭할 수록 극심해지는 무관심'등에 대해 탄식하며 하소연 하는 내용이 실리고 있습니다.기독교인은 늘어가고 교회 수는 많아지며 교회들은 부자가 되어 가는데기존의 사회복지 시설들조차도 점점 재정난이 심화되고 냉대와 무관심 가운데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교회의 대각성을 촉구하는 바가 아니겠습니까지금도 이 땅에는 수없이 많은 고아들, 무의탁 노인들, 부랑자, 미혼모, 가출 청소년, 소년 소녀 가장들, 알콜.마약 중독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채 이 나라 구석구석에 방치되어 있습니다.이 사실은 [그래도 아직은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 할 일들을 빼앗기기 전에 우리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그러나, 우리 한국교회가 이런 일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선 교회의 재정운용(運用) 방법에 일대 개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 재정(성도들의 헌금) 사용에 대한 근본적 의식개혁이 일어나야한다는 말입니다.교회마다 재정적립 및 지출에 대한 최우선 순위가 예배당 건축이나 교육관 신축, 기도원 건축, 교회 주차장 부지 확보, 교회 묘지 조성등에 촛점이맞추어져 있는한 우리 교회들은 주님 오실 때까지 '이웃을 돌보는 일'에는손도 대지 못할 것이 자명합니다.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들이 아직까지도이런 부분에 무감각하다는 것이 슬픈 일입니다.이를 위해 저희 讚美는 한국교회에 몇가지 [운동]을 제안합니다.그 첫째는, 모든 교회는 교회재정의 50%이상을 이웃들을 위한 구제, 선교비로 지출하는 것을 영원불변의 대원칙으로 삼는다.교회가 어떤 경우에라도(예배당 건축같은 문제 앞에서조차도) 이 대원칙을깨뜨리지 않고 시행하기로 작정만 한다면 한국땅에 대변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물론 이 방침이 정해진다면 자연히 지금까지 지출되어 왔던 갖가지항목들에 대한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고, 어떤 항목은 아얘 없어지게 되거나 초긴축재정운용에 돌입해야 될 것입니다.둘째는, 일정 이상의 재정자립이 이루어진 교회는 무조건 한 개 이상의 사회복지시설을 건립, 자체 운영한다.어느 개인에게 이런 시설들을 운영하는 짐을 맡기기 보다는 한 교회 교인전체가 책임감을 가지고 돌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도회지 교회의 경우 교인 200명만 되어도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400명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 건축을 최우선 과제요 목표로낭비만 않는다면 말입니다.교인 수가 1천명이 넘는 교회들은 웬만한 고아원, 영아원, 장애인 재활센타, 미혼모 보호센타 같은 정도의 시설들쯤은 국고재원 없이 충분히 자체운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저희가 아는 참으로 헌신되고 신실한 두 자매는 10년 가까이 장애인 선교.재활사역에 헌신해 왔는데, 고향인 경북땅에 새로운 장애인 복지시설을 세워 섬기고자 오래전부터 기도하고 있는데 대구 모 교회가 교회 주차장 한평만 덜 매입하고 이들을 도왔다면 이 자매들이 원하는 '허름한 농가 한채'정도는 우습게 마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자매들은 "주님, 시골초라집이라도 좋으니 집 한 채 주세요"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데 도회지의 어느 교회는 교회 수양관 부지매입 및 건축을 위해 10억 예산을 잡아놓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님께서도 눈물이 날 것입니다.세번째는,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의 이와같은 재정운용 대개혁을 위해 제직회, 공동의회를 통해 강력한 캠페인을 전개한다.'좀더 이웃들을 위해 쓰자'라는 명분때문이라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울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왜 교회가 헌금의 절반을 이웃을 위해 쓸 수 없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위해 너무 많이 돈을 쓰기 때문입니다.당회모임때 식사를 위해 왜 교회헌금으로 합니까 성가대 회식, 교사 회식을 왜 교회재정으로 합니까 멍쩡한 성가대가운을 왜 바꿉니까 왜 앞 단상 꽂꽂이를 위해 몇백만원씩 교회에서 지출해야 합니까근본적인 대(大) 의식개혁없이는 앞으로도 불신자들로부터 "너희 예수쟁이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욕을 피할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지난 8月호에 [전주깡통교회]기사가 나간 이후 한국교회 도처에서 엄청난반향이 일어났습니다. 교회 자체 정기간행물을 발간하는 수십교회에서 [낮엔 해처럼]기사 전문(全文)을 자신들의 간행물에 기재해도 되는냐는 요청을공식적으로 해 왔고, 일부 교회에선 이 기사내용에 큰 도전을 받은 3∼40대남전도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교회 재정 사용의 일대 개혁을 위해 기도회와활발한 논의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전갈을 찬미로 보내 오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그 때의 그 충격과 도전을 어떻게 열매맺어 가고 있는지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전주안디옥교회] 기사를 읽고서도 [너무나 덤덤하고 무관심한] 대부분 교회들의 반응입니다."뭘 그렇게 별나게 하냐"고 말입니다.설령 교회 재정운용에 대한 개혁이 절실하다는 데에 동의는 하면서도 "공연히 교회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거야 있느냐"며 차라리 침묵해 버린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아닙니다. 교회는 개혁되어어져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교회 돈주머니'가 더욱 개혁되어져야 합니다.저희는 이 일에 젊은이들이 들고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우리의 이권다툼 때문에 벌여온 데모나 단식농성은 접어 두고서라도 교회가 교회다와 져야 하는 것 때문에 교회의 젊은이들이 데모를 하고 금식기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몽둥이를 들고 화염병을 들자는 얘기가아닙니다. 교회 지도자들을 정죄하고 비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부터,정 안되면 우리가 속한 부서부터 이 작은 개혁들을 시작해 나가자는 것입니다.대구의 어느 교회가 1억원의 기금이 적립되면 그 돈을 은행에 예치시켜놓고 그 이자로 선교사 지원을 하겠다며 수년동안 교회헌금을 모으고 있는동안 경북 어느 소도회지 작은 교회에 소속된 남전도회 회원 십여명이 자신들의 생활비 십분의 일을 모아 이미 수년전부터 먼 아프리카 땅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또 네명의 소년가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다는 소문을들었습니다.그것이 개혁의 첫걸음입니다. 아니 그것이 바로 개혁 그 자체입니다. 고등부 부원 50명이 또래 고아 한명의 고등학교 교육을 지원할 수 없겠습니까대학.청년부 부원 30명이 고아 한명 대학에 보낼 수 없겠습니까대단히 주저되고 두려운 이야기입니다만, 어느 시대에서나 진정한 개혁은위로부터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김대통령이 먼저 재산을 공개하고 깨끗한돈문제에 대해 선언을 했기에 이 나라 공직자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개혁되어 졌습니다.그것은 교회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대다수의 목회자님들이 어렵고 궁핍한 환경가운데서도 헌신하고 계시지만, 일부 목회자님들의 귀족화는 대단히 염려스러운 가운데 있습니다. 만약 목자님들이 청빈과 검약의 본을 보여주지 못하신다면 우리 양떼들에겐 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월 사례비 총액이 이 나라 중등교원수준(동일한 연령)이상은 받지 않겠다는 선언도 목자님들이 먼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500CC 그 이상의 승용차 안 가지기 선언도, 그리고 부흥회 강사비도 시골교회 목회자 월 급여 이상 안 받기고 선언하실 수 있다면...오! 꿈인가요 그저 망상인가요나라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만 뒤처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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