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목사의 다른 점
본문
"내가 아는 아주 친한 교수님 한분이 20년이나 대학교수 생활을 했다. 철학을 가르치던 분이었는데 믿음도 좋으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대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겠어요. 이제 신학을 공부해서 목회자가 되어보렵니다."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말렸지만 부득불 그리해야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신학을 공부하고 아주 뒤늦게 목사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유심히 살펴보니, 목회를 하면서 그 분의 얼굴이 점점 더 작아지는 것이었다. 아주 몸이 약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요즘은 어떠냐, 하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 분의 말씀이 이러했다. "교수도 목회자도 어떤 의미에서는 다 가르치는 직업입니다. 둘 다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좀 비슷합니다." -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나 목회하며 설교를 하는 것이나 뭐 상당히 비슷할 줄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목회자는 대단히 어려운 직분이라는 거였다. 왜냐하면,첫째는, 계속적으로 창작()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대학강의라는 것은 한 학기 강의이니 보통 한 3년에 한 번씩 같은 강의를 하게 된다. 가르치는 대상이 바뀌기 때문에 똑같은 것을 해도 되고, 연구를 해서 조금씩 보충을 하되 새로나온 책을 참고해서 연구하면 되니까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더 쉽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설교는 그렇지 않다. 두번째는, 영력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항상 영적으로 평안해 가지고 있어야 된다. 목회자가 근심에 매였던가 아니면 언짢은 생각이 있으면 안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 고민을 해서는 안된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충만해 있어야 목회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전화하지 말라. 그것은 아주 잘못하는 것이다. 괜히 아무 쓸데없는 얘기, 걱정거리를 자꾸 얹어 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어째든 마음이 평온하고 영이 항상 충만해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충만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계속 해야 하는 설교를 위해서 영적 수평을, 평온함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그리고 세번째가 오늘 본문에 관계된 이야기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본을 보여야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신앙적 모델로, sample로 보여야 되는 것이다. 부득불 그러할 수 밖에 없다.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 내가 너희를 낳았도다.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나는 너희들에게 아버지이다." - 이런 말을 한다. 부모된 도리에서 어차피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야 된다. 자녀들에게 본을 잘못 보일때에 문제가 되는 것이요, 본 보일 것이 없을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수도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목회자라는 것은 모든 면에 있어서 본을 보여야 된다. 신앙도, 생활도, 정열도, 사랑도, 기도생활도... 나 자신이 먼저 본이 되어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내가 믿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내가 행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하기가 어렵다. 내가 먼저 하면서, 내가 먼저 믿으면서, 내가 먼저 확신하면서, 내가 먼저 헌신하면서... 이것을 가르쳐야 하니까 그 점에서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수와 목회자와 다른 점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