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전쟁의 시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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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시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팽창을 하는 우주와 같아서 막을 방도가 없다. 이것은 단순히 양적 팽창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바뀌는 것이다. 어떻게무엇보다도 화면에서 모든 일이 처리되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화면으로회의를 하고 화면으로 거래를 한다. 표면상으로는 화면을 통해 인간이 하고자 하는 일을 주체적으로 처리하는 듯이 나타나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것은 미디어 바깥을 사적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이는 나라에서 보는 사실혼과 같다. 같이 살지 않고 혼인 신고만 했어도 본부인이나 본남편이며, 십년이나 이십년을 살았어도 혼인 신고가 어있지 않다면 도덕적으로 손가락질 되는 무의미한 정부(情夫)일 뿐이듯이, 미디어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삶은 사적 언어놀이일 뿐이다. 의미있는 생활은 미디어를 통해 결제 받을 수 있는 삶이며 결제 받지 않는 생활은 단순히사적인 것이 된다. 여기서 사적이라는 것은 개인의 진실이 숨어있는 실존공간이라기보다 자본의 확대 재생산의 관점에서 무의미한 그런 공간이다.이렇게 볼 때에 미디어는 단순한 수단을 넘어서 생활 세계 그 자체를 규하는 막강한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진리나 진실이 아니라 진리라고 인정해주는 틀, 바로 미디어가 된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는 부차적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화면으로 처리되어 부가 가치가 붙었는가 않았는가다. 메시지는 메시지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메시지가 탄 형식 때문에 힘을 갖는 것이다. 이때에 미디어는 분명히 푸코의 말을 빌 필요도 없이 권력이며 또한 감시자다.맥루한의 말처럼 미딩가 메시지다. 예를 들면 소비를 하게 되는 이유, 소,가격, 지급 방법이 모두 "월도 화이드 웹"(전세계적인 그물)에서 결정된다.월드 와이드 웹, 이것이야말로 자율적 식민지를 뜻하는 세계화의 궁극적 지향점이 아닐까 미디어는 단순히 특정한 내용을 전달시키는 매체가 아니라정보 사회에서 존재 의의를 부가하는 심판관이다. 김춘수의 시 '꽃'과 같다."그(미디어)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나는 다만 하나의 흔적에 불과다.내가 한 의미가 되게 하려고 컴퓨터가 돌아가는 메카니즘에 끼어야 하는세상, 우리는 기술 문명의 이름으로 그 세상을 찬양해야 할까번호로 남겨지는 사람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란 말처럼 모호한 말고드물지만 나는 아도 그 말에 설렌다. 나는 그 말에 기대기를 좋아한다.그 말에 기대어 있으면 사람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체계나 체제가 보인다.멀티미디어가 약속하는 세계에서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미디어의 계기서존재할 뿐이다. 엑스 세대, 미시족이 부르짖었던 "자유"와 "개성" 선언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 소비 전쟁의 전리품이었듯이, 멀티미디어에서 사람은 멀티미디어 왕국을 유지시키는 "아이디" 번호일 뿐이다. 이십일 세기가 간절히원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만남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세계를 보는 그런 사람이다. 담그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그 세계에서 발을 담글 것이며 그 세계는 분명히 그 세계의 어린 양들에게 정보적 풍요를누리게 할 것이다. 신문이나 티브이, 위성 방송, 도서관의 비디오 자료도 언제나 관찰할 수 있고, 스포츠 중계를 관람할 때도 쌍방향형 시스템을 통해시청자가 원하는 위치와 각도로 카메라를 자유롭게 움직여 관람할 수 있다.또 별도의 비용을 지급하지 않고도 세계 최고의 미남, 미녀와 환상적인데이트를 할 수 있다. 확실히 새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살아볼 가치가있다고, 내 삶을 걸 수 있다고 하며 들떠도 좋은 세상일까정보는 물 같으나 진실은 공허하다과학 - 기술이 문명의 가장 큰 매력은 원시인이 아무리 발버둥치며 있는힘을 다해도 피할 수 없었던 엄청난 자연의 파괴력에서 사람을 안전하게 대피시켜 준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삶에서 아예 자연성을빼앗아가 버리고 그리하여 사람을 문명에 사육되는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다면 컴퓨터가 약속한 편한 세상으로 문명인은 속여도 원시인은 못 속인다.나는 표정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주름 하나 없이 나이보다 십여년이 책없이 젊어보이는, 세월이 비껴 간 사람보다는 세월의 흔적을 표정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살과 피가 도는 사람이 좋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순진함을 내세우는 철없는 사람보다는 희노애락을 이해하는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최고 축복은 그런 사람과 친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삶은 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간관계 속에 부딪치면서 고통과 사랑을, 기쁨과 슬픔을 체현하게 되고 그 희노애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것이다.그런데 모든 의미있는 일이 화면 상으로 처리되는 세계라면 그 세계는살과 피가 도는 인간의 삶까지 화면에 가두는 거세된 세계가 아닐까 정보는물처럼 흔하지만 진실은 신화처럼 공허한 세계에서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첨단 기술, 군사 필요 따라 개발…“생활에 미칠 영향부터 검토하라” 요즘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에서는 수 십 가지 컴퓨터 관련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시민회관에서는 지난 2월10~17일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와 IBM이 최근 개발한 체스 전문 컴퓨터 딥 블루 사이에 세기의 승부가 벌어졌다. 정식 규정(시간 제한 등)에 따른 이번 게임에서 카스파로프는 2 대 1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딥 블루에 첫 판을 내주어 때컴퓨터 과학자들을 흥분시켰다. 정식 게임에서 컴퓨터가 최초로 인간을 이겼기 때문이다. 한편 필라델피아의 현대 미술관은 현재 최고의 뉴미디어작가로 손꼽히는 게리 힐의 설치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어두컴컴한방에 들어서면 전자 감응 장치가 장착된 카펫이 깔린 바닥에 높이 10㎝ 정도로 미로가 꾸불꾸불 설치되어 있다. 그 미로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양쪽 벽에 대형 비디오 영상이 펼쳐진다. 아무런 설명도 다.왼쪽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를, 마치 미로 속에 갇힌생쥐처럼 감상자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감상자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목소리 내용과 화면이 순간순간 달라진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은게리 힐의 이번 작품은 컴퓨터 기술과 예술의 조화라 할 만하다. 또 얼마전 필라델피아 미술대학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전시도 있었다. 이러한 행사들은 모두 필라델피아에 자리잡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이 46년 2월1일에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전자 컴퓨터 에니악(ENIAC)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것들이다. 입력·출력·연상 장치나 메모리 같은 현대 컴퓨터의 개념들을 모두 구현한 세계 최초의 전자 컴퓨터 에니악은 진공관 1만8천개와 수 ㎞에 이르는 전깃줄로 이루어졌으며, 약 30평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였고 무게만 해도 30t이 넘었다(오늘날의 PC는 에니악보다 약 천배 상빠른 연산 장치를 지니고 있으며, 데이터 저장 용량은 수백만 배에 이른다).50년 전에 에니악이 탄생한 것은 전적으로 2차대전 당시의 군사적 필요때문이었다. 특히 대포알 탄도 계산은 수학자가 여러 명 달려들어도 며칠씩걸리기 일쑤였다. 43년 존 모클리는 곱셈을 초당 천 번 할 수 있는 전자 계산기가 있다면 며칠이 걸릴 탄도 계산을 단 수분 내에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여, 미국 국방부로부터 에니악 개발 프로젝트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말하자면 컴퓨터는 처음부터 전쟁용 무기로 개발되었던 셈이다.인터네트도 전쟁 무기로 개발된 것 아직도 전쟁의 논리는 모든 과학 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어·영어 같은 자연 언어를자동으로 번역해 내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돈을 대고 있는 것도 바로미국 국방부다. 요즘 들어 각광받고 있는 인터네트도 수십 년 전에 미국 국방부를 위한 컴퓨터 네트워크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 기본 개념은 한 컴퓨터가 공격을 받아 고장나도 다른 컴퓨터를 통해 통신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멀티플 네트워크였다. 가상 현실 기술도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위해 개발되었다. 최근 미국 등 핵무기 선진국들이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말자고다른나라에 제의하는 것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핵실험을 대신할 수 있게되었기 때문이다.최근 프랑스가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강행한 것도바로 컴퓨터 핵실험 시뮬레이션을 위한 자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이러한 기술이 군사적 가치를 잃으면 상용화되어 팔렸고, 그제서야 인문사회 과학자들은 기술이 생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뒷북을 치며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분명 앞뒤가 바뀐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기술 개발의 근본적방향을 전쟁 논리에 맡겨서는 안된다. 기술 개발 이전에 그것이 생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치·사회·문화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미 실현된과학기술의 영향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떠한 기술을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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