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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영국의 귀족인 고디바 부인의 고향은 커벤터리다. 부인은 그지방 영주인 남편에게 고향 사람들의 세금부담을 줄여 달라고 애원했다.귀찮게 굴자 부인의 입을 막을 셈으로 벌거벗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고향 마을의 장터를 한바퀴 돌면 세금을 감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겨우 열일곱살의 앳된 고디바 부인은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채 말을 타고 장터로 향했다. 물론 출렁거리는 그녀의 장발은 남들이 봐서 안될 유방과 국부를 많은 사람의 시야로부터 희석시켰다. 그럼으로써 부인은 자신의 품위와 남편의 체면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커벤터리 주민들은 감세의 혜택을 받아 일거삼득을 한 셈이다.영국에 [톰의 훔쳐보기] 란 속담이 있는데, 바로 이 고디바 부인의 나체시위에서 비롯되고 있다. 부인이 나체로 나타난다는 말이 퍼지자 커벤터리 주민들은 우리의 감세를 위한 것이니 창을 닫고 커튼을 내려 보지않기로 약속을 했는데, 유일하게 톰만이 커튼 틈으로 숨어 보았던 것같다. 그 순간 선반에서 떨어진 물체에 얼굴을 맞아 실명을 하고만다.곧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숨어 보는 자는 응징을 받는다는 속담인 것이다.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에서 처럼 알몸이 사회문제로 대두해 그것이 외설이냐 아니냐의 한계가 문제됐을때 그 기준으로 이 고디바 부인의나체가 거론되곤 했던 것이다.부인은 민중들 앞에 완전 나체로 나타났다. 하지만 모두가 외면한 상상속의 누드였기에 외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지에 대한 기대감에서 미가 탄생되고 그 기대감을 유보하는 사람에게 미가 기생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아직도 유효하다.근간에 나체 사진집인 [이브의 초상]을 발행했다 하여 출판허가를 취소당한 업체가 당국 상대의 소송에서 승소하는가 하면 나체 등장으로 외설시비가 있었던 연극 미란다의 연출자에게는 공연 외설죄로 유죄가 선고되었다.지금 개최중인 한 누드미술전에서는 관중앞에서 공개적으로 전라의 남녀누드 크로키를 하고 있어 상업성 외설이다 아니다로 쟁점이 되고 있다. 뚜렷한 한계를 가를 수 없는 외설의 여부는 이처럼 종잡을 수 없이확대되어 나갈 것이다. 여기에서 확고한 것은 훔쳐봄으로써 장님이 된 톰처럼 그것에 탐닉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정서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사실이다.부녀자를 야하게 그린 혜원이나 단원의 풍속도를 우연히 보고 돌아와 오염된 눈을 씻으며 그런 그림이 있다는 집을 멀리 피해 돌아 다녔다는 선비의 전통이 있는 나라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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